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진 나무의 등걸.
수 십 개의 나이테가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나무와 껍질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그 틈새에서 푸른 풀 몇 포기가 자라고 있다.
모든 것이 떨어지는 조락의 계절에,
그것도 일찌감치 생물학적인 생명을 마감한
나무 틈새에서
어린 풀포기의 쌩쌩한 푸른빛을 보며
다소 쌩뚱맞은 기분이 들었다.
틈.
그렇다,
틈(사이)은
틈(싹이)인 것이다.
나에게도 이 나무의 틈과 같은 틈이 있었다.
쎙떽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나에게 있어서 최초의 틈이었다.
시인으로 등단했던 과 선배가
나를 보고 '어린 왕자' 같다고 했을 정도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영혼이 깃들 수 있는
틈은 여전히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영혼이 깃들여 싹을 틔울 수 있는
그런 삶,
그런 영혼.
틈은
틈(사이)이며,
틈(싹이)이고,
그리고 또한 틈(영혼이 둥지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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