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세탁(Money Laundering)은 사양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는 참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무엇보다도 만 30 년이 넘은
나의 세탁소 생활이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다.
평소 세탁소에서 나의 역할은
전체적인 매니지와 카운터를 담당하는 일이다.
물론 특별한 경우와 예외가 있긴 했어도
나의 역할은 30 년 넘는 세월 동안 이 범주를 벗어 자지 않았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졸지에 직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 되어서
두어 달 내 혼자 빨래를 하고 프레스를 하며 버티었다.
지금은 조금 형편이 나아져서
직원 한 명이 출근해서 프레스 일을 돕고 있다.
나는 세탁과 프레스, 그리고 카운터 일까지 하고 있어서
비록 평소의 반도 되지 않는 일감이 들어오긴 해도
몸은 별로 쉴 새가 없다.
그런데 오늘은 빨래를 하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세탁이 끝난 옷을 드라이어에 옮기고
모든 과정이 끝난 뒤에
드라이어의 문을 여니 지폐 몇 장이
그 안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서인지
서둘러 문 밖으로 탈출을 했다.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모아보니 20 달러 지폐가 두 장,
5 달러 지폐가 한 장, 그리고 1 달러 지폐가 석장이나 되었다.
도합 48 달러.
보통 카운터에서 옷을 받으며
철저히 주머니 검사를 하는데
이렇게 임자 없는 돈이 나타난 것은
미처 내 손길이 미치지 않은 주머니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돈이었으니 망정이지
볼펜이나 립스틱 같은 것이었으면
감당하기 힘든 재앙의 원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보통 카운터에서 주머니 검사를 할 때 돈을 발견하면
지폐에 한해서 주인에게 돌려준다.
동전까지 돌려주는 건 너무 복잡해서 가게 재산으로
슬그머니 돌린다.
그런데 드라이어에서 탈출한 지폐는
도대체 그 출처를 알 수가 없었다.
드라이어 안에 cc tv를 설치할 수도 없으므로
주인을 찾아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좀 께름칙하긴 해도
그 돈은 볼로소득으로 세탁소 수입으로 잡을 수밖에
현재로서는 다른 도리가 없을 것 같다.
내일은 세탁 가격표에
돈세탁(Money Laundering)을 추가하려고 한다.
돈세탁 가격은 지폐의 액면가와 같다.
1 달러를 세탁하려면 1 달러를 내야 하고
100 달러를 세탁하기 위해서는 100 달러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오늘 드라이어서 나온 48 달러도
가격표를 붙여 놓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마음이 께름칙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세탁한 세탁비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돈을 잃어버린 손님은 과연 돈세탁을 원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돈 세탁은
의뢰인이나 세탁을 하는 사람이나
모두 행복하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내일부터는 좀 더 철저히
손님들 옷의 주머니 수색을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돈세탁 가격을 게시하기보다는
'돈세탁은 사양합니다'라는 사인이면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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