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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피렌체 첫 날 저녁식사

피렌체 첫 날 저녁식사

 

맥스는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기차에서

저녁 식사를 할 식당에 예약을 했다.

 

피렌체 골목을 걷고 또 걸어서

우린 낮에 얘약을 한 그 식당 앞에 이르렀다.

피렌체 시내를 맥스의 안내로

죽 훑고 난 뒤라

상쾌한 피로감과 시장기가 함께 몰려 왔을 때

우리의 발걸음은 바로 맥스가 예약한 식당 앞에

멈추어섰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맥스가 자주 가는 뒷골목의 허름한 식당이었다.

식당은 작고 볼품이 없었지만 

맛은 결코 허름하지 않았다.

몇 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요리 비법이

축적된 맛을 은근히 뽐 내고 있었다.

숯불에 군 스테이크와

닭고기는 일품이었다.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캔털롭 멜론과 쌀라미를 같이 먹는 요리는 환상적이었다.(지금 보니 하몽)

과일의 단 맛 때문이었다.

맥스는 뉴욕에서는 그렇게 맛 있는

식당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뉴욕에서는 맛 있는 과일을 거의 찾을 수가 없다.

거의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 같은

다른 주에서 트럭으로 운반해 온다.

아니면 열대과일은 중남미에서 수입을 한다.

산지에서는 아직 과일이 익지 않을 때 따서

운반을 하기에

단 과일 맛을 보기가 어렵다.

 

우린 재미 있는 이야기도 나누고

맛 있는 음식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더 긴 시간을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몇 그룹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식당은 자금 나이 지긋한 형제가 운영하는데

두형제의 할아버지가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니 벌써 3대 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머지 않아 4대 째 그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꾸준히 그 시간을 이어가는 일이

아직 피렌체에서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닌 것 같다.

저녁 식사를 같이 한 맥스의 여자 친구를 보아도

그런 것 같다.

 

맥스의 여자 친구는 수제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독일 여자인데

피렌체에 와서 12년을 구두 만드는 법을 배우고

그 일을 물려받아 하고 있다고 한다.

 

피렌체에는 자기와

또 한 명의 수제 구두의 장인이 있는데

일본 사람이라고 했다.

맥스 여자 친구의 구두 공방에는

젊은 일본 아가씨가 구두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중세의 도제 제도가

아직도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걸 보니

이탈리아 사람들이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만드는 구두 한 켤레의 가격이

5천 달러라고 했던가,

아니면 5천 유로라고 했던가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도

시간의 매듭을 이어가는 가격이 대우를 받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맥스의 얼굴보다는

여자 친구가 만들어주었다는

구두를 쳐다보는 횟수가

훨씬 잦아졌다.

 

 

 

 

 

 

 

아주 작은 식당.

내가 맥스에게 물어보았다.

뉴욕에 있는 동안 무엇이 더 그리웠는지를---

 

여자친구?

아니면 이 식당의 음식 맛?

 

맥스는 이 식당의 음식맛이 몹시 그리웠다고 한다.

 

'Trattoria'는 작은 식당이다.

햐얀 식탁보가 깔려 있지 않은,

그리고 나비 넥타이에 세련된 복장을 한 웨이터가 없는,

한 마디로 마음 편한 식당이다.

 

최근에 우리 세탁소 손님 중에 NYU에서

이탈리어를 가르치는 이탈리아 사람에게

Trattoria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가족 단위로 운영되는 작은 식당이라고  했다.

영어로 'Mom and Pop'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가족 단위로 운영되는 아주 작은식당.

그래서 내 집에 가서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먹듯,

편안하고 행복한 그런 집 같은 식당.

 

정말 그랬다.

아늑하고 행복했던

피렌체의 첫날 밤의 기억은

바로 그 식당에서 비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