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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내리사랑

아리조나에 계신 장모님이 오늘 수술을 받으신다.

신장의 기능이 조금씩 떨어져서

신장 투석을 시작할 단계가 되었단다.

집에서 투석할 수 있는

말하자면 준비 수술을 받으시는 것이다.


장모님은 자식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늘 씩씩하게 '씩씩'을 외치시며

씩씩한 모습을 보여 주신다.


자식들에게 사랑 한 줌 내어 주시고

또 메처 주지 못한 한아름 사랑을 아쉬워 하시는 장모님.


사랑은 내리 사랑이다.


다음은  2009 년에 썼던 글입니다.



열 세 개의 사과, 그리고 선인장 꽃

삼십여 년 전, 지금의 아내와 그녀의 가족들은 
서울에서 시흥으로 넘어가는 독산동 고갯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어느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 식구들이 이불을 펴고 누우면 남은 자리가 없을만큼 아주 작은 아파트였자만, 
그 곳에 살고 있던 그녀의 가족들은 
세상의 누구보다도 큰 입과 큰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구요? 
늘 큰 웃음과 사랑으로 얼굴을 활짝 펴고 살았으니까요.
그 집에 들어 서면 , 갖가지 색깔의 풍선이 둥둥 떠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의 집은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집’이라는 시를 연상하게 해 줍니다. 
누구나 밥상에 둘러 앉아 같이 밥 먹고 싶어지는, 
따스함이 배어나오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어느 가을 날, 
느지막히 들이닥친 제게, 
잠깐 앉아 놀라고 하시고는, 
그녀의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대접할 것이 마땅치 않은데,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저때문에 적잖이 당황하셨을 그녀의 어머니 마음을
이제사 조금 짐작할 뿐입니다.
잠시 후 돌아오신 그녀 어머니는 가슴에 사과 한 봉지를 안고 계셨습니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사과 좋아하냐’고 물으셔서 
얼떨결에, ‘그럼요’하고 대답했습니다.

봉지 밖으로 모습을 드러 낸 사과들은, 
골목에서 구슬치기 하고 놀던 조무래기들의 주먹처럼이나 작고 볼 품이 없었습니다.
아파트 안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서둘러 사 오신게 분명했습니다.

깎아주시는 사과를 처음엔 인사치레로, 맛있다는 표정을 지어가며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진짜로 단 물이 배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 더 깎아 주세요.”라는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건네 주시는 사과를 베어 물었는데, 그렇게 달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는 사과에 마법을 거셨던 게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말없이 깎아 건네 주시는 달디 단 사과를 저도 말없이 꾸역꾸역 받아 먹었습니다.
저는 그 날, 사과를 Baker’s Dozen* 만큼이나 먹었습니다. 
배도 배지만, 마음도 풍선처럼 그렇게 불러 왔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뜻과 상관 없이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지금도 사과를 먹을 때면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도 함께 먹습니다.

작고 못생긴 사과를 대접하시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간절히 마법을 거셨던 그녀의 어머니를, 
지금은 나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나는 그녀와 한 식구가되어 같은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어머님의 사과 깎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단지 사과를 깎아 주셔야 할 대상이 
이젠 사위, 며느리,딸 아들, 그리고 손주들까지 합치면, 
거의 서른 명에 가까와서, 그만큼 손놀림이 더 바빠지신 게 
그 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작년 십 이월 초, 장인 장모님께서 멀리 Arizona에서 이곳을 다니러 오셨습니다. 
식구들 모두의 성탄 파티를 위해서입니다. 
도착하시면서 짐가방에서 보따리를 하나 풀어 놓으셨는데, 
마치도 삼십여 년 전, 그 사과 봉지를 떠올리게 해 주는 종이봉투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장이 좋질 않아 고생하는 큰 사위를 위해, 
선인장 꽃을 따서 얼려 가지고 선인장 꿀과 함께 들고 오신 겁니다. 
선인장 꽃즙과 선인장 꿀을 함께 타서 마시면
,배 아픈 데 좋다는 민간 요법을 어디선가에서 전해 들으신 게지요.
어머니께서 선인장 꽃을 몇 날 며칠 걸려서 따셨는 지 나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Arizona의 무공해 땡볕 아래에서, 
꽃잎 하나하나마다 마법을 거시면서 정성 들여 따셨음을 저는 압니다. 
마치 사과를 깎으시던 마음으로 말입니다.

나는 요즘 아침 저녁으로 선인장 꽃즙을 마시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아픈 배가 낳으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작고 볼 품 없는 사과를 맛난 사과로 바꾸어 놓으신 어머님의 손은 
틀림 없이 선인장 꽃도 약으로 바꾸어 놓으셨을 테니까요.


어머니의 손은 약손이며 마법의 손입니다







장모님 정원의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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