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마스 이브를 가족들과 지내고
잠자리에 든 시간은 하루를 넘기고도 30분이나 지난 시간이었다.
어제 너무 피곤했다.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가게 일이 너무 바빠서
점심 먹는 일도 잊었다.
크리스 마스 당일은 감옥에 있는 대자 면회를 가는 것이 전통이기에
아침 다섯 시에 알람을 맞추어 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세 시에 한 번 깬 후로 잠을 설첬다.
아내와 둘째 딸, 그리고 큰 아들은
다섯 시가 되니 South Carolina에 있는 막내 아들 면회를 위해
일제히 기상해서 일사분란하게 떠날 차비를 한다.
그들이 떠나고 난 후
나도 맨하탄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내 대자의 어머니를 모시고 감옥까지 가기로 약속을 했다.
새벽 여섯 시
집 밖으로 나오니 숲 속으로 달이 지고 있었다.
크리스 마스 이브에 내린 비 때문에
달이 촉촉히 젖어 있었다.
다리를 건너
Henry Hudson Park Way를 달리는데
뉴저지 쪽으로 달이 지고 있었다
고층 아파트 사이로 해가 지는 모습이 그럴싸 했지만
차를 세울 수가 없었다.
한참 지나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 장.
맨하탄 30 St.에서 좌회전
건물들 사이를 비집고
동쪽으로부터 동이 트기 시작했다.
대자 어머니를 픽업해서 감옥으로 출발한 시간이 7시.
어쩐 일인지 길을 잘못 들어 Lincoln 터널로 들어갔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머릿 속에 안개가 낀 것 같다.
터널을 건너 뉴저지 쪽에서 바라본 맨하탄의 하늘이 황홀했다.
포트리 어디쯤 차를 세우고 한 장.
하늘이 황금빛이었다.
정말 드문 광경이었는데
다 놓치고 말았다.
다시 달려서 감옥에 도착하니 8시 30분.
우리 앞에 40 명 가량이 줄을 서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보안을 위해서
면회를 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데
한 사람 앞에 3-4분 가량 소요되었다.
머리도 띵하고 눈도 아프지만
대자를 위한 기도하는 셈치고 참았다.
여기저기서 불평들이 쏟아져 나왔다.
속이 뒤틀렸다.
참았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면회실에 들어가니 10시 45분.
마침 오전 점호 시간이어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 대자를 만났다.
아프고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일단 내 눈이 너무 빨갛게 충혈이 되어 티가 났다.
대자는 한 시간 조금 넘게 있더니
서둘러 우릴 보내려고 했다.
아픈 건 참는다지만 빨간 눈까지 감출 수는 없는 일.
서로가 맘 편하기 위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
대자가 방송을 들을 수만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가톨릭 방송을 계속하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대자를 만나면 꼭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오늘은 다 포기했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자 말로는 그 지역이 전국적으로 앨러지 발생 지수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라고 했다.
알레르기 성 비염이 아닐까?
방송은 그렇다 치고
좋은 글이나
성경을 일고 묵상한 글이나
적어보내야 겠다.
늘 부족한 나를 본 오늘.
그래도 대자 얼굴 보았으니
Merry Christmas!
그리고 모두 떠난 빈 자리, Home Alone!
오늘 감옥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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