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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선물 - 축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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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에 와서 축구를 한 것이 20 년은 넘은 것 같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 년의 빈자리가 있긴 하지만

환갑을 맞는 올 해까지 꾸준히 축구를 하고 있다.

빠르진 않아도 아직까지 무릎이 꺾이지 않고 뜀박질을 할 수 있음은

아무래도 많은 부분 축구에 빚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의사를 찾아간 지도 10 년이 넘었다.

집에서 가끔씩 혈압을 재는 것이 

내 건강 관리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혈압계의 눈금은 정상치를  가리키거나

넘어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우리 또래의 친구들 중 많은 이가

고혈압과 당뇨, 콜레스테롤 때문에 먹어야 하는 약을

날짜 별로 칸막이가 되어 있는

작은 상자에 넣어 들고 다니는데 

그런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도

많은 부분 축구에 빚지고 있다.

 

그런데 축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장비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축구화를 꼽는다.

 

우리 또래의 친구들이 어릴 적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이 동네 골목이나

학교 운동장이었는데

흔히 평소에 신고 다니는 운동화로 공을 차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 축구를 하고 있는 운동장은

푸른 잔디가 깔려 있는데

보통 운동화를 신으면 잔디 위에서 미끄러져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실제로 운동화를 신고 축구를 하다

발목이 부러진 친구도 있으니

축구화는 축구에 필요한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중요한 축구화를 내 돈 주고 산 기억이 희미하다.

 

내 생일 선물로  우리 아이들로부터

*'삼선 축구화'(아디다스 브랜드에는 선이 세 개 있음)를

받은 것이 아마 내 나이 40 대 후반이었던 같은데

그 이후로는 축구화를 산 적이 없다.

 

선물로 받은 그 삼선 축구화는

제법 값이 나가는 것이어서

한 3 년을 신은 것 같다.

 

축구화의 수명이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축구를 하는 사람에게도 

축구화의 수명은 길어야 3 년을 넘지 않는다.

축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축구화의 수명은 

나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선물로 받은 삼선 축구화 이후 10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너 덧 켤레가 내 발을 거쳤을 텐데

내 돈 주고 산 기억이 없다고 하니

교육을 좀 받은 사람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내 인격을 아는 사람은 

 "훔쳤나?"라는 생각은 언감생심, 

그 이유를 추적하느라 골머리를 좀 앓을 것이다.

 

tv 방송국의 연말 시상실처럼 뜸 들이지 않고

이유를 밝히자면

내 발로 축구화가 걸어오게 된 것은 '구걸' 덕분이다.

 

나이 40이 넘어가면서

자연적으로 모든 신체 기능이 내리막길을 걷다가

50이 되면 그 내리막길을 굴러 내려가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나만 그런 지도 모르겠다.)

 

선물로 받은 '삼선 축구화'의 운명이 종말에 이를 즈음에

팀 동료들이 모여 쉴 때 한 마디 했다.

 

"이제 축구를 그만 할 때가 된 것 같네요. 새로 축구화를 사지 말고 조용히 은퇴할까 봐요."

 

이런 나의 호소가 먹혔나 보다.

'삼선 축구화'의 종말과 함께

내 축구 인생에도 종말이 오는 것 같았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그다음 주 축구장에 나갔더니

동료 하나가 내게 새 축구화를 내밀었다.

그 축구화는 자기 축구화를 사면서 내 것 하나를 더 산(얻은) 것이었다.

왜 마케팅 방법 중에 그런 것 있지 않은가?

 

'하나 사면 다음 것은 공짜, 혹은 반값'

 

내게 축구화를 건넨 사람의 평소 인격으로 보아

내 것만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나의 추론이다.

연유가 무엇이든

선물로 받은 축구화 때문에

끊어질 뻔했던 축구의 생명줄이 연장되었는데

문제의 그 축구화의 명이 다 되었을 때

그 사람은

놀랍게도 또 하나의 축구화를 내게 선물함으로써

그를 바라보는 내 눈초리가 무척이나 부드러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 덕분에 내 축구 인생이 2-3 년 더 연장이 되었는데

그가 선물한 두 번째 축구화의 명운이 다 할 때쯤

그 축구화와 더불어 내 축구 인생도 마치겠노라고

공언을 했다.

 

50대 중반의 나이로 축구를 계속하는 게 쉽지 않아서였다.

부상의 위험도 있고

나이에 따른 체력의 한계도 있어서였다. 서였다.

나름 진심을 담아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속으로  축구화를 선물한 그에게서

소식이 오길 기대하는 마음도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내 진심(?)이 통했는

그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실 그가 운동화를 선물할 때는

우리 팀의 인원이 그리 많지 않을 때였다.

아무리 허수아비 같아도 한 사람이 아쉬운 마당에 

내가 그만둔다고 하니

아쉬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두 번째 축구화의 운명이 다 할 때는

이미 팀원들의 숫자가 충분해진 뒤였다.

 

이제 정말 축구와는 영영 이별이라는 생각으로

비탄에 잠겨 있을 때

또 나의 축구 생명을 연장시켜 줄 축구화가

기적처럼 나타났다.

 

그것은 예전에 신던 검고 칙칙한 것이 아니라 

색깔도 흰 것으로 

우아하고 품위가 있어 보였다.

축구화를 선물한 이는 평소에도 축구공을

우리 팀에 자주 기증하는데

보통 월드컵 예선에 쓰던 공이나 

미국 프로 축구경기에서  사용하는 공이다.

우리 팀의 축구 실력은 바닥을 기지만

축구공만큼은 월드컵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 프로 축구 리그인 MLS의

스포트 마케팅 팀장이어서 그가 내게 선물한 축구화는

하나 사면 하나 거저 주는 축구화와는

품질 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그 축구화는 지난 5월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 번에도 은퇴를 운운하며

축구화 구걸을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진정 은퇴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집 차고를 둘러보니

싸구려 축구화가 하나 눈에 띄었다.

우리 조카 들 중 누군가의 것이었다.

 

"하늘이 나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아니 계시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도 같다.

 

축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나의 운명.

 

그 축구화는 한 달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런데 그 사망일이 공교롭게

내가 해트 트릭을 한 날이었다.

 

뛰면서 몰랐는데

축구화를 벗으며 보니 옆이 터져 있었다.

 

"이젠 정말 끝이다. 안녕 내 사랑 축구여!"

 

그런데 하늘이 나를 놓아주질 않는 것이다.

동료 하나가 내 찢어진 축구화를 보더니

신발 사이즈를 물었다.

그러면서 자기 축구화를 한 번 신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작은 축구화가

내 발에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딱 맞았다.

 

그 다음다음 주에 축구화도 없이

축구하러 가서 그가 신던 축구화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한 골을 넣었다.

 

지난 10 년 내 돈으로 축구화를 사지 않아도

축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오로지 내게 축구화를 선물한 이들 덕이다.

축구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50대는 건강하게 지나올 수 있었다.

 

내게 축구화를 건넨 이들은

축구화 한 켤레로 축구를 포기하려던 나의 손을 잡아

다시 축구장으로 이끌어준 은인들이다.

 

새 축구화 한 켤레의 값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가격이 어떻든지

내게 축구화를 건넨 이들의 마음 값은'축구화의 가격과 

감히 견줄 수가 없다.

 

오늘 아침 고개를 숙여

최근에 얻은 축구화를 보고 또 보며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나 마음을 

넉넉히 나누어주며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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