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ver Cafe 앞에서 -아이들 덕에 레드 카펫도 다 밟아보고
지난 달 18일 '아버지 날'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Eva Cassidy의 노래가 담긴 LP 판과
지영이가 동네에서 우연히 득템을 한 Simon & Garfunkel의 LP 앨범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
그래서 내 주변에 머물고 있는 뮤지션의 음악을
턴 테이블에 얹어 놓고
지글지글하는 양념까지 곁들여 듣는 맛을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가격으로만 따지자면
Eva Cassidy 판은 새로 LP로 만들어서 20 여달러가 좀 넘을 것이다.
그러나 Simon & Garfunkel의 음반은
지영이(둘째 딸)가 자기가 사는 동네를 지나다가
어느 집 앞에서 누군가가 쓰던 걸 골라 온 것이니
잘 해야 2-3 달러가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가 자주 듣는 음악을
기억하고 있다가
아빠의 입맛에 맞는 음반을 골라서 선물하는 마음과
아무리 후하게 쳐주어도 30 달러가 넘지 않는 가격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을 것 같다.
세상의 물질 그 어느 것도 사람의 마음을 뛰어 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장의 LP 판은 아버지날 선물로서
적어도 내게는 감히 '최고'라는 수식어를 부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빠의 마음을 알아주는 최고의 선물을 받았는데
아이들은 카드 한 장을 더 부록으로 내 밀었다.
그것이 지난 일요일로 예정되어 있던
River Cafe에서의 브런치와
식사 후 또 바로 옆에 있는 배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참석할 수 있는 초대장이었다.
말하자면 그 날 말고
한 달 쯤 뒤에 다시 날짜를 예약해 둔 rain check인 셈이었다.
그런 종류의 선물은 나보다는
오히려 아내에게 더 어울리는 종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난 오히려 그 선물을 받고는 시큰둥해졌다.
외식이라고 하면 아직도 짜장면이 최고이며
서양 음식 그 어느 것도 아직 나를 만족시킨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게는 이런 선물보다는
여름 날 하루 시원한 집 안에서
뒹굴거리며 음악을 듣다가
싫증나면 '불후의 명곡'을 틀어 놓고
얼큰한 라면 한 그릇 파 송송 썰어 넣고 끓여 먹으면
세상살이 그보다 좋을 순 없을 것이다.
아빠 취향을 아는 아이들이
그런 선물을 했을 리 없고
아무래도 가정농단을 일삼는 아내가
아이들 옆구리 콕콕 찌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문제는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다는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 간의 녹취록도 없고
아이들 중 누구 하나 양심고백을 하는 이가 없으니
그저 일정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팁이 하나 있는데
아이들 선물에 따르는 나의 리액션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격하게 좋아하면 아이들도 그 강도와 농도에 비례해서
행복해 한다.
그러니 이런 일정에 따르는 것은 나릉 위해서라기 보다는
아이들 마음 씀에 대한 나의 성의 표시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일요일 아침 축구를 다녀 와서는
순한 양이 되어 머리도 깎고 목욕재계한 후
부르클린 다리 밑에 있는 'River Cafe'로 길을 떠났다.
River Cafe는
Brooklyn Bridge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면 부르클린 다리,
옆으로 돌리면 맨하탄 다운 타운의 건물과 허드슨 강이 눈에 들어 왔다.
들어가는 입구는 Cobble Stone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났다.
돌 사이로 잡초가 파릇파릇 앙증맞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 몫을 했다.
길 옆엔 예쁜 꽃들이 넉넉한 미소로 우릴 맞았다.
꽃길을 걸으며 숙제를 해야 하는 것 같은 부담감은 슬며시 사라지고
기분이 명랑해지기 시작했다.
식당은 우리집 거실 크기보다 그리 크지는 않고 아담한 규모였다.
은은하게 재즈 음악을 누군가가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었다.
강 쪽으로 맨하탄 다운 타운의 건물들이 유리창을 통해 한 눈에 들어 왔다.
웨이터가 우릴 안내 하면서
강 쪽으로 앉길 원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강 쪽에서 멀어지면 테이블은
더 크고 여유가 있어서
예쁜 꽃들로 만들어진 부케도 놓여 있었지만
식당 이름이 'River Cafe'가 아닌가.
허드슨 강을 최대로 볼 수 있는 곳을 택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Brunch메뉴는 일인 당 $55로 고정 가격이었다.
물론 와인이나 다른 음료는 추가로 내야 한다.
먼저 갓 구운 따끈한 빵과 케익이 버터와 함께 나왔는데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그리고 이어서 한 쪽을 떼어내고 남은 달걀 빈 껍데기 속에
여러가지 견과류를 얹은 오트밀이 맛뵈기로 나왔다.
맛보다는 그 정성이 놀라왔다.
"이것 봐라, 제법이네."
아이들이 골라 준 이런 식당에서의 한 끼가
내 생각보다 훨씬 근사한 것임을
애피타이저를 먹을 때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애피타이저는 여덟 가지가 있었는데
우리는 스칼롭과 훈제 연어, 두 가지를 주문했다.
