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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월동준비

월동준비

아파트 건물에 살다 보니 겨울을 지나는 데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없어졌다.

집안의 이러저러한 잔일을 하는데 영 소질도 없고 취미도 없는 나에게

이런 아파트에 사는 일은 일종의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집을 소유하고 있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겨울을 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참 많았다.

초겨울로 접어들 때쯤 집마당의 낙엽을 치워야 하는데

그것은 거의 시지프스가 산으로 돌을 굴려 올리는 것과 같은

허무한 작업이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도 같이

치우면 또 쏟아져 내리던 낙엽 폭탄이 주던 힘들었던 기억.

 

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한 책임 회사의 사장 직함을 갖고 있다는 말과 같다.

자칫 신경을 다른데 쓰다 보면 제대로 상수도관의 보온을 소홀히 해서

한겨울에 관이 터져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더군다나 넓은 공간의 보온을 위해서 무지막지한 난방비를 아끼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한국 같으면 김장을 해야 하는 부담까지도 

월동준비 리스트에 넣어야 하나

미국에 사는 나는 그런 면에서는 비교적 책무가 가볍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

내가 해야 하는 유일한 월동준비는 

베란다에 널려 있던 다육이와 몇 가지 식물의 화분을

집안으로 들이는 일이 전부다.

아내가 이런 식물들을 키우지 않으면 

월동준비는 그야말로 0이라는 숫자로 대신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나마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 같다.

 

아내는 지난 토요일 밤늦은 시간까지

집안으로 들어온 화분들에게 흙을 채우기도 하고 분갈이를 해서

월동준비를 마쳤다.

 

영하로 내려간 일요일 아침,

아내는 식탁 위에 다육이 화분 몇을 올려놓았다.

투명한 아침 햇살에 화분 속의 다육이가 빨갛게 빛이 났다.

참 예뻤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더욱 예뻤다.

찬 늦가을 날씨를 견디고 빨갛게 익은 다육이를

아내는 미스 코리아의 등급을 매기듯 '진'이라고 불렀다.

 

열심히, 그리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아내,

예쁘게 익은 아내야 말로

인생의 '진'이 아닐까?

 

햇살이 집안의 다육이 위로 아낌없이 쏟아지고 있었던 일요일 아침.

 

Preparing for Winter

 

Living in an apartment building has made getting through winter much easier.
For someone like me, who has no knack or interest in house chores,
this kind of living arrangement could be considered a stroke of luck.

When I owned a house, there was always a long list of tasks
to complete before winter set in.

Around early winter, raking the leaves in the yard
was a task akin to Sisyphus rolling a boulder uphill—utterly futile.
The endless onslaught of fallen leaves,
like waves crashing relentlessly,
felt like a leaf bomb dropping over and over.

Owning a house is like being the CEO of a company with unlimited liabilities.
One moment of negligence, such as failing to insulate the water pipes properly,
could result in pipes bursting in the dead of winter.
Not to mention, heating a larger space requires constant effort
to economize on overwhelming heating costs.

In Korea, preparing for winter would also involve
the added responsibility of making kimchi.
But living in the U.S., I am relatively free of such duties.

Since moving here, the only winter preparation I have to do
is bringing in a few pots of succulents and other plants
from the veranda into the house.

If my wife didn’t care for these plants,
our winter preparations would truly amount to zero.
But I consider it fortunate to have at least this small task.

Last Saturday night, my wife worked late into the evening,
filling pots with soil and repotting the plants
to complete her winter preparations.

On Sunday morning, when the temperature had dropped below freezing,
she placed a few pots of succulents on the dining table.
Bathed in the transparent morning sunlight,
the succulents glowed a deep red.
They were beautiful.
The more I gazed at them, the more beautiful they seemed.

Having endured the chilly late autumn weather,
the succulents ripened to a stunning red hue,
which my wife called “Jin,” the Korean equivalent of a Miss Korea grand prize winner.

My wife, who has lived a life of diligence and quiet endurance,
is, in truth, the true "Jin" of my life.

It was a Sunday morning, with sunlight generously pouring
over the succulents inside our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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