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산타마리아 드라페리스 성당에서의 성지순례 첫 미사
비행기에서 거의 새우다시피 한 피곤함 때문에
첫날밤은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힘차게 제쳤다.
건설 중인 건물 틈으로 찬란한 햇살이 삐져나왔다.
맑은 하루가 시작되는 걸 보니 우리의 순례여행의 첫날이 순조로울 거라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아침 식사 후 8 시에 첫 미사를 드릴 장소로 이동을 했다.
버스 창문을 통해 바다와 큰 배, 체증이 있는 교통 상태, 그리고 첨탑과 모스코 등등,
자금까지의 여행지와는 정말 이국적인 모습이 밀려들었다.
나의 호기심이 슬슬 끓기 시작했지만 단체 여행이 주는 제약 때문에 호기심을 충족시킬 어떤 도리도 없었다.
버스에 내려 10분 정도 거어 도착한 곳이 산타 마리아 드라페리스 성당이었다.
길에서는 군밤을 파는 수레가 있는데 차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성당에 도착하니 입구가 철책으로 가리어져 있고 경찰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이동파출소 역할을 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하필 성당 앞이라니.
선입견으로 판단하건대 튀르키에가 이슬람교가 국교는 아니나 90% 이상이 모슬렘이란 걸 감안하면
가톨릭 성당이 찬밥신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철책 옆으로 작은 문이 있는데 그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2층 높이 정도의 계단이 밑으로 이어졌다.
그 계단을 내려가서야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건축학적으로 어떤 의미나 조건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그분.
나는 순간적으로 프란치스칸의 성당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성당 전면 한쪽에 성모 마리아,
다른 한쪽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고 나의 짐작은 확신이 되었다.
성당은 무척 낡았다.
현재 이스탄불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모습과도 같아서 마음이 조금 아렸다.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신심행위는 할 수 있으나 선교는 금지가 되어 있다고 한다.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오른쪽에 세례대(Baptistry)가 있는데
그 세례대에서 마지막으로 세례식이 있었던 것이 언제였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자
답답함이 가슴속에 차올랐다.
성당의 벽은 옛날에는 프레스코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아스라했다.
성화 위를 비추는 램프 중 하나가 꺼져 있었다.
언제 누가 그 램프를 새로 갈아 끼울까?
교회의 모습 같았다.
그리고 내 모습 같았다.
"Here I am, Lord!"하고 힘차게 손을 들어야 하는데
자꾸 뒤로 가 숨고 싶은 마음.
그렇게 순례여정에서 첫 미사가 끝이 났다.
이 여정을 마치면 내가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라고 힘차게 대답할 수 있을까?
First Pilgrimage Mass at Santa Maria Draperis Church in Istanbul
Due to the exhaustion from practically sleeping in the airplane, I slept the first night as deeply as death.
I woke up in the morning and vigorously drew the curtains. Bright sunlight peeked through the gaps of the buildings under construction.
Seeing such a clear day begin, I felt a hopeful thought that our pilgrimage’s first day would go smoothly.
After breakfast, we headed to the location for our first Mass at 8 AM.
Through the bus window, the sea, large ships, heavy traffic, minarets, and mosques appeared—such exotic sights compared to my previous travels.
My curiosity began to bubble up, but being part of a group tour left no room to satisfy it.
After getting off the bus and walking for about 10 minutes, we arrived at Santa Maria Draperis Church.
On the street, there were carts selling roasted chestnuts, and the smell of charcoal tickled my nose.
At the church entrance, there was a fence blocking the way, and a police car was parked there.
I wasn't sure if it was meant to act as a mobile police station, but why in front of a church, of all places?
Judging by my preconceptions, knowing that while Turkey isn’t officially an Islamic country, over 90% of the population is Muslim, I wondered if the Catholic church here was being treated like an outcast.
There was a small door beside the fence, and we entered through it.
A staircase about two stories high led downward, and only after descending could we enter the church.
I wasn’t sure if it was for architectural reasons or symbolic ones, but we had to go down to meet Him.
I instantly guessed that this was a Franciscan church.
Even without prior knowledge, I became certain upon seeing the stained glass—one side featuring the Virgin Mary, the other, St. Francis.
