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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또) 아들 자랑

아들자랑


"아빠, 드릴 말이 있어요."

"그래?  해 봐."


아들과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다.

차 안에 잠깐 긴장이 흘렀다.

큰아들이 이렇게 나에게 은근한 어투로 말을 거는 일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큰 아들이 아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요약하자면

3 년쯤 뒤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일단 그만 두겠다는 거였다.

그 때는 유리(며느리 이름)의 대학원과정이 끝날 것이고,

둘이서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새로운 삶의 계획을 세우겠다는 거였다.

2세에 대한 계획도 털어 놓았다.


아들은 힘들게 공부해서 얻는 직장을 그만 두는 것에 대해

뒷바라지를 한 아빠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이 말마디에 묻어 나왔다.


"오, 그래?"


나는 멋진 생각이며 훌륭한 계획이라고

한껏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의 삶이 그렇질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나가길 원했고

그럼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는 버팀목의 삶을 살았다.


삶을 잘 살 살고 못 사는 것은

주어진 시간을 세상과 상황에 맡기느냐

아니면 자기가 주체적으로 쓰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자기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사는 아들이 존경스럽고

또 지나온 내 삶과 시간도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아빠의 반응에 아들도 마음을 놓은 기색이었고

무거운 등짐을 내려 놓은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다니는 로펌의 팀에서도 에이스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10 년만 더 있으면

연봉 300만달러를 받을 수 있는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도 했다.


세상이 건네는 달콤한 사탕을 사양하고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아들의 계획은

진실로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희생이면 희생이라고 할 수 있는 

지난 시간 동안의 나의 삶이라는 것도 

이들이 나와는 다르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해에 300만 달러의 연봉.


크게는 수십 빌리언 달러(나는 계산이 안됨) 회사 거래 계약이 있을 때는

한 두 주일 동안 정신 차릴 여유도 없이 일에 매달려야 한다.

매일 출근 길에 세탁소에 들려

자기가 만든 스무디를 건네며 밝은 얼굴을 보이는 

아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럴 때이다.


돈보다도

스무디와 함께 전해지는 아들의 미소가

더 소중하기에

나는 아들의 결정을 두 손 들어 반기는 까닭이다.


자신의 삶과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으로 커 준 아들이 

차암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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