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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눈 쌓인 산길을 걸으며

눈 쌓인 산길을 걸으며 (2012)


오늘 오후엔 이른 점심식사를 마치고,
허드슨 강을 거슬러 강옆으로 난 오솔길을 걷다가,
절벽을 기어올라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아오는 하이킹을 다녀왔습니다.
틈이 날 때면 아내와 둘이서, 때론 혼자서 다녀오는 친근한 곳입니다.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이렇게 한적한 곳이 있다는 사실에
이곳을 찾을 때면 늘 감사한 생각이 들곤 하지요.

강물을 바라보며 깊은 강물소리도 들을 수 있고,
산길 따라 새소리와 나무를 스쳐가는 바람소리를 동무삼아
혼자 걷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드물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 다정한 눈인사를 나누는 것도
이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따뜻함의 하나입니다.
오늘은 지난 금요일 하루 종일 내린 눈 때문에
어려움이 있으리라 예상을 하긴 했지만
처음 트레일에 발을 옮겨 놓는 순간부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내 앞을 지나간 발자국으로 미루어
어림잡아 대 여섯을 넘지 않는 사람들만이 그 길을 지나간 걸로 판단되었습니다.
눈길을 걷는 일이 그리 녹녹치 않은 일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질 않았습니다.

발목까지 푹 빠지는 눈길에서
한 발자국을 옮기는 일이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새삼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처음엔 내리막길이어서,
그리고 누군가가 앞서 같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어
앞선 발자국을 덧 밟으며
그리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곤 두 갈래로 나누어진 길 앞에서 어느 길로 갈까하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하나는 강 옆으로 난 길이었고
또 하나는 그 위 산길을 따라 걷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선 발자국이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강을 따라 난 길로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 있었고
나머지는 산 쪽으로 난 길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내 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혹시라도 연인끼리 아름답고 비밀스런 시간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그 달콤한 기쁨에
작은 축복이라도 건네는 마음으로 강변 쪽 길을 피했던 거지요.

그런데 그 갈라진 길은 5분 정도 걸어가면 다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길이 만나는 곳에서 발자국은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발걸음을 계속 옮기는 일이 힘에 부쳤던 모양입니다.
앞서 갔던 사람들은 모두 거기서 다시 원위치로 선회를 한 듯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론 내가 혼자 가야한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

혹시라도 곰 같은 야생동물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자세히 살펴보니 눈 위엔 한 사람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있긴 한데
아주 희미한 것이,
전날이나 아니면 오늘 아침 이른 시간에
땅이 채 녹지 않고 얼었을 때 지나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적어도 내 앞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부터 두 시간을 절대 고독 안에서 혼자 고행하듯 걸었습니다.
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
그리고 가시넝쿨 위에 용케도 앉아 있던 불루 제이 한 쌍과
이름 모를 새소리 몇 구절,
오늘 따라 뒷꿈치를 들어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더 높아진 벼랑 위에 한가롭게 맴을 돌던 솔개 한 쌍,
바람에 날리며 햇살에 반사되어 은가루처럼 반짝이던 눈가루가
내가 만난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평지를 걸을 땐
벼랑을 기어오르는 일에 비하면 땅 집고 헤엄치는 일이었습니다.
평소에도 보통 사람들이 오르기엔
힘이 부치고 숨이 가쁜 곳입니다.
중간에 도루 내려가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게 만들 정도니까요.

벼랑을 오르는 길엔 어떤 자취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길 위에 눈이 쌓이고 덮여서
경사진 산의 형태뿐인 벼랑길을
그저 평소 다니던 눈짐작으로 발을 모로 세우거나,
아니면 발 뒷꿈치로 눈을 찍어가며 기어올랐습니다.

잘못 미끄러지기라도 하는 경우엔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질 판이었습니다.
거의 70도 경사는 족히 되는 벼랑을
중간 중간 서 있던 아름드리나무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겨우겨우 올랐습니다.

처음 걸음마를 익히는 아기의 걸음처럼
위태위태하게 한 발짝식 띠어 놓았더니
결국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평소엔 한두 번 쉬고 오르던 길이었는데
오늘은 스무 번도 더 멈춰서 숨을 골라야했습니다.

그런데 정상에 거의 이르렀을 때
털장갑 한 켤레가 길 양편에 도열하듯 늘어선 나뭇가지에
한 쪽씩 걸려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늘을 향한 가지 위에 꽂혀 있는 것이
마치도 힘들게 벼랑을 오른 나에게 수고했다고
‘Hi !’
하며 손을 흔들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눈이 묻어있고 또 그게 녹아 작은 고드름까지 열린 털장갑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거기 그렇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장갑을 나뭇가지에 걸어놓았을까?”
하며 잠시 어리둥절 했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걸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장갑이 바람에 날려와 그 자리에 툭하고 털어진 것도 아닐터이고,
누군가가 부러 마음을 써서
그 곳에 장난스레 걸어놓은 것이 틀림 없었습니다.

나는 단지 장갑 한 켤레를 만났지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빈 가지에 장갑을 꽂아놓은 사람의 따스한 마음씨와 만났기 때문입니다.

힘들게 벼랑을 기어오르는 그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라고
그 나뭇가지에 장갑을 걸어둔 사람의 마음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 털장갑은 내게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고 날이 풀리고 눈이 다 녹기 전에 그 길을 다시 걸으렵니다.
나도 그 길을 걷는 그 누군가를 위해서
숨이 가쁘게 올라야 하는 비탈길 옆에 있는 빈 나뭇가지에
털장갑 한 켤레 걸어 놓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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