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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오늘) 세탁소에서 생긴 일 셋

(오늘) 세탁소에서 생긴 일  셋

 

하나.

 

올 가을 들어 가장 온도가 낮은 아침이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 때문에

여름 내내 열어 놓던 세탁소 출입문을 닫아 두었다.

지나가던 부부로 보이던 남자와 여자가

청바지 한 벌을 두고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창 밖으로 향한 내 눈에 들어왔다.

 

논의를 끝냈는지 여자가 청바지를 들고

세탁소 안으로 쭈뼛거리며 들어섰다.

 

"바지 지퍼 새 것으로 가는 데 얼마나 해요?"

 

"10 달러예요."

 

나는 아주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카운터 위에는 세탁비며, 옷 수선비가

비교적 세세하게 적혀 있어서

일일이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하기에는 조금 짜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10 달러라는 나의 대답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사실 그녀가 내게 건넨 것은

새 것을 살 경우에도 15 달러 이상은 넘지 않는

아주 조악한 품질의 청바지였다.

 

입던 청바지의 지퍼를 가는데 10 달러라니

그녀의 의식세계는 혼돈 속에 파묻힌 것 같았다.

그녀는 충격을 어찌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선수 교대.

 

남편이 바통을 이어받고 세탁소 안으로 들어왔다.

"바지 지퍼 가는 게 10 달러나 하는 게 실화인가요?"

 

"네."

 

아까보다 더 마른 톤으로 내 입에서 단답형 대답이 튀어나왔다.

 

남편인 듯 보이는 남자는

"Damn!"이라고 혼잣말을 허공에 남기며

떠났다.

 

문을 열고 나가는 사이에

서늘한 바람 한 자락에 세탁소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남루한 삶의 그림자 같은 것이 바람에 묻어있었다.

 

-아, 가을인가요?-

 

둘.

 

Mrs. Amos가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에

세탁소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반갑게 인사했다.

부부가 세탁소 문을 처음 열 때부터 단골이었고

부부 모두 점잖고 교양이 있어서

나랑은 아주 좋은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었다.

 

부부가 3-4 년 전에 은퇴를 했기에

몇 해전부터는 계절 바뀔 때나 세탁소를 찾는 관계로

조금 심정적인 거리가 생기긴 했다.

그런 연고로 거의 1 년 동안 세탁소에 출현하지 않았어도

그러려니 했었다.

 

오랜 공백을 지나서 만난 까닭으로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남편의 안부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의 남편은 3 월에 세상을 떠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물기에 푹 젖어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던 때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리고는 올 4 월에는 

자기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그녀가 입 밖으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말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속에 쌓여있던 슬픔 덩어리 중 일부가 

밖으로 배출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내 마음의 귀를 쫑긋 세우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핏줄로 이어진 가장 가까운 관계인 어머니,

핏줄로 이어지니는 않았으나

심정적으로 세상 누구보다도 가까웠을 남편.

이 두 기둥을 연이어 상실한 Mrs. Amos를

다음에 만나면 그녀의 이름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

내 가슴은 가을바람이 불 때처럼

서늘해질 것 같다.

 

셋.

 

그의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Tom은 영국 사람인데

미국의 NBC 방송국에서 일을 하는 관계로

뉴욕에 살고 있다.

성격도 상냥하고 서글서글한데다가

키도 크고 얼굴마저도 영화배우처럼 잘 생겨서

매력이 철철 넘치는 청년이다.

 

늘 그러하듯 토요일 오전에 그가 나타났다.

아침에 마라톤을 마치고 세탁소에 들리는 것이

그의 토요일 스케줄의 하나이다.

 

새로 세탁할 옷을 내게 건네며

이전에 맡긴 옷은 맨해튼에 가서 볼일을 보고 오면서

찾아가겠다고 하며 가게 문을 나섰다.

 

그러던 그가 가게 문을 닫기 10 분 전에 전화를 했다.

다섯 시 5 분 정도에 세탁소에 당도할 예정이니

제발 문 닫지 말고 기다려 달라는 부탁의 전화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오후 7 시에 닫던 문을 5 시에 닫으니

어떤 손님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부터 여덟 시간 넘게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을 넘겨 문을 닫는 일이 때로는 짜증 스러을 수도 있는데

토요일은 그 강도가 제일 높고 크다.

 

그런데 Tom에게는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최대한 상냥한 말투로 알았다고 안심을 시켰다.

조금 더 늦어도 되니까

걱정 말라고 주름진 그의 마음을 다림질하듯 펴 주었다.

 

Tom은 정확하게 다섯 시 5 분에 세탁소 문 안으로 들어섰다.

우버와 전철을 갈아타며

나와의 시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마음이

그의 말투에 배어 나왔다.

 

그가 지불해야 할 세탁비는 34 달러인데

40 달러를 내며  6 달러는 그냥 넣어두라고 했다.

 

평소에 다른 사람 같으면

퉁명스럽게 대했을 것인데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마치 상냥의 화신이라도 되는 양 친절을 다하고

게다가 팁으로 받은 5 달러를 손에 들고

배시시 터지는 미소를 주체하지 못하는 내가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