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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선물 - 아들이 준 셔츠

선물 - 아들이 준 셔츠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780 )


"아빠 이 셔츠 한 번 입어 보세요."


큰 아드님이 내미는 셔츠를 보니 자기 생일 선물로

누나들에게 받은 것이었다.

빨갛고 노란색의 새끼 손톱 크기의 아이스 크림 콘 무늬가 

올망졸망 앙증스럽게 들어간 한얀 반팔 셔츠였다.


"아니 왜?"


"나한테 너무 작아요."


선물로 받은 셔츠가 너무 작아서 입을 수 없다는 아드님의 말에

얼떨결에 그 셔츠를 입어 보았다.

그 셔츠는 내게 아주 잘 맞았다.

내 취향은 아니어도 버리느니

내가 입으면 

아드님 마음이나 그것을 선물한 따님들 마음도

한결 좋을 것 같아서 선뜻 입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 아드님은 꾸준히 운동을 한 덕으로

가슴 둘레며 단단한 알통이 꿈틀대는 팔뜩이

족히 나의 두 배는 넘는 것 처럼 보인다.


요즘 로펌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데

출근 전 직장 근처에 있는 짐(Gym)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일을 시작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한 운동을

지금까지 게으름 피지 않고 하니 몸이 온통 근육 투성이다.


하루는 나와 아내가 보는 앞에서 

한 손 만 바닥에 대고 팔굽혀 펴기를 하기도 하고

손가락 한 개인가 두 개로만  팔굽혀 펴기를 하는 등 

무력 시범을 보였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내가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숫자의 몇 배를 그리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철봉에 팔목만 걸친 채 턱걸이를 하는 모습등'

철봉을 이용해 하는 예술(?)을 

아드님이 손수 찍은 동영상으로 보았는데

이건 완전 '묘기 대행진'에 나가도 될 수준이었다.


그러니 무리해서 아드님이 그 셔츠를 입으면

예전에 방영되었던 tv 쇼 '헐크'의 옷 찢어지는 상황이

눈 앞에서 벌어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나 원 참-----)


우리 아드님의 모습이 흐뭇하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자존심이 좀 상했다.


나도 왕년엔

배에 식스 팩은 아니더라도

임금 왕(王)자가 선명히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서서히 소멸의 과정을 거쳐서

급기야 임금 왕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왕의 둥그런 봉분만 남아서

옛날의 영광을 말해주는 것 같아 

볼 때마다 기분이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아들이 건네는셔츠를  입어 보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다만 배와 허리 부분이 조이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그 셔츠를 입고 출근했더니

20 대 젊은 손님들은 입을 모아 

'nice shirts'라는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어쨋든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기야 그들은 세탁소의 카운터에 가려진

내 배 부분을 자세히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셔츠를 입은 내 전신을 자세히 보고도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올 지는 의심의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서 있을 때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더군다나 마음을 먹고 배를 디밀면 그런대로 근사했다.


그런데 앉으면 본색(?)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단추와 단추 사이로 속옷을 입지 않은 까닭으로

뱃살이 삐죽삐죽 무시로 고개를 내미는 것이었다.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그것이 문제'였다.


여론조사의 결과는 나쁘지 않아도

누구보다 속사정(?)을 잘 아는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어제 오후 점심 시간이 막 지나서

큰 아드님이 세탁소에 등장했다.


일 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세탁소에 나타난 아드님 때문에 놀란 나에게

아드님은 이른 퇴근을 했다며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어제가 인턴 마지막 날이어서

브런치만 하고 인턴쉽을 끝냈다는 것이 아드님의 설명이었다.


"아, 벌써 10 주가 다 지났나?"


아드님의 입사가 결정된 로펌은

모르긴 해도 'Corporation'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턴으로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접하게 되는데

일처리 하는 걸 부서의 책임자들이 관찰을 하는 모양이다.

인턴 기간이 끝날 무렵엔

부서의 책임자들로부터 아드님은 은근한 추파를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사적인 만남'을 위해

점심 시간에 메슐랭의 별이 세 개나 있는 식당에서

높은 분들과 은근한 만남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말하자면 아드님을 자기 부서로 모셔가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얘기다.

결국 아드님은 들어 온 제안 중 'Corporation' 의 것을

'Accept'하기로 했다고 한다.


자신의 갈 길을 찾아

게으름 피지 않고 걸어가는

아드님이 존경스러웠다.


'아빠보다 나은 아들'


내가 굳이 남들의 손가락질을 의식하면서도

'아들 놈'이라 하지 않고 '아드님'이라 일컫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나은 아들을 보면서

아들 앞에서 작아지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아드님과 아빠인 나의 공통 분모를 찾아

위안거리와 동시에 내 자존감도 회복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내 속에서 불끈불끈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아 그래,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가 있었지.


자기 아들이 아님을 알면서도

굳이 자기 아들로 인정하고 싶은 간절한 그 마음이

결국 새로 태어난 아이의 발가락과 자기 발가락이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는 내용의 눈물 나는 이야기.


그래서 나도 드디어 찾았다.

아드님과 나의 같은 점을----


바로 그 흰 셔츠다.


아들은 팔을 셔츠에 넣을 수 없어서 입을 수 없고

나는 배가 꼭 죄어서 입기 불편한 

바로 그 셔츠.


아드님도 아빠인 나도

작아서 입지 못하는 그 셔츠로 우린 공통 분모를 갖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입고 깨끗이 세탁을 끝낸 그 셔츠를 

다시 아드님에게 돌려 주며

"이 셔츠 아빠 한테도 작아서 못 입으니 

누구 다른 사람에게 주렴."이라고 말을 할까?


그러자니 손님들 입에서 멋지다고 한 그 셔츠를

도로 돌려주기도 아깝다.


오늘 아침 그 셔츠 때문에

"도루 줄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문제로 고민을 하며

마음에 점을 찍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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