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축구장의 메꽃들

일요일 새벽 눈을 뜬 것이 4 시 반.

밤 새 빗 소리가 잠 속에서 오락가락 했습니다.

눈을 비비고 아파트 창 밖을 내다 보았습니다.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가 걱정이 되어서였지요.

그런데 부르클린 우리 아파트가 있는 곳에는 비가 온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럴 때는 못 먹어도 고우입니다.


"야호! 오늘도 축구를 할 수 있다."


대충 눈꼽을 떼고 집을 나선 것이 5시 50 문.

부르클린 쪽은 비가 온 흔적이 대충 사라졌는데

맨하탄 중간 쯤에서 비를 만났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GWB를 건너기 전에 다시 돌아가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혻 비가 많이 와서 축구를 못 하게 될지라도

아침에 나온 동료들과 간단히 아침식사라도 할 수 있다면

닭 대신 꿩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기 때문이지요.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 5 시 40 분.

고요했습니다.

나뭇잎에 빗방울이 달랑 매달려 있는 것이

간 밤에 비가 제법 내렸을 것 같았습니다.


주변의 어둔 갈대나무 사이로

메꽃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잔디 위를 한 바퀴 걸었습니다.

아주 상태가 좋았습니다.

산뜻하게 이발까지 마쳤으니 축구하기에 더 이상 좋을 순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비가 올까 걱정이 되는 단원들을 위해 카톡을 날렸습니다.


여섯 시가 넘으니 반가운 얼굴이 한 둘씩 

흐린 하늘 아래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최종 모인 인원이 열명.

한 겨울 눈내릴 때보다도 적은 인원이었습니다.

넓은 축구장을 쓸 수 없어서

파란 쓰레기 통을 놓고 

운동장 한 구석에서

다섯 명 씩 편을 짜 쓰레기 통을 맞추는 게임을 하였습니다.


마치 농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계속 몸을 움직여야 하니

보통 숨이 가쁜게 아니었습니다.

몸에는 습기와 땀이 엉켜 빗방울처럼 흘러 내렸습니다.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땀을 흘려도 고통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것이

축구 뿐 아니라 모든 운동의 묘미가 아닌가 합니다.


노동이 아니라 유희를 위한

격렬한 몸놀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체험할 수 있으니

인간은 '유희의 동물'이라는 '호모 루덴스'를 축구에서 몸과 마음으로 느낍니다.


몸의 건강과 더불어 

덤으로 따라오는 정신적인 행복감 때문에

이 나이가 되도록 축구를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적은 인원 때문에

어제 축구는 '쓰레기통 축구'로 전락했어도

우리의 행복감과 자존감은 결코 쓰레기 통'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쓰레기 통에서 피어난 꽃들'


땀 흘린 우리 열 명 모두 

흐린 하늘 밑에서 환하게 메꽃으로 피어났습니다.


(빙하 같은 얼음 위에서도

우리의 축구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 잘 살았다.(1년 전 포스팅)  (0) 2017.07.26
선물 - Rain Check for River Cafe Brunch  (0) 2017.07.26
July 4th (미 독립 기념일) 일기  (0) 2017.07.05
Piermont 걷기  (0) 2017.07.01
해트트릭의 변  (0) 2017.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