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 둘쨋날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가는 길)
로마에서의 이튿날이 밝았다.
비행기에서 밤을 지새우고
로마에 도착하면서 그 더운 날씨에 걷고 또 걸으며
맵고 짠 하루를 보내서인지
정말 죽은 듯이 푹 자고 일어났다.
커튼을 젖히고 창 밖을 바라보니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호텔에 딸린 골프장 저 너머로 떠 오르는 태양은
그 날 하루의 여정이 그리 만만하지 않음을 암시하는듯
묵직하고도 장엄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더울지 미리부터 걱정이 되었다.
동서는 몸이 너무나 개운하다고 했다.
사실 땀 흘리는 운동을 거의 하지 못 하는 동서가
전 날 하룻 동안 참 많이 걸으며 땀을 흘린 관계로
몸 속의 독소가 다 빠져나간 것 같이 몸이 가볍다며 밝은 표정으로
아침을 맞았다.
'사서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한창 휴가철이라 비행기 삯이며 이런 저런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기에
날이 덥다고 호텔 방안에서 가만히 죽치고 있자니
본전이 너무나 아까운 건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죽자사자하고 걸었더니
그게 보약이 된 것 같았다.
평소 당뇨 증세가 있는 동서에게 운동은 필수인데
결론적으로 본전 생각 때문에 악착같이 걷고 또 걸었다.
결과적으로 걸으면서 땀을 흘리고 나니
몸이 많이 거뜬해졌다는 것이었다.
사서 하는 고생도 때론 필요한 가 보다.
그래도 고생 비용으로는 너무 비쌌다.
호텔 셔틀 버스로 그 전 날과 같은 곳에서 내려
조금 걸어서 도착한 이곳,
누군가의 동상이 있는데
누군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그 앞에서 동서와 처제 사진 한 장 박았다.
동서와 처제 결혼 30주년 여행에
곁다리로 끼어서 온 주제이니
사진사 노릇이라도 하는 시늉을 해야 했다.
동상 건너 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 밑으로 아주 긴 타원형의 공터가 있는데
마치 육상 경기장의 트랙 같이 생겼다.
그 길이는 경기장 몇 배는 되어 보였다.
경기장 주변으로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는데
노란색과 보라색의 풀꽃들이 더위에도 또랑또랑
고개를 들고 피어 있었다.
그 옛날 전차 경기가 벌어지던 곳이라고 했다.
실제 벤허 중에 나오는 전차 경기 장면도
이 곳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함성 대신
이름 모르는 풀꽃들이 소박한 빛깔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전차 경기장이 있던 곳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지하철 역이 있었다.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우리는 바티칸으로 향했다.
중간에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야 했는데
그 지하철 역은 다른 곳보다 유난히 덥고
사람들로 붐볐다.
드디어 우리가 타야할 전동차가 도착했고
사람들이 이루는 물결에 휩쓸려
우리 일행도 전동차에 올랐다.
그런데 전동차가 출발한 지 채 일분이 안되어서
동서의 입에서 제법 다급하고도 단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Get your hands off me!"
평소 유순한 동서의 입에서
그렇게 단호한 어조의 목소리가 튀어 나오자
본능적으로 내 몸이 굳어졌고
재빨리 나의 두뇌는 사태 파악을 위해 급가동하기 시작했다.
'소매치기?'
이탈리아에 가면 도둑과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던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도
그건 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라며
그냥 귓등으로 흘리고 말았는데
경험담은 그 사람들만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바로 내 눈 앞에서 펼쳐진 것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땐 이리 저리 하라는 매뉴얼도 없는 상태에서
일을 당하니 순간 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설마가 현실이 되어 벌어지는 순간의 당혹감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그 사내는 머리가 벗어진 40대 남자로
검은 바지에 검은 니트로 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점잖고 평범한 용모 때문에 그냥 지나치면
영화 대본에 나오는
행인1, 혹은 행인2라고 해도 될 정도로
별 특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동서가 소리를 치는 순간
나와 동서 사이에 있던 사내를 보니
동서의 바지 주머니를 자신의 겉옷으로 대충 덮고 있었다.
자신의 손이 하려는 행위를
대중들의 눈으로부터 가린 후에
행동을 개시했던 것 같다.
동서는 지갑과 휴대전화를 굵은 고무줄로 묶어서
앞 주머니에 넣었는데
지깁과 휴대전화기가 겹쳐져 부피가 큰데다가
고무줄의 마찰력 때문에 쉽사리 주머니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첫 번 째 시도에서 실패한 이 분은
간도 크게 두 번 째 시도를 했던 것이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이상한 낌새를 챈 동서에 의해
소매치기 시도가 발각되었음에도
전혀 무표정하게 몇 분을 버티더니
다음 정거장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치 목적지에 도착한 것처럼 유유히 사라졌다.
