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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하부지, you are silly

하부지, you are silly

손주 셋이 우리 집에 와서 2박 3일을 지내고 나서

어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큰딸이 지난 학기를 마지막으로 17 년 동안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일 대신에

Consultant로서 교사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매일 같은 교실로 출근해서 같은 아이들을 만나는 대신

전국 각지로 돌아다니며 교사들을 만나야 하기에

 8월 한 달은 집에 머무는 날이 며칠 되지 않았다.

 

딸이 집에 없으니 당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사위에게 맡겨졌다.

마침(?) 사위는 새로운 일을 찾는 중이었고

나와는 달리 제법 아이들 돌보는 일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기 전,

큰딸의 마지막 출장은 뉴저지 남쪽 어디로 결정되었는데

한 달 동안 아이들을 돌보느라 수고한 남편과 함께

자기의 일도 하고 짧은 휴가를 보내겠다는 것이

큰딸의 계획이었다.

결과적으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손자 셋이

2박 3일 동안 우리 차지(?)가 되었다.

 

아이들이 우리 집 살이 첫날 점심으로 피자를 먹기로 했다.

 

"하버지랑 같이 피자 주문하러 갈 사람?"

손주 셋이 모두 가겠다고 따라나섰다.

 

위로부터 두 손주인 Sadie와 Desi는 이제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으나

막내 Penny는 아직 잔잔한 손길이 필요했다.

외출을 하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놓여 있는 그대로 Penny의 신을 신겨주었는데

Penny 입에서 

"하버지, You are silly."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얘가 뭐라고 하는 거지?"

 

찬찬히 살펴보니 신이

왼쪽과 오른쪽이 바뀐 채 Penny의 발에 신겨져 있었다.

그렇게 두 달 후면 만 예순여섯이 되는 내가

네 살배기 손녀 Penny에게서 한 방을 먹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제 아침에 일어나더니

Penny가 내게로 오더니 드레스를 입혀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잠옷을 벗기고 드레스를 입혀주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맞게 입혀주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큰손녀 Sadie를 불러서 Penny의 못매무새를 봐달라고 했다.

Sadie는 앞과 뒤가 바뀌었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Penny의 입에서

"하버지, You are silly."라는 말이 어김없이 나왔다.

 

신도, 드레스도 제대로 입혀주지 못하는

할아버지에게 바보 같다고 하는 손녀의 말을 들으며

어쩌면 내가 바보같이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딸 셋이 사춘기를 맞을 때까지

아빠로서 나는 신을 한 번 제대로 신겨주었을까?

드레스 한 번 제대로 입혀준 적이 있었나?

머리 한 번 예쁘게 빗겨준 적이 있었던가?

 

바쁘다는 핑계로 모든 걸 아내에게 맡겨두고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눈길과 손길에 무관심한 채

그렇게 어리석게(Silly) 시간을 살아온 것은 아닐까?

 

바보 같고 어리석은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

2박 3 일 동안 손주들에게 마음을 쏟고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기회가 되는 대로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자기 엄마 아빠와 떨어져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 3 일은

손주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난 지금,

나는 "하버지, You are silly."라는

Penny의 앙증맞은 목소리를 되새김질하며

아주 Silly 한 웃음을 질질 흘리고 있는 것이다.

https://hakseonkim1561.tistory.com/2987#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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