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말의 바닷가는 추웠다.
아무리 날이 따뜻하다고는 하지만
겨울은 겨울이었고
바닷바람은 역시 바닷바람이었다.
손이 시려워 카메라를 계속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로
아주 게으르고 성의 없는 사진 찍기를 했다.
얼추 해가 나면서 우린 영랑호수를 한 바퀴 여유롭게 돌아서
'속초 관광 수산 시장'으로 향했다.
비교적 정돈된 모습이었고
아직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기 전이었다.
좁은 통로 사이를
작은 스쿠터가 바삐 오가며
거래처에 갓 잡은 생선이나 건어물 같은 것들을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정돈되었다는 말은
원래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말과 같다.
원형의 상실.
정돈이란 말은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나라는 순수한 존재의 모습에 성형을 가했다는 말과 같다.
장학사가 온다는 말에
교실이 뒤집히던 기억.
청소는 물론이고
아이들 자리까지 홀랑 바꾸던
아주 부자연스러운 성형.
나는 얼마만큼 자연스런 내 존재의 모습,
혹은 존재의 길에서
벗어나 있는지-----
주차장은 시간이 너무 이른 까닭인지
거의 비어 있었다.
주차장 주변의 풍경.
여길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
타일에 손도장을 찍고 그것을 담벼락에 붙여 놓았다.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된 일이나 사람을
기억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기억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존재의 영속성을 바라는 나약한 인간의 마음이
벽에 무심히 결려 있었다.
튀김과 어묵을 파는 집.
아침이지만 꼭 들어가서 무언가 사먹어야할 것 같다.
다시 미국에 돌아오면
다시 시장통에서 파는
그런 음식의 맛을 보지 못할 것 같은 초조함 같은 것.
한국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그런 초조함을 많이 경험했다.
'그때 그맛'
김이 솟아오르는 솥을 보면
그렇게 옛 기억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포장마차에서 먹던
홍합 국물과
허기와 추위를 달래주던
오뎅 국물의 맛도 함께 피어오른다.
길거리의 생선.
나물 파는 아주머니?
아님 할머니?
막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어째 삶의 무게 때문인지
허리가 굽은 듯도 싶은----
바구니의 나물을 다 꺼내 놓고 다듬어서
다 팔면 얼마치나 될런지?
다 팔고 나서 소박한 행복감이 몰려왔으면 좋겠다.
나도 등이 굽었을까?
양미리라는 생선?
나도 먹어본 기억이 있는 것도 같은데----
생미역
시장에서 나와
길을 건너니 커피집이 있었다.
커피 한 잔에 행복한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커피집 유리창너머
한 남자가 리어카를 끌고 가고 있다.
그는 무엇을 끌고 가는 것일까,
세월일까, 가족일까?
지금까지 그가 끌고온 세월, 혹은 삶의 무게 때문인지
등이 휘었다.
-등이 굽은 세월-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시 한 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