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여행 - 트롬소에서 오로라를 보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도
내 눈은 자연스레 차창 밖 하늘로 향했다.
하늘엔 구름 같은 것이 약한 녹색빛을 띄고 있었는데
눈 길을 운전하고 있는 택시 기사를 방해할 수 없어서
정말 오로라인지 감정을 부탁하진 못했다.
바닷가에 새로 진어진 지 몇 해가 되지 않은 호텔은
첫인상이 아주 깔끔했는데
오렌지와 검은 색을 호텔의 상징 색으로 한 것 같았다.
때로는 노란 색도 거들며 호텔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우리는 첵인을 하고 각자 방으로 가서 짐을 풀고
다시 우리 방에 모였다.
트롬소에서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너무 허기가 졌다.
오슬로에서 먹은 아침도 아침이거니와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기억에도 없을 정도로
우린 아주 허술한 식사로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오로라 구경도 식후경이어야 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도대체 뭘 먹는담?-
그 때 등장한 것이 플라스틱 용기에 든 밥 둘과
고추장이었다.
아내는 떠나기 이틀 전인가
아주 작은 용기에 든 고추장을 샀다.
이름이 '불타는 고추장'이었다.
서양식으로만 며칠 동안을 먹게 되면
내 몸은 일종의 금단 현상을 겪게 된다.
분명 먹기는 먹었음에도 영양실조에 걸린 것처럼
심신이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 넷은 모두 한국에서 산 것보다
미국에서 산 기간이 더 많은 역전의 용사이다.
그럼에도 미국 생활 30년을 넘긴 베테랑이라도
값 비싼 스테이크보다는
매콤한 신라면 한 그릇에 정신이 흐물거리는 한국 토종들이다.
아내는 케네디 공항에서 떠나기 전
컵라면과 컵 우동을 사서 저녁을 먹을 때
밥도 두 그릇을 사라고 명했다.
아내의 말에는 토를 달면 안 된다.
늘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마님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자다 깨서 먹는 떡 맛이 어디 있으랴만은
눈 뜨고 있을 때
게다가 허기진 상태에서
눈 앞에 짜잔하고 나타난 흰 쌀밥과 고추장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우리는 밥에다가 불타는 고추장을 썩썩 비벼서
정말 꿀처럼 단 한 끼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내가 산 '불타는 고추장'은 우리 몸에 불을 질러서
좀 허풍을 떨자면
그날 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밖에서
추위에 떠는 우리의 몸을 모닥불처럼 덥혀주었다.
우리는 오로라를 찾아 오후 7시 반에 떠나
밤 한 시에 돌아오는
오로라 헌팅 밴에 합류하기로 했다.
일인당 가격이 아주 비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결정된 사항을 두고 궁시렁거릴 수는 없었다.
벽오동 심은 뜻을 아는가?
봉황을 보자함이다.
이 추운 북극 가까운 곳으로 우리가 찾아간 것도
다 오로라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닥치고 따라나설 일이다.
호텔 앞에서 밴을 타고 오로라를 찾아 떠나는 하룻밤의 여정.
나는 몸과 마음 공히 귀차니즘에 푹 젖어 사는 사람이다.
생선도 발려 먹기 귀찮아 한다.
마님이 가시를 발라줘야
먹을까, 말까 하며
부채도사처럼 이쪽 저쪽 선택을 위해 왔다리 갔다리를 반복한다.
당연히 사진 찍으러 다니면서도 삼각대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왜?
귀찮으니까.
몸에 시계 같은 것도 차는 걸 귀찮아 한다.
왜 사냐고 물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가끔씩 귀찮은 일이 겹쳐서 일어나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들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나도 종교가 있고
나름 함리적이고 건전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기에
재빨리 그런 비관의 늪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도 알고 있다.
방법을 굳이 밝히라면
마님 생각, 아이들을 생각하는 일이다.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이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어야 하며
적어도 실망이나 슬픔을 주어서는 아니될 일이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 십 분 전 쯤에 호텔 앞으로 나갔다.
하늘에 옅은 초록색의 띠가 보였다.
오로라였다.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얹었다.
분명 내 삼각대인데
낯설었다.
겨우 어지어찌 하다 드디어 조작에 성공.
몇 장 실험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형태와 색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오로라가 카메라 화면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출발!
우리가 탄 밴에는 열 한 명인가가 함께 여정을 떠났다.
뉴욕에서 간 우리 넷,
브라질에서 간 남녀, 그리고 젊은 남자 하나
홍콩에서 온 남녀,
그리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영국 출신 부부?
오로라를 찾아 떠난 는 밤하늘에는
오로라가 춤을 추듯,
혹은 바람에 흔들리듯 너울거렸다.
그렇게 우리는 추운 북극의 겨울밤을
오로라를 찾아 이러저리 옮겨다니며
아주 황홀한 밤을 보냈다.
우리는 불타는 고추장 탓에 그나마 버텼는데
우리보다 훨씬 더운 나라 출신이어서
아무래도 추위와는 우리보다 낯이 더 선 브라질 남녀는
무엇으로 그 추위와 대적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설마 불타는 고추장?
그 의문은 풀 길이 없었다.
단지 그들이 트롬소에 오기 전에 아이스란드에도 갔었는데
거기에서는 애석하게도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고 하니
아마도 그들을 추위에 견디게 한 힘은
봉황을 보자하는 간절한 염원이 아니었을까?
불타는 고추장보다도 더 매운 간절한 염원은
북극의 추위도 무릎을 꿇었고
이럭저럭 우리 모두는 소원을 성취하고
무사히 숙소롤 돌아올 수 있었다.
운전기사는 자기 카메라로
승객들의 사진도 찍어주고
자기 개인의 사진도 찍어주며
돈도 벌고 취미 생활도 하는 것 같았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그날 밤 난 그 운전기사가 무지 부러웠다.
그렇게 트롬소에서의 첫밤을 보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벌거벗은 남자의 상.
날도 추운데------
옷 하나 걸쳐주려 해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혀서----
호텔 로비
호첼 복도
침실
호텔 앞에서 찍은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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