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이버 공간에서 사라진 Yahoo Korea에 있던 포스팅이 아내의 블로그에 남아 있다.
잃어버린 기억의 한 편 복원된 셈이다.
아카디아 국립공원에 다녀온 후 뉴욕 가톨릭 방송에 썼던 원고이다.
마음이 가나한 사람은 행복하다.- 아카디아 국립공원과 월든호수를 다녀와서
1
새벽에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 밤이 길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을이 우리 곁에 찾아온 것입니다.
하늘을 쳐다보면 맑은 날에는 별들이 유난히 초롱초롱 빛나고 있습니다.
가을 바람은 그렇게 별들을 스치며 먼지를 털어주나 봅니다.
가을 바람보다도 먼저 반짝이는 별빛에 가을이 묻어오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밤하늘을 쳐다보던 기억도 함께 묻어오는 듯합니다.
그래서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름의 기운을 느끼며 여름의 추억을 하나 만들고 싶어집니다.
그런 기회는 노동절 연휴보다 더 좋은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도 여름 내내 어디 휴가 한 번 제대로 다녀온 곳도 없고 해서
지난 일요일 오후에 무작정 집을 나서서 메인주로 향했습니다.
메인주는 캐나다와 접해 있고 대서양을 끼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인터넷에서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디렉션을 뽑아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별 준비도 없이 집을 나서서 York비치라는 곳에 들려 바다 구경을 하고 어두워진 길을 다시 달렸습니다.
중간에 잠시 길을 놓쳐서 낯선 곳의 밤길을 헤메다 목적지에 겨우 도착한 것이 밤 열 두 시 반쯤 되었습니다.
집을 나선 지 장장 열 한 시 간만에 목적지에 이르른 것입니다.
차 뒷좌석의 등받이를 접어 눕히니 제법 그럴듯한 잠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운전해서 피곤함에도 깊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반,
더 이상 누어 있을 수가 없지요.
바다까지 와서 해뜨는 장관을 놓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솟아오르는 태양과 그 빛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광경에 입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일출을 보고 아카디아 국립공원을 여기 저기 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산과 나무, 그리고 바다와 호수,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와 새들이 만들어내는 풍광들을 바라보며
'아~! 좋다!!' 하고 속으로 몇 번이나 나즉이 탄성을 질렀는지 모릅니다.
마음 속에 있던 오만 가지 근심이나 걱정들이 모두 사라진듯 했습니다.
실제로 자연에는 하느님께서 숨겨놓으신 보물, 즉 치유의 능력이 감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캐딜락 산이라고 불리우는 산 꼭대기에서 툭 트여진 광활한 바다를 보면서,
그리고 군데군데 피어 있는 아주 작은 야생화를 바라보면서
순수한 기쁨과 평화를 가슴 속에 가득 담아올 수 있었습니다.
신비하고 오묘한 자연 안에서 하느님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연을 잘 보존하여 이런 순수한 기쁨과 행복을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우리의 후대가 느끼고 맛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돌아온 이번 여행의 감흥은, 두고 두고 상큼한 추억이 되고,
또한 삶의 활력소가 되리라는 희망이 가을 밤 하늘의 별처럼 내 마음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2
아카디아 국립공원을 다녀온 여행이 가슴 따스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음은
Bar Harbor라는 부둣가에서 낚시질을 하던 한 사람 때문이기도 합니다.
떠오르는 해 구경을 하고, 어디 사진 찍을 거리가 없을까 하고 두리번 거리던 제 시야에
작은 보트 선차착장에서 낚시질 하던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아침 햇살에 은색으로 반짝이는 낚시줄,
그리고 낚아올린 생선의 파닥이는 몸짓과 비늘에 부딪치며 부서지는 햇살,
이런 것들이 생동감 있는 아침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사진의 소재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변머리가 없어서 사람들에게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일을 잘 못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주변만 맴돌고 있는데 그 사람이 눈치를 챈 것 같았습니다.
쭈뼛거리는 제게 어서 와 사진을 찍으라고 손짓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얼씨구나 하고 선착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낚시 줄에 생선 세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 있었습니다.
