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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김남조 시인의 시 '너를 위하여' 중에서-

 

참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소식이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긴 했지만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고

우리 의식 소까지 파고들지 못할 때

우리는 푸에르토 리코  여행을 용감무쌍하게 다녀왔다.

 

그때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는

푸에르토 리코 어느 지역에서인가 계속되는 지진이 

더 우리 발목을 잡았다 놓았다 할 때였다.

 

그래도 별 걱정 없이 여행을 다녀오긴 했으나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주변을 쓰나미처럼 덮었고

그런 상태로 반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흔히 말하는 뒤풀이도 하지 못하고

한 해의 반을 하릴없이 까먹은 것이다.

 

그런데 2 주 전인가 LizMon(Elizabeth + Simon) 부부의 호의로

만남의 광장(결과적으로 맛남의 광장)이 마련되었다.

우리 부부를 포함해 모두 네 부부의 모임인데

우리 만남의 기원은 LizMon 부부가 Bergen Field에 살 때부터인데

그동안 세 번 이사를 해서 현재의 집까지

네 번의 집에 사는 동안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기간으로 치면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한참 더 될 것이다.

 

LizMon 부부가 작년에 이사한 집은

뒤뜰이 제법 넉넉해서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여덟 명의 모임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남편은 뜰 한 귀퉁이에서 갈비를 굽고 있었고

아내는 부엌에서 손님을 맞기 위해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날씨도 구름이 조금 끼어 있었지만 맑은 하늘에

전형적인 가을바람이 솔솔 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날씨는

오랜만의 만남을 축복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뜰과 뜰을 마주하는 옆집의 키 큰 나무의 잎들은 얼마나 풍요로운지

마당의 거의 반을

햇빛으로부터 막아주었다.

 

매 달 한 번씩 집을 옮겨가며 만남을 이어왔지만

이렇게 긴 시간을 만나지 못한 것은 이 번이 처음이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주인 부부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어우러지니

세상이 이런 기쁨이 또 있을까 싶었다.

잘 익은 김치로 만든 김치 스파게티는

새로운 맛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처음 도착해서

은박지에 쌓인 옥수수가 고기가 구워지고 있는

그릴로 옮겨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그 옥수수는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수박과 과일 케이크를 먹었음에도 결국 출현하지 않았다.

중간에 궁금해서 옥수수의 소식을 물어보려고 하다가

남의 집 제사에 가서 밤 내와라, 감 내와라 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우리가 자리를 뜨려고 할 때

결국 옥수수는 검게 탄 모습으로 우리가 자리를 뜨기 직전에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었다.

주인 내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옥수수의 맛은 볼 수 없었다.

 

Liz-Mon 부부는 정말 마음을 다해서

우리를 대접했다.

하기야 그 부부가 Bergen Field에 살 때는

밤을 거의 새우면서 집 안의 먹을 것은 거의 거덜을 낸 적도 있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그 부부의 모습에서

사랑의 원액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해서 자주 인용하는

김남조 시인의 '너를 위하여'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에서 처럼

소중한 것을 누군가에게

내어 주는 마음,

그리고 이미 준 것은 잊고

주지 못 한 것에 대한 아픈 마음,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

 

갈비 바비큐와 김치 스파게티, 수박과 콰일 케이크까지

아주 화려하게 먹고 대접을 받았음에도

맛보지 못한 군 옥수수를 못내 잊지 못하고 아쉬워하고 있는 나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을 내어주고며 살고 있는 것일까?

이미 먹은 것은 잊어버리고

먹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

 

이번 주말에는 옥수수나 구워서 아내와 나누어 먹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