The church was very old, and my heart ached, as it mirrored the current state of the Catholic Church in Istanbul.
There is freedom of religion, so people can perform acts of faith, but proselytizing is forbidden.
Before entering the church, on the right side, there was a baptistry.
I wondered when the last baptism ceremony had taken place there, and this thought filled me with a sense of frustration.
The church walls seemed like they once held frescoes, but now, they were faded, like the faint shadows of an old love.
One of the lamps illuminating the holy images was out.
Who would come to replace that lamp, and when?
The church seemed just like that lamp—and so did I.
I should be raising my hand, saying, "Here I am, Lord," but all I wanted to do was retreat and hide.
And so, the first Mass of the pilgrimage ended.
By the end of this journey, will I be able to say, "Lord, here I am. Send me!" with conviction?
호텔 창문을 통해 본 아침 해
낮은 곳으로 임하신 분,
그분을 만나기 위해선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 성당의 Patron이 성모 마리아임을 보여주는 성화가 성당 입구에 있다.
아름다운 대리석의 성당
십자가의 길의 14처는 세라믹 작품으로 되어 있다. 작년에 갔던 이탈리아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오상을 받았던 라베르나 성지의 그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언제 그린 프레스코화인지 에수 그리스도가 세례 받는 장면이 세례대 위에 그려져 있다.
언제 굳게 닫힌 세례대의 뚜껑이 다시 열릴까.
성당 문에서 올려다 본 입구
성당 문에 난 창으로 본 성당 내부
램프의 불 하나가 꺼져 있다.
제대 왼 쪽에 성 프란치스코, 오른 쪽에 성모 마리아의 스테인드 글라스
성당 피아노. 피아노 뚜껑의 칠도 벗겨지고 균열이 생겼다.
성당 옆의 작은 데단 아래의 발 문양.
궁금했다.
가장 복된 죽음이라고----성 요셉 성인의 임종.
성당 정문 앞의 경찰 차.
성당 건너 편의 햄버거 가게
가게 간판과 코카콜라의 빨간색과 휜색이 퀴르키에 국기의 색과 닮아 있다.
이 나라에서 펩시 콜라는 영 맥을 못 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가는 길에 찍은 사진
모르긴 몰라도 최신형 전화기 광고 아래 앉아 있는 사람.
엄청 비싼 가격의 전화기와 바로 그 옆에 앉아 있는 사람과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내 생각에 꽤 괜찮은 사진을 찍은 것 같다.
**이스탄불의 산타마리아 드라펠리스(Santa Maria Draperis) 성당은 이탈리아 가톨릭 교회로,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 가톨릭 교회 중 하나입니다. 베이올루 지역에 위치한 이 성당은 16세기 말부터 존재해왔으며,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번 재건되었습니다.
역사적 배경
산타마리아 드라펠리스 성당은 1584년에 마리아 드라펠리스(Maria Draperis)라는 이탈리아 가문의 기부로 세워졌습니다. 드라펠리스 가문은 이스탄불에 정착한 부유한 상인 가문으로, 성당 건축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성당은 여러 차례 화재를 겪으면서 재건되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769년에 화재 후 재건된 것이며,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건축 양식
성당은 바실리카 양식을 따르며, 외부는 비교적 소박하지만 내부는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내부에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대리석 제단이 있으며,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종교적 미술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특히 성당 내부의 제단에는 성모 마리아의 고풍스러운 성상이 있습니다. 이 성상은 화재와 재난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아, 성당 신자들에게 신성한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성당 안에서는 여전히 미사가 열리며, 가톨릭 신자들에게 중요한 신앙의 중심지로 남아 있습니다.
주요 특징
성모 마리아의 성상: 성당의 중앙 제단에 위치한 이 성상은 성당의 상징이자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입니다.
역사적 사건들: 성당은 화재와 재난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재건되었으며, 이는 이스탄불에서 가톨릭 신앙이 지속된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프란체스코회 소속: 성당은 프란체스코회에 속해 있으며,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성당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산타마리아 드라펠리스 성당은 이스탄불의 복잡한 역사와 종교적 다양성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로, 이 도시에서 가톨릭 신앙이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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