낚시에 문외한인 제게 그 사람은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고등어는 반짝이는 흰 색을 좋아해서 흰 낚시줄을 보고 몰려들기에
미끼 없이도 잡을 수 있다는 사실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낚시줄을 바로 발 아래 바닷물에 던지고 밑을 보라고 해서 시선을 밑으로 내리니
아니나 다를까 낚시줄 주변으로 생선들이 수없이 몰려드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것 저것 을 쾌활한 어조로 설명해 주는 그 사람 때문에 간 밤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곳이든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새롭고 신기한 경치를 경험하는 일은 참으로 신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에 못지 않게 여행의 즐거움과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친절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사람과 헤어진 후 부둣가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그 낚시꾼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찾아 와서 취사도구를 가지고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취사도구가 있으면 자기가 잡은 생선 몇 마리를 나누어 주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생선을 나누어 받진 않았어도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받은 것 같아
제법 선선했던 그 아침이었지만 가슴이 따스해졌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그마한 친절이, 한마디 사랑의 말이 저 위의 하늘나라처럼 이 땅을 즐거운 곳으로 만든다.”라고 말이지요.
친절함이 있는 곳이 바로 천당입니다.
그 낚시꾼으로 해서 메인 주의 Bar Harbor라는 부둣가의 마을은
천당 같은 곳으로 제 기억 속에 오래오래 머물 겁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친절 하나씩 베풀 때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조금씩 천당으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
여러분 모두 알고 계시죠?
3
제가 다녀온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산과 호수, 그리고 주변의 바다까지도 포함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와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과 최소한의 시설 이외에는 자연 그대로가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곳곳이 다 자연 상태로 유지, 보존되고 있지만 캐딜락 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
그 곳에 있는 안내문은 제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주위의 풀과 흙의 보존을 위해서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부탁의 말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사실 산 정상은 거의 대부분이 바위로 되어 있고, 흙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흙이라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바위가 오랜 풍화작용 때무에 깎이고 부서진 굵은 모래와 같은 흙이었습니다.
그 위에 키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신기할 것도 없고, 더더군다나 귀하다고 할 수도 없을 너무나 평범하고 하찮은 흙과 식물들까지
이리도 귀하게 보존하고 있음이 감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보존되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곳은 나무로 얼기설기 자연스런 모양을 유지하며 목책을 둘러 놓았습니다.
참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초라하고 하찮은 것 같아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으로 내시고 보호해 주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참으로 존귀한 존재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서로서로가 귀중한 존재이니 마땅이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도 새삼스럽게 들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식물들은 그곳이 천당입니다. 보호받고 존중받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서로 존중해주고 존중받으면 그곳이 바로 천당입니다.
천당은 아주 먼 곳에 있지 않고 내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을 베푸는 곳이면 바로 그곳이 천당입니다.
천당을 만드는 일, 우리 가정에서, 우리 직장에서, 우리들의 작은 모임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4
메인주, 아카디아 국립공원에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지방의 '월든 호수'에 들렸습니다.
아내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라는 책을 읽고 늘 가보고 싶어하던 곳이었는데
마침 집에 오는 길에서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정했습니다.
저녁 일곱 시쯤 되어서 도착한 그곳엔 이미 해가 호수 저쪽편으로 넘어갔고
붉고 노란 낙조만 하늘과 물 위에 남겨 놓은 상태였습니다.
소로우가 살던 집은 이젠 집터만 남아 있고 대신 그대로 복원해 놓은 집 한 채가
호수 근처에 소로우의 동상과 함께 세워져 있었습니다.
집이라야 우리 아이들 방 한 칸크기도 안되는 정말 게딱지만한 집이었습니다.
입구 맞은 편 벽에 벽난로가 있고 오른 쪽엔 침대만 달랑 하나, 그리고 왼 쪽 벽엔 호수를 향해 난 창문,
그리고 그 앞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책상이 놓여 있는 공간이 집의 전부였습니다.
이곳에서 살면서 소로우는 스스로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호숫가를 산책하고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적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책 ‘월든’입니다.
사실 소로우가 살았던 집과 소유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집이나, 소유에 얽매이지 않은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었기에 월든 호수며, 숲, 그리고 하늘과 바람까지도 모두 그의 소유였습니다.
비었기에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처럼 그의 영혼은 넓고 깊었습니다.
소로우는 물질적 소유뿐 아니라 마음의 탐욕이나 명예 같은 것고 버리고 비움으로써
진정한 부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비우지 못하고 세상의 쓸 데 없는 것들로 채우려는 저에게
월든의 방문은 진정으로 부유한 삶을 사는 방법을 은근히 일러 주었습니다.
내 욕심, 명예, 교만,질투, 미움 같은 것을 버려야만 더 커다란 하느님의 사랑이 우릴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빈 마음 상태가 가난한 마음이며,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글, 사진 / 김학선
2009년 9월 12일, 뉴욕 가톨릭방송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