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호를 한 바퀴 돌고나서
우리는 부두로 나갔다.
포장을 두른 이 곳이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 지 모르겠다.
부두에 도착해서
차에 내린 후 처음 만난 장면이 이것이다.
햇빛에 비친 의자.
새벽에 바다로 나갔다가
막 돌아온 어부인듯 한 이 두 사람은
화톳불 옆에서
무언가 뜨거운 탕을 들고 있었다.
곁에 기본으로 소주가 세 병.
내장까지 뜨겁게 데워줄 음식이다.
추운 바닷바람에 얼어붙은 몸이 녹았으면 좋겠다.
부두에 묶여 있는 배 한 척.
어둔 그림자가 물 속에 드리웠다.
앞 면엔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있다.
그리고 벗겨진 페인트.
이 배가 헤치고 온 파도,
그리고 세월
세월은 누구에게나 상처를 남기는 것 같다.
옆의 배.
녹이 슬었다.
세월이 간다는 것은
내 몸 어딘가에 녹이 슨다는 것과도 같다.
아, 시간.
부두 한 켠엔 불 타고남은 건물의 한 쪽 벽이 남았다.
거기엔 칸딘스키의 'Composition'을 아주 닮든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개 네마리가 추가 되었다.
나고 남은 쓰레기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다.
이곳은 아직 아침이 오지 않았다.
어부들이 부지런히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그물을 손질하느다는 것은
아주 숭고한 일이다.
뚫어진 그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낚시 바늘 없이 낚시를 하던 강태공은
삶이 그리 절실하지 않았다.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손에는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집어등.
얼마나 많은 오징어.
혹은 고기들이 불빛에 홀려
이 배 주위로 몰려들었을까.
유혹=죽음
누군가 아직 길 위에 남은
어둠을 쓸어내고 있다.
비로소 골목에도 아침이 밀려온다.
시장 한 구석의 식당에서
주인인듯한 사람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돼지머리 국밥 전문.
"맛 있어요."
말을 하며 짓는 미소를 보니
거짓이 있을 수가 없다.
그냥 등을 돌리려니 아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두는 두 개의 시간 단위가
아주 분명히 드러나는 장소다.
밤새 작업을 한 어부들에게는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고,
시장상인과 생선을 사러오는 사람들에게는
막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
부두의아침이다.
새벽을 달려 이 곳까지 왔다가
다시 어디론가 떠나려는 나는
어느 시간에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