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패션 감각이 없다고?
맞다.
누군가가 나에게 패션 감각이 없다고 단정지어 말을 해도
난 딱히 반박할 수도 없거니와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 말은 사실이고
"무엇을 입을까?"보다는
"무엇을 먹을까?"에 지극한 신경과 마음을 쓰는 편이다.
그러나 옷을 입을 때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온도가 어떤지,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아닌지에 따라
선택이 조금 바뀌기는 해도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옷이 늘 나의 간택을 받는다.
그러니 누가 나에게 패션 감각이 없다고 해도
반박을 할 수도 없거니와
크세 서운하거나 화가 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런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제는 날씨가 화창해서 아들 부부와 함께
허드슨 강 가에 있는 도미노 파크로 봄나들이를 나갔다.
당연히 내 손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얇은 스웨터와 셔츠를 점지했다.
바지는 볼 곳도 없이 불루 진이다.(1 년 중 거의 365일)
스웨터는 네이비 불루와 흰 줄이 있는 것으로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을 여행할 때
그 지방의 브랜드라고 해서 기념으로 마님께서 구입해
내게 하사한 것이다.
그런데 스웨터 안에 받쳐 입은 셔츠는
아마 두 아들 중 하나의 것으로 생각되는데
옅은 핑크와 흰 색으로 된 작은 체크무늬가 있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님의 지적이 나왔다.
"스웨터 안에 셔츠를 불루 계통으로 바꿔 입으면 안될까?"
스웨터의 색이 네이비 불루와 흰색이니
불루 계통의 셔츠, 그리고 불루진과 함께 입으면 어떻겠냐는 제의였다.
내게 있어서 마님의 제의는 단순한 제의가 아니라
그 크기와 무게가 제법 크고 무겁다.
그러나 그 제의를 수용하기엔 셔츠를 바꿔 입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
셔츠를 바꿔 입지 않는다고 해서 봄마중에 실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심각한 결격사유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당당하게 "싫다."고 응수를 했다.(간이 배 밖으로 들쑥날쑥하는 느낌이 들긴 했다)
물론 마님의 제안(제안이라고 쓰고 명령이라 읽음)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고
아무리 패션에 신경을 쓰지 않는 나이기는 해도
전혀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옷을 입고 벗는 것은 내게 너무나 귀찮은 일이었다.
옷 입기 전에 무얼 입으라고 했으면 그대로 따랐을지도 모르나
일수불퇴, 낙장불입의 원칙을 나는 고수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옅은 핑크는
봄을 맞는 내 마음의 색이야,
셔츠는 내 마음과 매칭을 한 거지."
마님은 입을 다물었다.
이래도 내가 패션 감각이 없다고?
봄바람이 참으로 싱그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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