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출근을 하기 위해 늘 지나다니는 동넷길에는
(나는 20년 넘게 이 동네 살았어도 길 이름을 거의 모른다.)
마음 속에 새겨진 몇 가지 풍경이 있다.
그 길은 우리집에서 나와 큰 길을 만나 우회전해서
200여 미터 쯤 되는 곳에 있는 폰드 사이드 파크를 지나자 마자
다시 우회전하면서 마주치게 된다.
아이들 어릴 적에는 타운의 수영장에 가느라
여름날이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지나다녀야 했고
철뚝길이 있어서 기차가 건널목을 가로질러 갈 때는
길면 5-10분씩 기다려야할 때도 있다.
옆으로 개울물이 흘러 예전엔 물레방아가 있던 집도 있는데
큰 물이 나면 그 집 마당의 반은 물에 잠기는 것을 보며
길을 지난 적도 몇 차례 있다.
주중에 부르클린에서지내기 전에는
싫든 좋든 20년을 (거의)하루도 빼지 않고 그 길을 지나다녔다.
일요일에는 성당을 가기 위해서라도 그 길을 지났어야 했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기억들과 추억들로 풍성한 길이지만
그 중에서도 두 집에 깃든 추억은
올 해도 여전히 새롭게 재현이 되어
그 길을 지나다니면
화톳불 옆에 있는 것처럼 따스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 중 한 집은 그 길에 접어들면서 왼 편으로 만나는 두번 째 집인데
둘째 딸 아이의 친구가 살았던 집이다.
할로윈 데이가 있는 11월 초가 되면
바로 길 옆, 그 집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아주 무섭고 흉칙한 가면을 쓴 사람 크기의 인형이 등장한다.
이사간 첫 해에는 할로윈 데이가 있으니
집마다 음산한 분위기의 장식을 하는 전통의 하나로만 생각을 하고
별 느낌을 갖지 않고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정작 할로윈 데이가 되어 그 집 앞을 지날 때 기겁을 했다.
인형인 줄만 알았던 것이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11월 내내 인형을 의자에 앉혀 놓았다가는
할로윈 데이 당일에는 둘째 친구의 엄마 아빠가
그 자리에서 인형과 똑 같은 복장과 가면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놀랐지만 그 이후로는 할로윈 데이를 맞을 때마다
그 집 앞을 지나며 흐뭇한 인사를
그 흉칠하기 짝이 없는 괴물 부부(?)와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올 해의 할로윈 데이에도 여전히 그 괴물부부는 다시 살아나
동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을 것이다.
이름도 내 기억에 희미한 둘 째 친구네 가족은
벌써 오래 전에 그 집에서 이사를 갔다.
이 집에서 두 집 건너 오른 편에는
5-6미터 가량 되는 키 큰 나무가 있는 집이 있다.
이 나무는 사철 푸른 상록수인데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그 나무에 색색의 불이 켜진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올해도 불이 켜져서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12월의 밤을 따뜻해게 비춰준다.
그러니 추수감사절이 끝나며
그 집에 언제 불이 켜질까 하는 기대감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혹시 나만 그런가 해서
우리 식구들에게 물어보니 한결 같이 다들 그렇다고 한다.
비단 그런 기대감과 따스함을 느끼는 건
우리 가족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동네 사람들과 그 길을 오랫 동안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불들이 건네는 숱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비록 그 길을 이젠 지날 일이 없어진 사람에게도
12월 내내 그 나무에서 어둠을 밝히던
불빛이 가슴에서 빛을 내고 있을 것이다.
키 큰 나무에 달린 전구를 가는 일도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 지나다 보니
리프트가 달린 트럭이 와서
일일이 점검을 하고 전구를 갈아끼우는 걸 본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어둠을 밝히기 위해
전구를 갈아끼고
적지 않은 전기료를 부담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집 주인이 22년 전 처음 이사왔을 적의 그 사람인 지는 모른다.
둘째 딸의 가족들이 오래 전에 이사를 간 것처럼
이 집 주인도 바뀌었을 지 모른다.
할로윈 데이의 유쾌한 기억과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의 불빛 장식이 주는 따스한 기억은
비록 그것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그곳을 떠났어도
아직도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아마 먼저 살던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새로 이사온 사람들도 기꺼이 그리할 것이라고 단단히 약조를 하고
집과 함께 전통도 인수인계를 했을 것이다.
얼마간의 귀찮음과 불편함이 따르고
비용도 들겠지만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들로 해서
세상은 얼마나 더 밝아지고
사람들의 마음은 기 쁘고 따뜻해지는 지-------
자는 전통을 지키는 사람일까
나는 전통을 만드는 사림일까.
나는 전통을 없애는 사람일까
무심히 한해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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