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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노르웨이 여행

노르웨이 여행 - 트롬소 셋째 날(일출과 일몰)

노르웨이 여행 - 트롬소의 일출과 일몰


순전히 발 품 판 결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다시 한 번 오로라를 본 우리는

결과적으로 노르웨이 여행의 본전은 거의 다 뽑은 셈이어서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심 봤다 !!!!'


물가 비싼 노르웨이에서 

우리의 주 목표였던 오로라 관측과 아울러 

생명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맛 좋은 물을 

돈 안들이고 마실 수 있음은 일종의 보너스였다.


다시 하루 밤을 지낸 다음 날

우리는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다.


호텔 로비에서 일출을 보기 가장 좋은 위치를 물어보았다.

직원은 우리에게 바로 그 마을의 배경이 되는 

산 꼭대기가 가장 높다고 해서

우리는 택시를 불러 그리 가자고 했다.

그런데 전망이 그리 좋지 않았다.

집과 건물들 때문에 가로막혀 일출 장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아프리카 출신의 택시 기사에게

그 곳 말고 높은 곳으로 가자고 부탁을 했는데

기사는 트롬소 공항 근처에 있는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어느 마을로 우릴 데리고 갔다.

그 곳 역시 집들이 우리 눈을 가로 막았다.

실망스러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언덕길을 오르기 전에

전방이 뻥 뚫려서 해 뜨는 곳이 잘 보이는 곳이라

눈 여겨 봐 두었던 곳으로 가자고 

기사에게 채근을 했다.


결국 택시 기사는 우릴 바닷가 근처의 큰 길가에 내려 놓았다.

다시 돌아갈 길이 막막했지만

길 가운데 버스 정류장이 있었으므로

택시를 부를 수 없으면 

최악의 경우 버스를 타기로 하고 

일단 추위와 바람이 기다리고 있는 낯선 길 위에 내렸다.


길을 건너 바닷가로 향했다.

그런데 바다 가까운 곳으로 가려고 하니

막상 접근로가 눈에 뜨이질 않는 것이었다.

바다 가까운 곳에 드문드문 집들이 있고

큰 길에서 그런 집들로 이어지는 길이 전부였다.


길 이외의 곳은 텅 빈 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우리가(특히 마님) 용감하게

사유지를 침범해 그 집에 가까이 가서 발견한

농업용 트랙터 같은 걸로 보아 그 빈 들은 경작지임이 분명했다.


사유 재산인 남의 땅을

주인의 허락도 없이 무단 침입(?)하는 것은

어느 나라라도 그러하겠지만

용서가 되지 않는다.

특별히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더 그러하다.

총기 소유가 허락되는 근본적이 이유가

목숨과 함께 목숨만큼 중요한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서부개척 시대라면 

남의 영토 침입은 곧 죽음을 불사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마님은 이런 사실을 아시는 지 모르시는 지

용감하게 그 집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진을 시작했다.

스페인 여행 당시 풍차 마을에서

돈키호테의 불굴의 도전 정신에 깊이 감염되어 

어릴 때부터 다분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의 끼가 있는 마님에게 

그런 용기가 생긴 것이 틀림 없었다.


준법 정신이 투철한 모범 시민인

동서와 처제는 아예 발걸을을 떼지 못 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동양인 침입자들에게

무턱대고 총을 쏘는 일이야 있으랴 만은

최악의 경우 경찰서에 끌려가는 불미스러운 일로

노르웨이 여행에 아주 멋진 추억거리 하나를 추가할 수도 있었다.


동서와 처제는 차마 발길을 떼지 못했다.

나는 최악의 경우 마님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으나

적극적인 걸음을 떼지 못하고

끌려가는 예수의 먼 발치에서 

어정쩡하게 따르던 베드로처럼

엉거주춤 걷다 섰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 때 차 한 대가 나를 스쳐 집이 있는 바닷가 쪽으로 지나갔다.

나와 눈이 맞은 운전자는 60대의 초보 할머니처럼 보였다.

미소라도 띠어 보이려고 했으나

입이 얼었는지

아니면 마음이 얼어붙었는지

아무런 평화적인 제스추어를 취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무단 침입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어야 했었는데

차는 이미 뒷모습이 멀어진 후였다.


마님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내키지 않는 걸음에 조금 속도를 내어 집 쪽으로 향했다.


한 동안 시야에서 사라졌던 마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그러더니 손짓을 하며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만감이 교차했다.

혹시 주인 할머니가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을 한 것은 아닐까?


내 걸음걸이에 가속도가 붙었다.


마님 있는 곳에 가까이 가니

마님은 눈 속에서 하얗게 웃고 있었다.


주인 할머니가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구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마님은 우리의 영도자이며

훌륭한 외교관이었다.

외치와 내치에 작은 결함도 발견할 수 없는 

아주 위대한------


나와 마님은 일출과 일몰을

아주 좋은 위치에서 볼 수 있었다.

동서와 처제는 끝내 바닷가까지 오지 않고

길 가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기야 거기서도 일출을 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해는 오전 11시 50분쯤 떠서 12 시 가량 되어 진다고 했으니

일출과 일몰의 과정이 10분 안에 다 이루어지는 셈이었다.

한 자리에서 이루어진 일출과 일몰인데도

정작 해는 그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되던

북극의 겨울철 일출과 일몰의 현장을 목격하고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10분 안에 하루의 시작과 끝을 경험한 것이었다.


우리는 무사히 목숨을 부지한 채로

그 곳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가 그 집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동서와 처제는 마을 탐방을 했던 모양이었다.

큰 길에서 잠깐 걸어들어간 곳에 위치한 

햄버거 집으로 우릴 안내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우리는 그곳에서 햄버거로 식사를 하고

길로 나왔다.

해가 뜨고 졌던 곳의 반대편 하늘이 신비스러운 색으로 물들었다.

(도대체 어디가 동쪽이고 어디가 서쪽이야?)

우리의 기억도 하늘빛으로 물들었다.


우리는 잠시 추위에 떤 보람이 있었는지

운 좋게도 지나가는 빈 택시를 탈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 오는 내내

신비스런 하늘을 우릴 쫓아 왔다.

그 하늘빛은 우리 가슴 한 켠을 차지하고

아예 들어 앉았다.


트롬소를 떠올릴 때면 

오로라의 빛깔과 함께 

푸른 색과 보라색, 주황색 들이 혼합된

신비스러운 하늘의 빛깔로

두고두고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이다.









일출 보러 가는 도중

택시 안에서 본 풍경.




어느 것이 일출이고

어느 것이 일몰인지------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