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일기 - 내가 끓인 된장찌개를 먹으며
일요일, 내 앞에 놓인 시간은 너무 널널하게 많았다.
토요일 저녁에 동네 성당에서 특전 미사도 했으니
일요일 아침 축구를 마치고 나면
그야말로 광활한 하루의 시간이 내 앞에 열릴 것이기 때문에
밤 새, 그리고 축구를 시작할 때까지
기대감과 희망으로 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그런 희망의 풍선은 축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람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날이 짧아진 까닭으로 어둠 때문에 알지 못 했는데
사위 구분이 될 정도로 날이 밝아오자
하늘의 십 할이 구름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를 마치고
지난 주 토요일에 새 집으로 이사한
큰 딸네로 손주들 보러 갈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으나
땀에 찌든 내 모습을 손주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잘 못 하다가는
지저분하고 냄새 나는 '하부지'로
손주들 마음 속에 영원히 낙인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고 싶지만 보려는 마음을 접었다.
이젠 귀신도, 도깨비도 무섭지 않으나
손주들에게 보이는 눈치가 제일 무서운 때가 온 것이다.
축구를 마치고 팰팍(Palisades Park: 뉴저지의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팀원들 몇과 함께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뒤풀이를 하고
부르클린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두부와 무생채를
후라이 팬에 찬 밥과 함께 넣고 볶아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오후 시간은 밀린(?) 음악을 듣고
영화 밀정을 보는 것으로 메웠다.
오후 다섯 시 가량 되어서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쌀을 씻어서 밥을 시작했다.
쌀뜨물을 버리지 않고 냄비에 부었다.
다시마 몇 조각과 멸치를 넣은 후, 된장을 쌀뜨물에 풀고 끓이기 시작했다.
약한 불에 천천히 끓였다.
그래야 재료가 가진 맛을 알뜰히 우려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20-30 분쯤 되었을 때 멸치와 다시마를 걷어내고
양파와 감자, 호박과 두부를 넣은 뒤 계속 끓였다.
된장 찌개를 거의 한 시간쯤 끓인 것 같다.
밥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자
밥솥은 밥이 다 되었다고 신호를 보냈다.
냄비 뚜껑을 열고 된장찌개의 맛을 보았다.
지상의 맛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입에는 퍽 만족스러웠다.
마음이 명랑해졌다.
갓 된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된장찌개로
화려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이마와 등에 땀이 났다.
넉넉한 포만감이 내 마음도 배부르게 해 주었다.
노사연의 바램이라는 노랫말에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늙어감에 대한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간은 마술을 부린다.
살아 있는 것을 썩게 하기도 하고
발효를 시키기도 한다.
된장찌개가 내 입 속으로 들어오기까지
누군가가 콩을 쑤고 메주를 띄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된장을 만들어 항아리에 넣고 숙성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누군가는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어떤 농부는 씨앗을 심어 감자와 호박을 심고 열매를 맺기까지
땀을 흘리며 한 두 철을 보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을 모아 나는 한 시간 동안 요리를 해서
된장찌개를 완성한 것이다.
된장찌개는 긴 시간들이 모여 함께 숙성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 긴 시간들이 만들어 내는 조화로운 맛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끓인 된장찌개를 먹으며
나도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평소보다 이른 저녁을 먹었지만
짧은 가을 해는 벌써 지고
창 밖에는 이미 어둠이 안개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