부끄러운 이야기 2 - 시이불견 (視而不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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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이 우리 세탁소에 등장한 것은 3-4년 전이었다.
첫 인상이 험상궂어서
내 머릿속 폴더에는 처음부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의 범주로 분류된 까닭에
지금껏 살가운 말 한 마디 건넨 적이 없는 '그'였다.
흔히 우리가 흑인이라고 비하하며 부르는
아프리칸 어메리칸들은 머리가 심하게 곱슬이어서
짧게 깎은 상태를 유지하거나
매일매일 신경을 써서 관리하지 않으면
머리카락이 라면처럼 뒤엉켜서
차마 눈을 뜨고는 제대로 볼 수 없을 경지(?)에 이른다.
눈빛은 그다지 날카로와 보이지 않아도
지저분한 머리 상태와 더불어 단정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의 얼굴 만으로
나는 섣불리 그를 동네 건달 중 하나라고 판단을 했던 것이다.
사실 그의 외모 말고는 그에게서는 그다지 흠을 잡을 일은 없었다.
옷도 꼬박꼬박 잘 찾아 갔고
세탁한 옷의 상태가 이렇다 저렇다 트집을 잡지도 않았다.
외모는 그래도 말을 할 때도 험한 말투는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외모에 전혀 걸맞지 않게 조용조용한 편이었다.
옷을 맡기고 찾아가는 그의 태도는
외모 빼고는 'A'급 손님의 부류에 들 수 있을 정도였지만
단지 외모가 준수하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내 머리 속의 '블랙 리스트'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우리 세탁소 'A'급 손님들이 받을 수 있는 나의 미소와
칭찬이 담긴 인사 등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지난 주 에 후드가 달린 스웨터를 들고
세탁소를 찾아왔다.
쭈볏거리는 그의 태도로 미루어
뭔가 수상쩍은 게 감지되었다.
"저 사실은 옷에 피가 좀 묻었는데----"
미안한 태도로 옷을 내미는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내가 그의 옷을 나꿔 챘다.
"그러면 그렇지."
나의 그에 대한 분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난 것처럼 나는 흥분했다.
그의 스웨터 왼 쪽 소매에 피가 묻었는데
자세히 보니
왼 팔 거의 전부가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의 상상력은 잠시 동안이었지만
날개를 달고 세탁소 안 천장 주변을 맴돌았다.
우리 세탁소가 있는 부르클린에는
몇 개의 갱단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붉은 색으로 상징되고
다른 하나는 검은 색으로 자기 조직을 나타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검은 색 옷을 즐겨 입는 까닭으로
나는 그가 검은 색으로 상징되는 갱단의 일원으로
바로 단정을 지어버렸다.
외모도,
옷에 묻은 피도
그가 검은 색 갱단의 하나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내 상상력에 불이 붙고
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걱정스레 물었지만
그것은 그가 다친 것을 걱정해서라기 보다는
다분히 호기심이 덕지덕지 묻은 아주 순수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와 처음으로 사무적이지 않은 대화가 오고 간 순간이었다.
검은 갱단과 붉은 갱단 사이의 혈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될 판이었고
내 심장은 막 뛰려고 펌프질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셔츠의 왼 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의 랄뚝엔 '신신 파스' 크기의
흰 거즈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칼에 찔렸나? 아니면 총상인가?"
내 동공이 확장되었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상상 속의 혈투가 시작되려는 찰라였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주 기일-게 느껴졌다.
"신장이 나빠서 투석을 한 지 3 년이 되었어요.
이 상처도, 투석 때문이고 옷에 묻은 피도 투석하다 흘린 피예요."
"------------"
처음부터 실타래가 엉켰던 것이다.
나는 그의 외모로 그를 '블랙 리스트'에 올렸고
손님으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혜택'을 제한했다.
옷에 묻은 그의 피를 보고는
그가 갱단의 일원으로 확신을 했다.
불순한 의도이긴 했어도
그와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불량한 갱단의 하나로 내 기억 속에 남아서
'블랙 리스트'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신장이 나빠서 투석을 하는 일이 얼마나 성가시고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며
그런 모든 걸 넘어서
죽음과도 마주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을 대하면서
연민이나 사랑의 눈이 아니라
조롱과 호기심의 눈으로
엉뚱한 상상이나 하는 나를 바라보며
60 년 동안 신기루만을 찾아다닌 것 같은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에 보면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제대로 보지 못 하고
들어도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말이다.
60 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나는 마음 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보며 살아왔던 것일까?
피 묻은 옷을 보면서
그 청년이 겪고 있는 고통이나 불편함 보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는 나를 보면서
다른 사람은 커녕
내 자신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밀려왔다.
내 삶의 보물로 생각하는 '어린왕자'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럼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
그 청년이 옷을 찾으러 올 때
나는 'A'급 손님들이 누리는 특혜 중 하나인
나의 미소를
나는오늘 아침 거울을 보며 정성껏 연습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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