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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아내의 파말이와 파김치






아내가 만든 파말이

입에 침이 돈다.


장모님이 길러서 보내주신 부추로 만든 부추전 



아침에 일어나니 오른 쪽 엄지 손가락의 손톱 밑에 

아릿아릿 통증이 느껴졌다.

가만히 손톱을 들여다 보니

손톱이 1-2mm청도 부러졌고 약간의 틈이 벌어진 것 같았다.


일요일 오후에 쪽파를 다듬다가 생긴  

상처라고 하게엔 남 부끄러운 상태의 상처이긴 하지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일요일 아침 아내는 텃밭에서

지난 해에 심었던 쪽파를 수확했다.

한 소쿠리 넉넉하게 겨울의 독한 날씨를 이겨낸

쪽파로 채워졌다.


저녁에 파말이를 해 준다는 아내의 말에

내 입 속은 어느새 침이 그득하게 고였다.

정갈하게 말아 놓은 녹색과 흰 색의 파와

빨간 초 고추장에서 느껴지는 산뜻한 시각,

알싸한 파의 향기,

그리고 초고추장을 찍어 입에 넣으면 

껴지는 새콤, 달콤, 그리고 약간 쓰고 매운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몸이 활기가 생겼다.


-살아 있네-


아내의 파말이 해 준다는 말 한 마디에

파처럼 희고 푸른 빛의 피가 신선한 산소와 섞여

내 몸 구석구석까지 돌아 흘러

몸이 새로이 태어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희고 푸른 피가

몸에서 도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은 실망스런 일이 생겼으니

그것은 아내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나랑 같이 파 다듬어요."


오후에 부루클린 아파트로 돌아와

막 쉬려던 참에 들려온  아내의 말  때문에

머리 잘린 삼손처럼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갔다.


평소엔 혼자서도 요리며 집 청소 등

가정 전반의 일들을 혼자서 잘 하던 

아내의 입에서 같이 쪽파를 다듬자는 말은

나를 조금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난 데다가

축구까지 했으니 몸이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아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오전에 영양제 먼저 주고,

오후엔 병을 주는 셈이었다.

순서가 바뀌면 훨씬 좋았을 텐데----

그러나 나는 마지못해 그러마고 했다.

아내는 파와 양파를 입에 대지도 않는다.

오로지 나를 위해 파말이를 하고

파김치를 담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내게

감히 아내의 제안을 거절할 명분도, 염치도 없었다.


"펀저 파뿌리를 자르고 보라색 껍질을 벗기세요,

참, 그리고 파 끄트머리께 시든 부분 잘라내는 것도 잊으면 안 돼요."


손톱의 상처는 바로 손톱을 이용해서

파뿌리를 자르다 생긴 것이었다.

한 십여 분 하다보니 진력이 났다.


나는 셋 째 딸 선영이의 말투를 흉내내며 이게 말했다.


" 나 파말이 안 좋아해!"


아내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평소 말이 거의 없는 선영이의 입에서

"선영이는 X 안 좋아해."라는 말이 나오면

우리 부부는 더 이상 강요하지도 설득하지 못 했다.

말 그대로 상황 끝!, 영어 표현으로 "PERIOD"(마침표), 

즉 더 이상의 왈가왈부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파 다듬는 일이 그리 즐겁지 못 한 데다가

단순한 일을 반복하는 짜증을 

선영이의 말투를 빌어 표현한 것이

아내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정말 파말이 한 번 먹자고 이런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을 뿐더러

화까지 날 지경이었다.


-그냥 안 먹고 말지-


"여자들이 집에서 하는 일이 다 이래."


한참을 깔깔대며 웃던 아내의 입에서 나온

이 한 마디가 내 심장을 두드렸다.


남편과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며

지내 온 35년 세월, 하루하루가 이런 일들의 연속이었음을----


하나하나 파를 만지고 쓰다듬다 보니

불가능할 것 같기만 하던 임무가 끝이 났다.

아내는 서둘러 저녁 준비를 하면서

둘째 동서와, 막내 동서와 처제도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다.


콩나물 찌개와 파말이,

그리고 부추전과 김치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아주 맛 있고 정감이 있었다.


부추전은 사위들 먹으라고

아내가 아리조나에서 돌아올 때

장모님께서 정성스레 다듬어 주신 부추로 만든 것이다.

정작 장모님은 신장 기능이 약해서

부추를 비롯한 녹색 채소를 드실 수가 없으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텃밭 농사를 멈추지 않으시는 것이다.


파를 다듬는 일은

처음에 짜증으로 시작했지만

기쁨으로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었다.

식탁에 둘러 앉은 둘째 동서와

막내 동생 부부가 맛나게 식사 하는 걸 보니

짜증은 다 증발하고

염전에 남은 소금같은 기쁨만이 음식 빈 식탁 위에 수북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작년에 심은 쪽파는

땅에 뿌리를 박고 땅에서 나는 영양분을 빨아들이며,

하늘의 햇빛과 비를 맞으며 자라서 우리 식탁에 올랐다.

하늘과 땅이 베푸는 은혜와

사람의 수고로운 노동을 통해 우리의 피와 살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사는

천지인- 이 삼재가 고루 협력해서

인간의 몸을 살찌우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결합하여

만들어 가는 거룩한 사랑의 행위가

곧 농사인 것이다.


내 손톱의 상처를 통해 다듬어진 쪽파는

저녁 식탁에서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피곤해서 나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내는 늦게까지 깨어서 설거지를 하고

저녁에 쓰고 남은 쪽파로 파김치를 담았다.


자기는 먹지 않으면서도

남편을 위해 졸음을 참으며 담근 아내의 파김치.

파김치 된 아내의 고단함으로 익은 파김치는

도대체 어떤 맛이 날까 하는 기대감으로

나는 지금 누구에게 들킬까 조바심하며

슬쩍슬쩍 입맛을 다시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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