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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3월 11일.


2주 전 Hudson 강 

햇빛이 언 강 위에 내려 앉았다.

꽁꽁 언 강이 녹았으면 했다.

꽁꽁 언 강이 녹아 길이 열린다.

내 삶에도 햇살이 내려 앉아 그렇게 길이 열리고 봄이 왔다.



(2015 3.11) 오늘은 3월 11일이다.

내가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지 만 31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에서 산 것보다 미국에서 살아온 햇수가 더 많아진 지도 몇 해가 이미 지났다.


31년이란 시간.


내가 뉴욕 땅에 내리던 날은 일요일 저녁 8시 쯤이었다.

칼바람이 몰아치던 아주 추운 날이었다.

앞으로 펼쳐질 이민의 삶이 그리 녹녹치 않으리라는 걸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난 그저 새로운 세상에 대한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신혼의 달콤한 꿈에 젖어보기도 전에 

미국으로 떠난 아내를 

다시 본다는터질듯한 기쁨과 

내가 미국에 도착하기 두 달 전에 태어난 

큰 딸 소영이를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에

꽁꽁 얼어붙은 날씨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미국 땅에 발을 딛은 바로 이튿날 부터

난 일을 시작했다.

속칭 야채가게 야돌이 생활 6년,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세탁소 25년의 막이 오른 것이다.


그동안 식구도 늘었다.

딸 셋에 아들 둘, 

그리고 딸 둘은 결혼을 해서

사위 둘이 우리 식구에 수를 더했다.

그리고 재 작년에 태어난 손녀 Sadie와 

올 9월에 태어날 손주까지 합치면

축구팀 하나를 꾸려도 되는 숫자다.


내가 미국에 올 때 손에 들고온 것은

1,000 달러였다.

한 달 일을 해서 번 돈에다 그 천 달러를 합쳐서

Marantz라는 오디오와 canon 카메라를 샀다.

(이 두 가지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전축과 카메라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미국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런 걸 가질 수는 있었지만

사진을 찍거나 음악을 들을 시간을 거의 낼 수 없었다.

먹고 사는 일이 급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이민 생활의 아이러니인 셈이다.

공부를 하려던 마음은

둘째가 그 이듬 해에 태어 나고 

셋째가 다시 한 해를 걸러 태어나면서 접었다.

그러니 미국에서의 삶은 생활이 아니라 생존의 수준이었다.


1년 365일 중 360일을 일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돈 쓸 시간도 없이 일을 하다 보니 

집도 한 채 장만했고

아이들도 다 커서 자립을 하게 되었다.


집(Home)이라는 보이는 자산 뿐 아니라

사랑과 믿음으로 하나 되는 가족의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자산이 내게 생겨서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나의 꿈을 

아이들 성장에 투자한 셈이니

나의 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미국에 올 때 가지고 온 돈의 몇 백 배의 부자가 되어있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나를 사랑하고 존경해주는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결국 미국은 내게 기회의 땅이고

그 기회가 시작되고 성장하기 시작한 3월 11일을 

31년 이 지난 오늘에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고마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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