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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노르웨이 여행

노르웨이 여행 - 베르겐 도착

노르웨이 여행 - 베르겐 도착


베르겐에 도착한 우리는 택시를 탔다.

공항에서 호텔이 있는 시내로 가는 택시는

정찰제 요금을 받는 것 같았다.

트롬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25분 가량 그야말로 도시임을 알게 해주는 길을 달려

우리는 호텔에 도착했다.


베르겐은 트롬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귓 등으로 흘러간 정보에 의하면 트롬소는 북위 90도에,

베르겐은 북위 60도에 위치하고 있다.

트롬소와는 경도가 30도 가량 차이가 났다.


한반도의 중앙을 38도라 친다면

베르겐도 상당히 북쪽에 있고 

경도의 차이로 보아 노르웨이는 

남북으로 길쭉한 나라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도 보지 않고 이런 걸 유추해 내는 나의 이성과 지성이 빛나는 대목)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질질 끄는 것은

베르겐도 여전히 지구의 북반구에 위치해 있음에도

날씨가 비교적 따뜻(했)함을 이야기 하고자 함이다.

다음 날 우리가 피요드 구경을 하기 위해

고속으로 달리는 배의 갑판에 나섰을 때 빼고는

베르겐에서는 별로 추위를 느끼지 못 했다.

트롬소에서 추위에 견디는 내성을 키워서 일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베르겐은 멕시칸 걸프 스트림의 영향으로

따뜻한(?) 곳이었다.


여하튼 그곳의 온도는 우리가 머무는 동안

대충 0도 내외를 가리켰던 것 같다.


택시를 타고

우리는 '쎈트롬'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나중에 눈치로 쎈트롬이 베르겐의 중심지를 뜻한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쎈트롬에 베르겐의 거의 모든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 'Bergen'이라는 명칭에서

독일과 관련이 있는 곳일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의 뉴저지 주 버겐 카운티와

지명이 같다는 사실 하나로도

친근감이 드는 도시 베르겐을 만난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노르웨이의 세 도시를 여행하면서

베르겐은 기후도 가장 따뜻했고

그래서인지 포근함을 느꼈던 도시다.

노르웨이로 살기 위해 이민을 간다면

베르겐은 100% 내가 머물러 살 곳이라고 말하면 

내 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위치는 A+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좋은다. 

그런데 나중에 방에 들어가 보니

낡고 허술한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되어서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C 정도의 평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님은 호텔 데스크에서 얘약된 방의 치를 확인하더니

바꿔줄 수 있냐고 청을 넣었다.

예약되어 있는 방은 창 밖으로 바닷가의 경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님의 위대한 면모는 이 대목에서 빛을 발했다.

나 같으면 예약된 방이 특별한 결함이 없다면

내 숙명이거니 하고 받아 들인다.


마님의 "바꿔 줘!"

한 말씀으로 우리는 바다와 시내의 풍경이 잘 보이는 곳으로

방을 바꿀 수 있었다.

마님은 살아가면서 

상황을 최고가 아니면 최선의 것으로 만드는 

비교 불가의 탁월한 능력을 지니셨다.

그 혜택은 고스란히 나나 아이들 몫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직도 궁금한 것이 있는데

마님은 나를 지아비로 택해 30년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바꿔 줘" 한 마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마님의 남편으로 '최상'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마님이 즐겨 쓰는 표현 중 하나인

"바꿀 수 없으면즐겨라!"에 충실한 것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최악의 경우 첫번 째가 아닌

두 번 째 답이 내게 돌아올 경우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같은 혼돈이 나를 찾아올 지도 모를 일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는 이 경우 닫혀 있는 것이 훨씬 낫다.

착각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님은 최상의 선택을 했다는 굳센 믿음으로 

그 탁월한 선택을 존중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은 

세월의 나이테가 늘어가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다.


방은 4층에 있었는데

복도에 깔려 있는 싸구려 카펫 위에는

어디선가 물이 넘쳤는지

얼룩이 전체적으로 남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이건 완전히 70년대 한국의 여관 같았다.

미국과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런 호텔은 만난 적이 없었다.


커텐 밖으로는 베르겐의 바다며

그리고 산 비탈에서 베르겐 시를 내려다 보는 집들,

그리고 물 건너 저 편에

유네스코에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는 브뤼겐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방의 위치는 한 마디로 대박이었는데

그것은 호텔의 시설이 주는

낡고 피곤한 이미지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틀 동안 방 안에서 창문 밖을 쳐다 보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불빛이 깜빡였고

그 불빛 주위를 어둠이 가볍게 감싸고 있었다. 


그 때 동서와 아내가 방문을 두드렸다.

손에 컵 라면 두 개가 들려 있었다.

'Mr. Lee"라는 상표가 붙어 있는데

트롬소에서 산 것이었다.

우리는 일단 뜨거운 물을 붓고

스프와 고추장을 풀어 아주 맛나게 먹었다.

후루룩 국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마님이 말렸다.

건강상의 이유였다.

아쉬워도 견딜 수 밖에----


라면 맛의 완성은 국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심오한 명제도

적어도 마님 앞에선 맥을 못 춘다.


노르웨이 상표에 붙어 있는 Mr.Lee 상표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 있으면 하기로 하고

라면 국물이 주는 따뜻한 위로 까지는 맛 보지 못한 채

우리는 어둠이 내려 앉은 

그러나 불빛이 따스한 도시 베르겐에 첫 발을 디디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왔다.



공항에 있는 자동차 광고.

마님에게 차를 밀어 산으로 올리라 했다.

그걸 하라고 시키는 나나

시킨다고 그대로 하는 마님이나------




호텔 창 너머 보이는 브뤼겐



엘리베이터 안에서


호텔 입구의 동상.

그런데 뉘신지?

노르웨이는 곳곳에 동상이 참 많다.

동상만 다 알면 조금 과장해서 노르웨이를 점령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