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 로마 첫날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쪽으로
이리저리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니
이런 분수가 보였다.
분수 주변엔 밚은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거나
분수 구경을 하고 있었다.
분수라 함은 수직으로 물을 뿜어 올리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 트레비 분수는 그다지 눈을 잡아 끌지 못했다.
그냥 흘러내리기만 했으므로------
다만 정교한 조각들을 보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난 손재주가 없다.
저런 조각을 한 사람에게 내 자신을 투영하곤 한다.
평생 걸려도 할 수 없는
'Mission Impossible'이다.
매일 망치와 정으로 돌을 쪼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바위를 산 위로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성과도 없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고문이다.
학교 다닐 때도 그림 잘 그리는 친구,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 친구,
제도를 정교하게 잘 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났다.
로마는 그런 짜증남의 연속이었는데
이 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Trevi 분수는 이탈리아어로 3을 뜻하는 것이라는 걸
어림 짐작으로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분수는 세 갈래 길이 만나는 곳에 있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삼거리 분수'라고 할 수 있겠다.
뒤로 돌아서서
동전을 던져 물 속에 넣으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된다는 '전썰'을 아내가 알려 주었다.
두 번을 던져 넣으면 사랑을 하게 되고,
세 번을 넣으면 또 어쩌고 저저고-------
뭐 그런 이야기가 서려 있는 분수다.
사람들은 이야기 지어내는 걸 참 좋아한다.
한 이야기 또 하고
들은 이야기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 군대 이야기 처럼
적당히 뻥이 섞여도 토 달지 않고
한 없는 너그러움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전설
그런 이야기.
사람은 어찌 보면 '이야기 하는, 혹은 이야기 듣는 동물'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이 분수에도 서려 있었다.
그러므로 이 분수엔 물과 함께 깊은 휴며니즘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고향인 물,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이 분수에 사람이 그리도 많이 모려드는 것은
어찌 보면 본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 하루에 이 분수 속에 널린 동전을 거두어 들이면
3천 유로나 된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때
동전을 던지는 사람과
동전을 던지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나저나 이 글을 읽으시는 그대가
분수 앞에 있다면
동전을 던지실 거유?
골목길을 돌고 돌아 큰 길에 나오니
이런 탑이 보였다.
성모 마리아 상이 탑 꼭대기에 모셔져 있었다.
아무런 종교적 감동이나 흥미가 느껴지질 않았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모두 종교적인 상징물이어서 그럴까?
내가 너무나 비 종교적, 비 신앙적이라서 그럴까?
모든 것이 가톨릭적이지만
아무데서도 가톨릭적인 것을 보지 못했다.
우물 앞에서 갈증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이게 스페인 대사관(?)
스페인 대산관이 있어서
스페인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이것이 무슨 계단이라고 하더라?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젤라또를 먹던 곳.
그래서 그런지 젤라또 파는 가게는
바쁜 것 같았다.
우린 젤라또 가게 옆 골목에서
군 밤을 사 먹었다.
조금 삐딱하게-------
그 앞에도 분수가 있었는데
아내의 말씀에 의하면 이 분수의 물은 먹어도 된다고 해서
빈 물병에 물을 받아 마셨다.
물 맛이 썩 좋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어느 종교 단체인지
율동과 노래를 하며 행진을 하고 있었다.
돈을 구걸하며--------
이 곳이 판테온 신전.
로마의 범신들을 모셨던 신전이었는데
가톨릭 교회가 성당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도 미사 중이었다.
저리 큰 돔을 어찌 만들었을까?
우리 나라 석굴암의 돔도 따지고 보면
로마로부터 온 것은 아닐지?
아내의 설명에 따르면
돔의 꼭대기가 뻥 뚤려 있는데도
실내 공기의 흐름 때문에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고 했다.
참 신기했다.
인간의 능력이 신기하고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전 안보다는 지붕에 올라가 보고 싶었다.
별 도리가 있는 것 같지 않아서 포기.
어찌 어찌 하다보니 '나보나 광장'이란 곳에 도착했다.
