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손주들을 보러 가는 날이다.
손주들의 하버지인 나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몸단장을 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머리도 깎고
그리 길지 않은 수염도 깎았다.
수염을 깎을 때도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의 불을 다 켜고 돋보기까지 쓰고 정성스레 한다.
혹시라도 안 깎인 수염이 고개를 삐죽 들고 있으면 아니 되기 때문이다.
이제 제법 철이 들고 속이 여문
큰 손녀 Sadie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눈 밝은 손자 Desi의 눈에 안 깎은 수염이 발각이라도 되면
지적질에다가 수염을 뽑히는 수모(?)를 당할 수도 있음을 지나쳐서는 아니 된다.
언젠가 Desi가 내 코털을 가지고 시비를 건 적이 있는 까닭이다.
내게 안겨 있던 Desi의 눈에
내 코 밖으로 나와 빛을 쬐던 코털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왜 하버지 코털은 그리 긴 지, 왜 코털의 색이 흰지 등등
예상치 못한 손자의 질문에 무척이나 당황한 적이 있어서
그 뒤로는 책잡히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사실 평소에도 아내에게
"나이 들수록 더 자주 씻고 몸을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듣긴 하지만
그냔 참조만 할 뿐
대충 흘려버리는데
손자에게 지적을 한 번 당한 뒤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특별히 손주들을 보러 갈 때에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신경을 쓰는 것이다.
성당에 갈 때보다도 외모에 더 신경을 쓰는 나를 보면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좀 덜 깎인 수염을 보고
하느님이 지적을 하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손자 녀석은 꼭 집어낸다.
그러니 누가 더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지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는 아이에게는 호랑이 보다고 곶감이 더 무섭고
하버지에겐 아내니보다도,
그리고 하느님 보다도
손주가 더 무서운 법인가 보다.
어제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쿠키 굽는 냄새가 향긋하게 실내를 떠돌고 있었다.
손녀 Sadie가 할머니의 초코칩 쿠키가 먹고 싶다고 해서
굽는 거라고 했다.
영화 미나리에 나오는 할머니는 쿠키를 굽지 못하지만
우리 손주들의 할머니는 아내는 쿠키쯤은 쉽게 구울 수 있는
정말 쿨한 미국 함머니인 것이다.
아내가 구운 초코칩 쿠키와
내가 빳빳한 지폐로 준비한 용돈에(이제 손주들도 돈맛을 알 나이다.)
얼마 전 이를 뺀 Sadie에게 줄 1 달러 짜리 금색 동전을 얹어
자, '이제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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