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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내 허리띠의 첫 구멍

내 허리띠의 첫 구멍

 

 

 

 

 



 

3 11일이면 미국으로 이민을 온 지 만 36 년이 된다.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부족했고 낯이 설었다.

 

이발소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손재주가 참 아름다운 아내의 손을 빌려서 머리 손질을 시작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 시간도 어언 36 년이 되어간다.

 

그런데 이민 초창기부터 아내의 손길처럼 

변함없이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가죽 허리띠다.

내 차가 없던 시절이라 물건 하나 사는 것도 그리 어려울 수가 없었다.

허리띠가 하나가 절실하게 필요했는데 

어찌어찌하여 제법 괜찮은 가죽 허리띠를 하나 장만할 수 있었다.

그 허리띠는 지금까지 내 허리를 감은 채

어디 가는 법도 없이

이민의 삶과 시간을 내 허리에 찰싹 붙어서 함께 살아왔다.

 

처음에 첫 구멍을 사용했는데

십 수년간 일편단심 변함이 없었다.

야채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세탁소로 옮겨서도 하루 종일 가게 안을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다 보니

허리띠의 구멍도 첫 번째에 한정되어 고착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일편단심 첫 번 째 구멍을 고집하며 살았는데

10여 년 전부터

그 옆 구멍으로그리고 또 한 칸 옆 구멍으로 

슬그머니 허리띠의 쇠 침의 거주지가 

변두리로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보다 허리가 2 인치가 늘어났으며

그런 증가는 진행형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삶이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의식은 있었지만 아무런 결심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2 년 전에 지인들과 서부 여행을 다녀온 뒤 결심을 했다.

차를 빌려서 여행을 하는 동안 입이 극락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다가 밖으로 향하는 동안

간식거리는 수임 없이 밑 빠진 독 같은 내 위와 장으로 들어갔다.

 

허리띠의 구멍은 여행 뒤 또 한 칸 밀려났어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지내다 보면 머지않아 

마지막 보루인 네 번째 구멍에 쇠 침이 도달할 시간이 멀지 않았다.

산소가 부족한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내 몸이 위기를 감지했다.

 

무기력한 몸은 

정신마저 물에 젖은 과자 부스러기처럼 흐물거리게 만드는 법이다.

 

가라앉는 잠수함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 식사 후 아내와 동네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tv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는 족욕을 하고,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시작했다.

축구를 해서 하체는 괜찮은데

상체의 근육이 영 부실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한 번 하기가 참으로 고통스러웠는데

지금은 제법 개 수가 늘었고 그 횟수의 증가는 진행형이다.

그리고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할 때

최대한 느린 속도로 한다.

반동을 이용하지 않고 근육을 쓰기 위해서이다.

팔이며 어깨, 그리고 배 주변의 근육이 극한의 고통을 호소하지만

고통이 큰 만큼 효과도 있는 것 같다.

 

젊은 시절 배에 새겨진 임금 왕(王) 자가.

왕은 사라지고 왕의 무덤이 되었던 내 배에 

()의 귀환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어 달 전부터 30 년 넘게 내 허리를 지켜온 허리띠의 쇠 침이

처음 샀을 때의 그 첫자리로 슬그머니 돌아간 것이다.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내가 읽는 영어 성경 중 Mathew 한 구절이다.

여기서 Repent(회개)라는 말은 

내가 가진 얇은 지식으로 보자면

그리스어의 '메타노이아'를 번역한 것으로

자기가 지은 죄를 반성하라는 뜻보다는 

지금까지 가던 마음의 방향을 바꾸라는 것에 더 무게가 있는 듯하다..

왕처럼 받들었지만 힘 없이 죽은 예수 때문에 실망해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를 체험하고는 발걸음을 돌려 예루살렘으로 향한 것처럼

지리적, 물리적인 방향뿐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근원적인 곳으로 향하는 것이

바로 'Repent'(회개)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낡고 칠도 다 벗어지고

늘어날 대로 늘어난 내 허리띠의 첫자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내 마음의 첫자리는 어딜까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https://blog.daum.net/hakseonkim1561/2253#n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