옛날엔 무슨 경기장이었다고 하던데----
직 사각형으로 된 광장 주변은 온통 식당들이 자릴 차지 하고 있고
광장엔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파는 사람들,
광대들,
그리고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파리의 몽마르뜨 비슷한 분위기가 났지만
어떤 감흥 같은 것이
내 속에서 올라 오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더윗 속을 걷고 또 걷다 보니
너무 지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도 성당이 하나 있었는데
저녁 식사 후에
이 곳에서 미사를 드렸다.
관광객인듯 한 사람 몇과
이탈리아 사람 몇 해서 스무 명이 채 되질 않는 신자들이 모였다.
라틴어 미사.
거의 50년 전에 내가 서울의 제기동 성당에서
처음 복사가 되기 위해 라틴아로 된 미사경문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달달 외운 적이 있었다.
힘들여 다 외고 났더니 도루아미 타불이 되고 말았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그 때까지 모든 나라에서 라틴어로만 미사를 드리던 것을
자국의 언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다고 해서
다시 한국말로 된 미사경본을 외워야 했다.
그래서 제기동 성당의 최연소 복사로서의 데뷔가 얼마간 늦춰지게 되었다.
어쨌거나 국민학교 2학년 짜리 꼬마에겐
미사경문이 라틴어였건 한국어였건
무슨 소린지 모르기는
매 한 가지였다.
동상처럼 가만히 있는 이 사람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움직인다.
함께 사진을 찍고 한 푼.
두 사람이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부르고---------
그러면서 이 광장에도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했다.
나보나 광장을 배경으로
우리 부부도 한 장.
식당에서는
손님 맞을 채비가 한창.
노래를 부르는 사람.
노래를 듣는 사람 몇.
사람 많은 광장의 을씨년함.
Spray Paint로도
그림을 그린다.
분수의 물줄기.
나보나 광장엔 세 개의 분수가 있었다.
다 아름답고 정교해서
여기서도 짜증이 났다.
우린 나보나 광장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탈리아에 가면 음식이 맛 있다고 누가 그랬는지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미국 우리 동네의 이탈리아 식당이 훨씬 맛이 있다.
피자도 파스타도-------
갓 구어낸 따뜻한 빵까지 미국의 이탈리아 식당이 그리웠다.
청바지에 흰 런닝 셔츠(우리 어릴 땐 난닝구라고 했다.)를 입은 아코디언 주자
.이 식당, 저 식당을 찾아 연주를 한다.
거리의 악사.
우리 귀에 익은 선율을 연주하니
자연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영화 '대부'의 주제곡은
내가 다닌 이탈리아 어느 곳에서든지 빠지지 않고
연주되었다.
이제 좀 로마 시낵를 안다 싶어 버스를 타고
셔틀 버스를 타기 위해
처음 우리가 여정을 시작했던 곳으로 가려고 하다
엉뚱한 곳에 내려서
다시 로마의 변두리를 헤매고 다녔다.
지도를 독점한 지휘조의 불찰이었다.
멋 모르고 나는 따라서 걷고 또 걸었다.
이럴 때도 나중엔 헤맨 것이 아니라 '누비고' 다녔다고
미화되기도 한다.
헤맨 것과 누비고 다닌 것 사이의 그 거리.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로마의 소나무는 장엄한 어둠을 맞고 있었다.
거의 섭씨 40도가 되는 로마 시내를 참 많이도 걸었다.
드디어 눈에 익은 풍경이 나타났다.
우리가 하루를 시작했던
Santa Maria 바실리카.
저 종탑 때문에 많이도 속았다.
비슷한 종탑을 보고
한참을 가 보면 아니었다.
몇 번을 그렇게 속으면서
드디어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에 이르었을 때의 그 안도감이란-------
이 더운 날씨에 '포근하다'는 말이 마땅치 않음에도
저 바실리카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니
마치 우리 집에라도 온 것처럼 포근했다.
아 이젠 시원한 곳에서 쉴 수 있겠다라는
기대감이 솔솔 밤바람을 타고 뷸어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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