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순두부
속초에 발을 디딘 지 오래지 않아
관광 호텔 같은 곳이 눈에 들어왔는데
지인은 속초를 방문할 때면 그곳에서 사우나를 한다고 했다.
긴 시간 운전하느라 몸에 쌓인 피로를 털어내는데
사우나가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그렇지가 않다.
일단 찜질방이라든지 사우나 같이
더운 곳에 머무르면 몸의 기가 머리로 쏠려
정신이 혼미해지고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사우나 불가마 같은 곳이 내겐 이 지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지옥이다.
원래 사우나 체험(?)까지 패키지로 들어 있었던 우리 일정에서
사우나 코스는 내가 생략하자고 했다.
정작 밤길을 운전해서 피곤했을 지인을 위해서는
사우나를 해야 했었지만
내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좀 견디면 될 걸'하고 이 순간 후회를 하고 있다.)
관광 호텔을 끼고 로터리(지금 도 이 말을 쓰는 지 모르겠다,)를 끼고 나오니
그곳에 식당 대 여섯이 무리를 지어 있었다.
이름 하여 '학사평'이라는 곳이었다.
두부를 만들고 순두부 같은 음식을 파는식당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는데
지인의 설명에 의하면 그 옛날부터
두부를 팔아 자식들 대학 교육을 시켰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인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나신 부친을 따라 이 곳에 처음 왔었는데
지금도 속초에 올 때면 이 곳을 들른다고 했다.
그것이 벌써 50년 가까운 세월이 되었단다.
그동안 부친은 세상을 떠나시고
기회가 있으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찾던 이 순두부집.
기억의 재생, 혹은 추억의 재생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그 순두부집이었다.
바쁘게 사는라 기억 속에서 밀어 놓았던 아버지를
40년 혹은 50년을 거슬러 올라가
식탁 가운데 다시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이런 여행을 통해서이다.
그러니 우리가 했던 한 끼 식사는
그에게는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은
경건한 의식이었을 수도 있었겟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다 커버린 지인의 두 아들도
다시 몇 십년이 흐른 뒤
이 곳에 와서 자신들의 아버지를 회상할까?
시간은 그래서 엄숙하고 성스럽기까지도 한 것이다.
그곳에서 맛 본 순두부는
정말 진짜 '순'두부였다.
나는 매콤하게 끓인 해물 순두부 찌개를 즐겨 먹는데
그 식당에서도 내가 기대한 것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순두부'를 맛보기 전까지는
순두부는 붉은 색이 돌고 매운 맛이 나는 찌개로만 알고 있었다.
직접 두부를 만들고
거기에 바닷가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이나
소고기 혹은 돼지고기 같은 것을 함께 넣어
매콤하게 끓인 것이 속초 순두부 찌개라고 지레짐작을 했다.
직접 두부를 만들고 싱싱한 해산물을 써서
도시에서 맛보는 순두부보다는
좀 맛이 나은 정도의 순두부가 '속초 순두부'라고
내 나름의 결론을 가지고 순두부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래서 식탁에 놓인 순두부를 보고는 잠시
순두부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아무 색도 없이
맑은 국물에 순두부만 있는 형태였다.
나는 잠시 그 맛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았다.
싱겁고 밋밋함이 머릿속 화면에 나타났다.
어쩌랴, 실망스럽긴 하였지만
순두부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내가 늘 먹던 순두부와는 달랐다.
짜릿하고 매콤하며 황홀한 맛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순두부 찌개가 아닌 '순두부'만
허연 국물 속에 심심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밋밋했다.
그래서 함께 나온 간장을 아주 조금만 국물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맛을 보았다.
입 안에 넣고 천천히 맛을 느끼려 해보았다.
아주 연하게 구수한 두부의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속초 순두부의 맛은 음악 용어 중 '포르테'가 아닌
'피아노' 혹은 '피아니시모'의 세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냥 목구멍으로 넘기면 인식할 수 없고
느끼고 맛보려는 마음을 가져야
비로소 보이고 들리며 맛이 나는 것이
바로 속초의 '순두부'였다.
나는 그때까지 온갖 양념과, 고기나 해산물이 들어가고
색깔 또한 붉은데다
맛 또한 맵고 짜서 강렬하고 자극적이며
화려하게찌개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순두부 요리라 생각했다.
순두부의 순수함이 다른 것들에 가려
정작 진짜 순두부는 보이지 않는 것을
순두부로 알았던 것이다..
천천히 마음으로 맛을 볼 때
비로소 드러나는 순두부의 맛.
다른 것들이 첨가되지 않아서
비로소 드러나는 두부의 맛.
속초의 순두부는 진짜 '순두부'였다.
순수하게도 원형이 남아 있는-----
나는 순두부를 먹으며
앞에 앉아서 함께 순두부를 먹는 지인의 마음과 만났다.
살아오면서 진짜 '순두부'는 보지도 맛보지도 못한 것 같다.
순수한 '쌩얼'은 보지 못하고
덕지덕지 바른 화장한 얼굴을 원보습으로 착각하며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것은 아닌지--------
있는 듯 없는듯 구수한 맛이 나는
속초의 순두부를 맛보며
정말 소중한 것들의 진짜 모습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초의 순두부 집은 정말 소중한 존재의
'쌩얼'과 만나는 '성지'인 것이다.
난 지인의 아들들도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면
속초에 가서 이 순두부를 맛보게 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언제고 아내와 함께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속초에 가서 순두부를 먹자고 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순수한
'순두부'같은 존재인지를 천천히 순두부를 먹으며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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