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 땅에 발을 디딘 것은
1984 년 3월 11일 일요일이었다.
뉴욕의 날씨는 3월임에도 기세 등등하게 추웠다.
그러나 만 스물 일곱의 청춘은 기죽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나는 야채 가게로 출근을 해서
야채가게 종업원들이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부르는
소위 '야돌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우리 부부에게는
내가 도착하기 두 달 전에 태어난 큰 딸을 비롯해
네 명의 아이들이 숨 쉴 사이도 없이 태어났다.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아내도 아내지만
나도 큰 숨 한 번 들이쉬기도 어렵게
바쁜 생활을 해야 했다.
야채가게 생활을 접고
세탁소를 시작한 것이 1990 년 8월.
다시 정신 없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경험도 없는데다가
믿고 의지할 사람도 없이
일을 시작했다.
시행착오를 거치고 지법 자리를 잡을만 하게 되니
어느새 일 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로 시작한 세탁소는 2-3 년이 지나면서
고지나치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너무 바빠서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을 지경이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서서 밥을 먹거나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다.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쁜 일상이 계속되다 보니
어디 여행 한 번 제대로 다니지 못 했다.
그렇게 십 몇 년의 세월을 보내고
큰 딸이 5학년인가 6힉년이 되던 해에 아내가 제안을 했다.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한 두번은 가족 여행을 하는 게 어때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돈도 돈이지만
내가 세탁소에서 빠져 나오는 게 그리 쉽지 않아서 였다.
내가 망설이는 기색을 눈치 챈 아내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시간이 흘러서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아무 소용 없어요."
"아이들이 아직 어릴 적에 함께 하는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 해요."
예나 지금이나
아내의 지혜로움은 나를 압도한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명료한 설명이었다.
내가 시간을 내기 쉬운 2월 말 쯤에
해마다 아이들 학교가 일 주일 가량 쉬는 적이 있다.
그 때를 이용해서 우리는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자마이카를 시작으로,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 월드와 멕시코 캔쿤,
'애틀란티스'라는 멋진 호텔이 있는 바하마 등을 다녀 왔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자라서
하나 둘 집을 떠나고
우리 부부 둘만 지금은 남았지만
여행 다니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많다면 많은 곳을 다녀오긴 했어도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한 번 쯤 여행하고 싶어 하는
뉴욕 시내는 뉴욕 생활 30 년이 넘도록
별로 걸어다녀 본 기억이 없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뉴욕에서만 30년 넘게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으니 뉴요커가 분명함에도
정작 뉴욕을 별반 다녀보지 못한
뉴욕 촌놈임에 분명한 것이다.
아마도 가까이 있으니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뉴욕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탓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올 여름엔 어디 멀리 가지 않고
뉴욕 시내를 한 일주일 걸어다니며
구경을 할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런데 아내에게 트럼프 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일반 서민 정서에 맞지는 않지만
하룻밤 숙박비가 천 달러가 넘는 방을
2백 30 달러 정도로 할인된 가격에 사용하라는
일종의 판촉 세일이었는데
아내가 그걸 덥썩 물은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세상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눌 수가 있다.
천 달러 가치가 있는 호텔 방을 2 백 몇 십 달러에
이용할 수 있으니
7 백 몇 십 달러 이익을 보았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그 하나요,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썼으니
고스란히 2 백 몇 십 달러를 손해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또 다른 하나이다.
아내는 전자의 대표 주자요,
나는 후자의 강력한 대변자이긴 하나
가정 농단을 일삼는 아내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작아지는 나는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 결과 우리는
지난 주의 하룻밤을
센트럴 파크 바로 열에 있는 도날드 트럼프 호텔에서 묵기로 하고
1박 2일 예정으로 뉴욕 탐방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매일 그럴 수는 없어도
일년에 한두 번 정도 이런 호사를 부릴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사실 지난 주에는 폭설 때문에
2천 달러 정도의 적자를 보았다.
그럼에도 가만히 입 닫고 있었는데
그런 말 했다가는 부푼 풍선에 바람 빼는
격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가 핀잔을 들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콜롬부스 서클에 있는 도날드 트럼프 호텔
주소는 1 Central Park West.
호텔 창문을 통해 본 센트럴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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