스칼롭은 아주 싱싱했는데
그 위에 각각 다른 허브를 얹어서인지
먹을 때마다 다른 향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마치 모자르트의 '작은 별' 변주를 들을 때처럼
황홀하기까지 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내가 주문한 훈제 연어는
월계수처럼 살짝 익힌 양파로 둘러 싸여 있었는데
다양한 허브를 얹고 두 곳에 몇 개의 상어 알도 보였다.
물론 나는 상어알을 좋아하지 않지만 성의를 봐서 먹었다.
싱싱한 재료로 만든 음식은
내 입안에서 각각의 맛과 향을 내면서
아주 맛깔스런 스테레오 실내악을 듣는 느낌으로 녹아들었다.
음식에도 차원이라는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보통 짜장면을 먹을 때
먹기 보다는 마신다는 표현을 쓰는 게 더 맞을 정도로
그냥 흡입을 한다.
그런데 이런 음식은 그런 식으로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요리 재료 하나 하나의 맛과 향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는 것이 아이들의 마음에 감사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이들 하나 하나 생각하면서
감사히 그리고 정성을 다 해서 먹었다.
음식은 만드는 것도 정성이 필요하지만
먹는 데도 정성이 필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메인 코스로 나는 Strip(안심) Steak를 주문했는데
'Niman Ranch'라는 목장에서 나는 고기로 만든 것이었다.
'Niman Ranch' 목장은 친환경적으로 목축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미국을 비롯해서 여런 날에서 먹어 본 스테이크 중 단연 최고였다.
'Medium rare'를 주문했는데
마치 생선회를 먹는 것처럼 육질이 부드러웠다.
맛을 음미하면서 가능한 천천히 먹는데
아내가 조바심을 내었다.
열 두시부터 시작한 브런치를 마치니
1시 40 분이 다 되었다.
두 시부터 시작하는 콘서트에 가야 하니
여유 있게 움직여야 한다는 게 아내의 생각이었다.
이윽고 웨이터가 와서
디저트 메뉴를 내밀었다.
밥 배 따로 있고 떡 배 따로 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우리에겐 더 이상 어떤 것도 허용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
강 위에 떠 있는 배 모양을 한 (엔진은 없고 형태만 배) 콘서트 장에서
바흐의 첼로 소나타를 들었다.
배부른 사람에게
아무리 바흐의 첼로 소나타로는 하지만
별 매력이 없었다.
낮잠이 그처럼 간절한 때가 또 있었나 모르겠다.
보통 서양 식당에 가서 내가 하는 일은
먹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앞에 놓인 음식을 먹으며
머리로는 라면 한 그릇의 환상을 꿈꼬곤 한다.
나는 바흐의 첼로 소나타를 들으며
나는 달콤한 낮잠을 간절히 원했다.
좌우로 꺾이는 고개를 단속하며
눈꺼풀의 무게를 견디고 견디다 보니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우리는 뭍으로 나갈 수 있는 해방의 기쁨을 맛 보았다.
집에 가서 쉬는 것만 남았다.
그런데 아내에게 지영이의 문자가 와 있었다.
왜 디저트를 먹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지영이에 따르자면 식사 후에
식당에서 자동으로
부르클린 다리 모양의 디저트와 더불어
카드를 전달하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지영이는 식당에 전화를 걸어 한 바탕
콤플레인을 한 것 같았다.
집으로 향하려던 발걸을을 다시 River Cafe로 돌렸다.
우리가 들어서자
매니저와 웨이터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우릴 창 쪽으로 안내를 하고
부르클린 다리 모양의 디저트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다섯 아이의 마음이 담긴 카드도.
결국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
식사를 했고,
또 한 시간 반 뒤에 가서 디저트까지 먹을 수 있었다.
'Rain Check'이라는 것이 있다.
축구와는 달리 야구는 비가 많이 오면 경기를 할 수 없기에
다음에 지정된 날짜에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표를 주는데 그것이 레인 첵이다.
아이들 덕분에 맛나고 아름다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경험을 했다.
이제 내가 아이들에게 얻어 먹었으니
아이들에게 레인 첵을 줄 차례가 되었다.
우리 집은 너희들을 위해 늘 열려 있단다.
기억하겠지만 너희들이 자랄 때
너희들이 자요로이 들락날락할 수 있도록 우리 집 문은 늘 열려 있었다.
엄마 아빠의 마음과 사랑이 필요할 때
아무 때나 문 밀치고 들어와 마음껏 가져가도 좋단다.
PS엄마 아빠가 주는 레인첵은 유효기간이 없는 거 알지?
고맙다.
사랑한다.
아이들이 보낸 메세지.
Red Cafe 안에서
강 건너 맨하탄 다운타운이 보이고
9.11 이후 새로 지은 World Trade Center1도 보인다.
강에는 크고 작은 수 많은 배들이
왔다 갔다-----
달걀 껍질을 이용한 오트밀.
견과류가 섞여 있다.
내가 주문한 애피타이저.
훈제연어.
그 비싸다는 상어알도 스무 개 쯤 보인다.
Smoke Salmon은 네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기 다른 허브가 얹혀져 있었다.
같은 음식인데 다른 향이 난다.
부르클린 다리 모양의 디저트.
초콜릿과 아이스 크림,
케익과 산딸기 등으로 만들었다.
아버지 날 케익인데
아내가 훅 불어 끈다.
가정 농단의 미세한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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