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달인 blog.daum.net/hakseonkim1561/2417#none
내가 가끔씩 보는 한국의 tv 프로그램 중에
'생활의 달인'이 있다.
음식뿐 아니라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들,
바로 달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떡볶이나 김밥, 아니면 라면 같이
지극히 평범한 음식을 만드는 데도
나로서는 생각하지도 못 한 재료를 골라서
며칠 동안 숙성을 해서
아주 특별한 맛을 내는 음식의 달인들을 보며
그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 외에도
존경의 마음을 절로 품게 된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산천이 세 번도 넘게 바뀐 시간 동안
세탁소에서 일을 하면서도
과연 '생활의 달인'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나의 시간과 노력을 다 해서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보면
고민을 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젓게 된다.
오랜 시간 세탁소를 하면서
나는 주로 카운터에서
손님들의 옷을 받고 내어주는 일을 하고
옷을 빨고 다리는 일은 직원들에게 맡겼는데
20여 년을 우리 세탁소에서 빨래를 담당하던 직원이
작년 이맘때 그만두는 바람에
내가 그 일을 떠맡게 되었다.
서당개 3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세탁소 생활 30 년이면 실무는 몰라도
얼룩을 빼고 직물의 종류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머리속에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어서
일을 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지난 3 월부터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세탁물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어서
지금은 내가 카운터를 보며
가게 뒤에 있는 세탁 기계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1 년 넘게 세탁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실력도 늘고 요령도 쌓이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감히 세탁의 달인이라고 말을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점이 많아서
잘한다는 손님들의 칭찬에도 마냥 기뻐할 수는 없고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지난주에 존이 세탁물을 가지고 왔다.
큰 키의 존은 직업이 마술사이다.
그래서 그가 가지고 오는 옷에는
구슬이며 반짝이 같은 장식이 붙어 있어서
세탁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옷 하나하나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니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쓴 잔'이바로 존의 옷들이다.
그러나 요즈음 세탁소가 그리 바쁘지 않은 까닭으로
나의 세심한 손길을 받아 폴의 옷들은 거의 모두
마치 목욕탕에서 갓 나온 것처럼
제볍 반짝이는 모습을 되찾았다.
그런데 실크론 된 흰색의 코트가 문제였다.
1 미터 90 센티 정도의 키의 폴의 코트는 정말 길고 컸다.
소매 부분에 까다로운 장식이 달려 있었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검은색과 노란색, 핑크 빛의 얼룩이 무자비하게 묻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십자가에서 예수가 했던 그 말씀이 곧 나의 심정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이틀에 걸쳐서 세탁을 끝낼 수 있었는데
아뿔싸, 다림질까지 마친 코트의 뒤 쪽에 검은색의 얼룩이
두어 뼘 정도의 길이로 남아 있는 게 아닌가?
군대 시절 유격훈련 중 임무 하나를 온 힘을 다 해서 끝냈는데
흠결이 있음을 이유로 팔 굽혀 펴기 100번을 과외로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내 앞에 놓여 있는 셈이었다.
다림질까지 마친 코트를 본 순간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났다.
그냥 두어도 성격이 무난한 존이 뭐라고 불평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주느냐,
아니면 다시 한번 세탁을 하고 다림질을 하는
성가신 과정을 반복하느냐 사이에서
번민을 하다가 다시 코트를 빨기로
마음의 갈피를 잡았다.
험난한 과정을 통해서 존의 코트는 아주 말끔한 상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언젠가 보았던 '생활의 달인'에서
어느 음식점 주인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손님들의 숟가락이 그릇 바닥에 닿으며 나는
달그락 하는 소리를 들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음식이 담긴 그릇이 비워질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며
행복해하는 그 사람이야 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며
또한 진정한 의미의 '생활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활의 달인은 자신의 애씀으로 해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그로 인해 지신도 행복해지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내친 김에 존의 코트에 솔기가 뜯어진 부분도 수리를 해주었다.
힘들고 고단한 과정을 거쳐 세탁이 끝난
존의 옷들을 보니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코트를 한 번 더 빨지 않았으면
샤워를 하고 속옷을 갈아입지 않은 것처럼
찝찜한 기분을 털어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마술사인 존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일을 많이 하지 못해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데
언제라도 마술쇼를 할 때 옷을 입으며 조금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세탁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 했지만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생활의 달인'이 된 것 같아서
괜히 콧노래를 불러보는
오.늘.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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