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paper Rock
Arches National Park를 나와
Moab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날은 둘째 부부가
장인 장모님과 같은 방을 쓰는
영광을 누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길을 나섰다.
중간에 Monument Valley를 들리려던 계획을 바꿔서
그랜드 캐년으로 직행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장인 장모님 댁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쉬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모압을 떠나 십여 분 정도 되었을까,
도로 왼 쪽에 거대한 아치가 보였다.
길 옆에 차를 세우고 구경을 했다.
마침 동쪽에서 해가 떠 올라
하늘 저 편은 눈이 부신데
반대로 아치 이쪽은 너무나 어두웠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차이는
얼치기인 나에게 사진 찍는 데 어려움을 준다.
막내 처제 부부는 그 사이
아치 근처에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미 아치 밑을 걸어가고 있었다.
기가 막힌 경치.
그런데 미숙한 내가 찍으니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럴 때 한탄스럽다.
사부님 한 분 모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작가가 되기엔 감각도 열정도
영 함량 미달이라는 걸 잘 알기에
포기도 빠르다.
"너 자신을 알라."
대단한 존재인 줄 알던 착각에서 벗어나
별 것 아닌 나를 발견하고는
흐물흐물 물 흐르듯 자유롭다.
산다는 건
끊임 없이 자신을 부수고
다시 만들며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이다.
Moab을 출발해서 한 시간 쯤 가니
Newspaper Rock근처에 이르렀다.
주변의 경치가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았다.
눈 덮인 산의 신비.
감추어진 존재에 대한 호기심.
호기심은 늘 경외심을 동반한다.
호기심의 소실점에는
신이 있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주위를 둘러보니 낮우리가 있는 곳은
주위의 낮은 산봉우리들로 둘러 싸여 있었다.
주차장은 작아서
한 오십여 대 정도 밖엔 주차할 수 없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고,
휴가철이 아니어서
한산했다.
우리 말고 두어 그룹만이 눈에 띄었다.
나바호족의 언어로
Newspaper Rock의 의미는
story telling (이야기를 들려주는)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sand stone(사암?)에 빗물이 흘러 내리고
그것이 풍화작용 때문에 표면이 검게 변했다.
그 표면을 쪼아서
무언가를 새겼다.
무얼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2,000년 전, 선사시대에
이 암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서기 1,300년까지
누군가가 덧붙이기도 하고 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발자국 모양.
그것도 발가락이 다섯 이상이다.
우주선(?)
누군가가 한 낙서 같은 것.
1,902년에 하나,
1,954년 6월에 Gonsales라는 사람이 하나.
선사시대에 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물론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20세기에 이 바위에
자신의 자취를 남겼던 사람도
아마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의 존재를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심리.
유한한 자신의 존재를
유한으로 상징되는 바위에
그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인간은 얼마나 심약한 존재인가.
사슴 같은 동물도 보인다.
그리고 둥근 원 안의 십자가 문양.
가톨릭 신자인 나에겐
성체로 보인다.
우연이겠지만
신비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구려 벽화의
수렵도를 보는 것 같다.
머리에 안테나 달린
외계인( ET)? ------
영화 Star Wars에서
주인공이 쓰던 뭐라든가 이름을 잊었지만
빛이 번쩍거리는
레이저 검을 들고 있는 모습도 있었다.
뿔 달린 영양의 모습.
이 곳에 간다고 했을 때
그 비밀, 혹은 그 신비를
내가 혹시 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지적인 오만함이 똬리를 틀었다.
내 자신을 참 많이 알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유치한 교만함은 내 안 깊숙한 곳에 있다가는
고개를 들곤 한다.
결론적으로 머리만 복잡했다.
2,00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이 바위을 보았을 텐데
아직 아무도 이 이야기의 내용을 풀지 못했다.
전문가도 풀지 못한 신비를
내가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품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너 자신을 알라"
죽는 순간까지
내 안의 미로에서 헤매다
나 자신이 누군지
그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할 것만 같은
나라는 존재.
저 암벽의 그림은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별로 크지 않은 이 바위.
우리 집 방 한 쪽 벽만한 크기에 새겨진
이야기가 담긴 그림.
아무리 머리를 짜내고 궁리를 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모든 걸 포기했을 때,
나직이 들리던 소리.
"너 자신을 알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눈이 시게 푸르렀다.
무언가 신비를 캐려고 머리를 쥐어 짤 때엔
보이지 않던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언가 마음에서 내려 놓는 일.
방하착.
삶의 고개를 넘은 내가
힘써 해야할 일이다.
내려 놓는 일.
다음 행선지는
그랜드 캐년.
언어를 잊게 만드는 장관.
마음 속으로 내심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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