하기야 동서는 영어로 소리를 쳤고
그 분은 이탈리아 사람이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척 딴 청을 피운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별로 없는 몇 분간의 해프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마 그 분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라는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조건 시치미를 떼라.'는
내용이 마치 매뉴얼에 나와 있기나 한 것처럼
그분의 대처는그런 상황에서 아주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러웠다.
성공하면 일당 챙기는 것이고
아니면 말고.
(로마를 여행할 때에는 앞 주머니에 지퍼를 달 것.
지퍼는 질이 나빠서 잘 열리지 않을 수록 좋음.
지퍼 달린 주머니에 단추나 찍찍이, 혹은 똑딱 단추까지 달면 훨씬 안심할 수 있음.)
그런데 그 분은
전동차에서 내려 바로 영업을 계속하셨는지
그날만은 하루 쉬셨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창피한 일 하다 들켰을 때의
"느낌 아니까."
일용할 양식이며 이동에 필요한 자금이
다 동서의 지갑에 들어 있었기에
만약에 당했다면
매뉴얼도 없는데 막다른 골목에서
방황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다 그렇다.
나쁜 일일 경우
안 벌어질 뻔 한 것보다는
벌어질 뻔 한 것이 훨씬 낫다.
그리고 이런 경우엔 토 달지 말고 무조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벌어질 뻔 했던 이 사건으로
로마 여행은 별 피해 없이 추억 거리 하나를
더 추가해서 호주머니에 담아올 수 있었다.
그런 일로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우리는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서
다음 역에서 내려 다시 한 정거장을 돌아 와야 했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전동차는 아주 한산해서
다시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 일행은
그 일이 벌어진 후로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에 가면
자동적으로 눈에 날이 섰다.
내 주머니엔 잃어버리거나 도둑 맞을 동전 한 푼이 없었기에
마음이 그리 편할 수가 없었다.
무소유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여행하는 동안 얼마간 맛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자유롭긴 했어도
목이 타는데도 윗전의 눈치나 보며
내 돈 주고 물 한 병 사 먹을 수 없는 불편함은
'마음의 자유'를 얻은 대신 어찌할 수 없이 치러야 할 댓가였다.
베드로 대성당으로 가는 길.
사람들은 그늘이 진 쪽 길로만 가고 있었다.
해가 드는 건너편 쪽 인도는 한산 했다.
어느 길이 옳은가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길은 옳고 그름이 아닌 선택의 문제이다.
더워도 한적한 곳으로 가느냐,
아니면 사람들과 부딪치며 그늘진 길로 갈 것인가.
길은 늘 선택을 강요한다.
인간은 길 앞에서 선택을 강요 받는 존재이다.
교황청에 소속된 건물 앞엔 이런 복장의 경비병이 서 있었다.
들어가진 못해도
곁에서 사진을 찍는 건 허용하는 것 같다.
저 아이들은 훗날 사진을 보며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
동서와 처제에게도 옆에 가서 서라고 했다.
그러기엔 인생을 너무 많이 살았나 보다.
하기야 재미 있겠다며 즉각 행동하기 보다는
"옆에 서서 사진 찍으면 뭐하겠노."라는
생각이 앞서는 나이가 되었으니-----
눈을 부릅뜨고 있는 저 경비병.
근엄하기만 하다.
아내에게 좀 웃겨 보라고 했다.
사진 찍을 때 너무 근엄하면 재미가 없으니 말이다.
아내는 그리 하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이 드러내고 웃는 모습 보였다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을 지도 모르니
그리 하지 않은 것은 잘 한 것 같다.
근무 수칙에
근무중에 웃거나 말하면
파면,정직, 감봉 등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조항이라도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변두리의 경비병은
긴장이 많이 풀어진 상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흐트러진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
어차피 총칼 들고 처들어 올 적군도 없는 상황에서
웃으며 친절한 표정으로 서 있으면 더 낳을 것 같은데------
근엄한 표정으로 누가 오래 버티느냐를 심사한 뒤
자신들이 설 위치가 결정되는 것 같았다.
'더 근엄한 표정으로
오랫동안 버팀 수 있는 자 우대'라는 광고가
저들을 뽑을 때 쓰는 문구가 아닐까?
드디어 나타난 베드로 대 성당.
참 크기도 크다.
입이 벌어졌다.
왜 저렇게 큰 성당이 필요했을까?
많은 사람들의 땀과 피와 눈물을 강요하면서까지
저리 큰 건물을 세움으로 해서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흡족해 하셨을까?
호화롭고 찬란한 성당 안보다는
피와 땀을 흘리는 사랍들 곁에 그들과 함께
고통을 견디실 것 같다.
저 성당을 짓던 때나 지금이나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당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곳에서 떠나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나만일까?
그렇다면 좋겠다.
줄이 길었다.
그래도 무조건 마지막 꼬리에 붙었다.
나중에 보니 베드로 성당에 들어가는 줄이었다.
그렇게 20여분 줄을 따라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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