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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노르웨이 여행

노르웨이 여행 - 식당 'Emma' 이야기

노르웨이 여행 - 식당 'Emma' 이야기

 

시간 죽이기의 한 방편으로

트롬소 시내 중심가를 어슬렁 어슬렁 걷던 우리는 

마님께서 한 두달 전 쯤에 예약해 두었다는

식당 'Emma'로 돌아왔다.

돌아왔다는 말은 우리가 걷기 시작한 포인트가 바로 그 식당이었기 때문이었다.

호텔에서 나와 식당의 위치를 확인하고 우리는 무작정 트롬소를 배회했다.

 

'Emma'는 테이블이 여덟 개 정도 되는 아주 작고 아담한 식당이었다.

 

아내 말로는 사람들의 이용 후기가 아주 좋은

유명한 식당이라고 했다.

아무리 맛이 뛰어나다고 이름난 식당의 음식이라도

그것이 양식이면

따근한 라면 한 그릇보다 더 나아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겐.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그렇고

요리의 나라라고 하는 이탈리아에서도,

미각에 예민하다는 파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미각의 유전자가 잘못 되었는 지,

아니면 한식이 워낙 뛰어나서인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비싸고 유명하다고 한들 

양식당의 음식 맛은

라면이나

마님이 평범하게 끓여주는 된장찌개가 내는 맛의 문턱에도 이르질 못한다.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웨이트레스가 

우릴 맞았다.

식당이 워낙 작으니

혼자서 서브를 하는 것 같았다.

주문도 받고 음식도 가져다 주고

캐쉬어까지 겸직을 했다.

하기야 좁은 식당에서 한 사람이 더 있으면

서로 몸만 더 부대끼며 그렇지 않아도 좁은 공간을 

더 비좁게 만들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창가에는 그 전 날 밤 오로라를 보러 함께 갔던

홍콩에서 왔다던 부부가 있어서 인사를 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 한 쌍도 우리보다 나중에 왔서 식사를 했다.

 

우리는 각자 취향에 따라 주문을 했다.

나는 버거를 주문했고

동서는 소세지 종류를,

아내는 생선으로 만든 죽 비슷한 걸 주문했다.

 

결론적으로

완전 실패.

 

무엇보다도 내가 주문한 버거는

비주얼 상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내가 미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버거를 굳이 선택한 이유는

실패가 두려워서이다.

버거는 어딜 가나

실패하지 않고 한 끼를 때우는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중간 정도는 되는 음식이다.

 

그런데 버거를 베어 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소금 덩어리름 먹는 줄 알았다.

나는 짠 음식,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안에 든 패티가 소금만 먹고 자란 소로 만들었는 지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유난을 떠는 건 아닌 지 몰라서

모두에게 맛을 보라고 했다.

한결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미국 사람들이 잘 먹는 메뉴 중에 'Corned beef'라는 것이 있다.

'corn'이라는 말이 들어 있어서 옥수수와 관련이 있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소금에 절인 소고기가 바로 'corned beef'다.

당연히 짜다.

그런데 이건 'corned beef'는 감히 곁에 끼우줄 수 없이 짰다.

 

보통 이 정도 상황이면

서브하는 사람이 눈치를 채고 

무엇이 잘 못 되었느지 상황을 파악하고 무언가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보통(거의 언제나) 식사가 시작되면

웨이터나 위이트레스가 와서

미소를 머금으면서 

"How's everything?" 하고 묻는다.

그러면 손님들은 대충.

"Good!", "Excellent!!" 라고 응답하며

식사를 이어간다.

이건 거의 공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형화되었어서

어떤 때는 도리어 귀찮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상한 낌새를 웨이트레스가 눈치를 챈 것 같은데도

전혀 우리 테이블에는 가까이 올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예전의 나 같으면

격렬한 항의를 하고 

환불을 받거나 음식을 다시 해 오게 시켰을 것이다.

이젠 이것도 인생의 한 부분이거니 하고

그냥 지나친다.

 

관광지의 식당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풍경이긴 하지만

입안이 영 씁쓸하고 오랜 동안 짠 맛이 남았다.

 

'Blue is the warmest color'에 나오는 

푸른 머리의 Emma는

이 식당 때문에 내 기억 속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날 저녁 호텔에 돌아와서

그 식당에 대한 review를 썼다.

버거 안의 고기가 너무 짜고 웨이트레스도 너무 성의가 없었다. 등등-----

전 사람들의 review는 과장된 면이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평점은 최하.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출(submit)을 누르려다 말았다.

 

트롬소라는 작은 도시를 방문했던 사람들이

'오로라' 빼고 어떤 다른 추억거리가 있겠는가.

시간이 흐르고 트롬소에서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즈음,

'Emma' 라는 다소 환상적인 이름을 가진 그 식당에서

소금보다도 더 짠 비프 버거를 먹었던 기억을

오로라와 함께 꺼내 놓으며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경험을 우리는 그곳에서 한 것이다.

 

그것은 두고두고

비프 버거의 짠 맛이 입 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이야깃 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러니 한 끼 식사를 망친 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불평하지 않고

추억을 샀다고 생각하면 그리 억울할 것도 없고

오히려 심정적으로 부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억과 기억은

단 한 번이다.

 

돈으로 살 수없는 것이 기억과 추억이다.

언제고 트롬소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꼭 이 곳을 들러 짜디 짠 버거를 맛 보시길 권한다.

쉽게 지워지지 않을 추억 하나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족: 돈을 내지 않고 그냥 마시는 물 맛은 한 마디로 기가 막혔다.

 

https://blog.daum.net/hakseonkim1561/1262#none

 

 

 

 

여기가 바로 'Em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