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다섯 시 경,
문 앞에서 잠시 주춤거린다.
아파트 문을 여는 것도 매일 마주해야 하는 도전이다.
손잡이를 아래쪽으로 1/4을 돌리면 문이 열리는데
새벽에 손잡이의 저항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벌써 4주째에 접어들었다.
아침마다 아파트 문을 나설까 말까 하는
선택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있는 gym(실내 체육관)에 가는데
채 2 분이 안 걸림에도 왜 그 거리가 그리 멀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gym의 문을 열고 들어가
제일 먼저 무거운 내 다리를 끌고 가서 멈추어 서는 곳은
tread mill(러닝 머신) 위다.
여러 가지 유형의 달리기 옵션이 있는데
나는 트랙을 도는 것을 선택한다.
한 바퀴가 1/4 마일, 그러니까 400 미터 트랙인 셈이다.
처음 반 바퀴는 시속 5 마일의 속도로 뛰다가
나머지 반 바퀴는 시속 5.5 마일로 속도를 올려서 뛴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부터 네 바퀴까지 세 바퀴는 시속 6 마일의 속도롤 달린다.
그리고 다섯 바퀴 째는 6.5 마일의 속도로 달린다.
그렇게 다섯 바퀴를 달리면 약 2 km를 달린 셈이 되는데
보통 13 분 가량 걸린다.
그런데 다섯 바퀴를 달릴 때
처음부터 한 바퀴 반을 달릴 때까지가 힘이 든다.
다리가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고
숨도 가빠서 더 달리기가 힘이 드는 까닭에
그만 멈추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벌써 4 주차에 들어서는 오늘까지도
그런 유혹에서 자유로왔던 적은 하루도 없었다.
중간에 그만 뛴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얻자고 내가 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하는
회의 비슷한 것이 거스르기 힘든 바람처럼 밀려온다.
그런데 그 유혹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힘든 삶의 파도를 헤쳐나가며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응원을 보낸다고 생각하며
무거운 다리를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트랙의 첫 바퀴를 돌 때는
군대에 있는 막내아들을 기억하며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다.
그리고 그 유혹을 이겨 내고 한 바퀴를 돌고 난 뒤에 얻어지는
보이지 않는 메달을 막내아들에게 헌정한다.
그런 식으로 다섯 바퀴를 달린다.
그렇게 다섯 아이들의 존재는 나의 도전에 힘이 되는 것이다.
그 다섯 바퀴는
내가 다니는 천주교회의 묵주처럼
다섯 개의 원형 고리와도 같으니
억지로 우기면
트랙을 달리는 것이
묵주기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제는 어머니 날이어서 서비스 차원에서 아내를 위해 한 바퀴를 더 뛰었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서는 근육 운동을 하는데
역기 같은 것을
누운 자세와
45도, 15도의 앉은 자세로
각각 20회 도합 60회를 들어 올린다.
평생 하지 않던 운동이어서
근육이 작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무거운 추를 앞뒤로,
그리고 아래로 당기는
운동도 한다.
다리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발등으로 추를 얹고 아령처럼 들어 올리기 50 회,
또 다리로 미는 운동 등을 하고 나면
대충 한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고 땀도 흘러
운동을 마치는 시간이면
물론 셔츠가 다 젖게 마련이다.
내가 근육 키우기 운동을 시작한 까닭은
분명 아이들 때문이다.
오늘까지 병원 신세를 거의 지지 않고 살아왔지만
나이가 점점 더 들어가면서
혹시라도 육신에 병이라도 들어
아이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이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며
오늘 아침도 거르지 않고
gym으로 향하는 발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어릴 적 쓰던 표현으로 '알통'이나 '갑빠'가
눈에 띄게 나올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럴 때 흔희 쓰는 비유가 있지 않은가.
콩나무 시루의 콩나물에 물을 주면
물은 밑으로 다 떨어지지만
그래도 어느새 콩나물은 자란다는 그 이야기.
나는 내일 아침에도 나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온갖 유혹을 물리치며
gym으로 발길을 향할 것이다.
언제고 하늘나라에 가서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세상 살면서 무슨 사랑의 행위를 했냐고 그분께서 물으시면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 못 하고 있다가
그래도 또 자비롭게 한 번 더 물으시면
팔뚝을 굽혀
수줍게,
아주 수줍게
내 알통을 보여드릴 것이다.
정말 그것 밖에는 보여드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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