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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

오후산책

오후산책





지난 주에 이어 여전히 고요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어제 날씨를 살펴보니 

오늘은 하루 종일 햇볕이 쨍쨍 쬘 예정이어서

오후 일찍 어디로든 나갈 작정을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갑자기 한 종업원의 

전화를 받으면서

그런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일이 있어서늦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아침 시간을 설렁설렁 보냈다.

오후에 일이 끝나고 잠시 짬이 나기는 했는데

이미 어디 멀리 가기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그냥 동네 한 바퀴 휘이 돌기로 했다.


밤에 하는 산책을  앞당겨 오후에 한 것인데

나름대로 속셈이 있어서였다.


공원 한 귀퉁이에 크로커스가 무리를 지어 피었는데

밤에 산책을 하며 보아도  보아도 그럴싸했다.

"햇살이 비출 때 보면 얼마나 예쁠까?"

하는 생각을 며칠 째 산책하면서 빠짐 없이 했다.


드디어 크로커스와 만나려

콩당거리는 가슴으로 세탁소 문을 나섰다.


해는 뉘엿뉘엿 빌딩들 너머로 

포물선을 그리며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원 안의 키가 큰 나무들을 올려다 보았는데

봄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늘어서 있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에도

봄소식을 알아챌 수 있는 아무런 힌트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름드리 고목 아래

크로커스는 푸른 잎 사이로 

그 연보라 빛 뽀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무리를 지어서 말이다.


조잘조잘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가았다.


나는 그 아이들이 너무 기틀하고 예뻐서

땅에 넙죽 엎드려서 인사를 건넸다.


"반갑고 고마워."


올 해도 어김 없이 우리 곁에 찾아와

고운 낯빛으로 봄소식을 알리는

그 키 작은 꽃들 때문에

오늘 오후가 환해졌다.


봄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야

그 봄소식을 만날 수 있다.


봄이 우리 곁에 왔지만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낮추어야 

비로소 봄인 것이다.


소쿠리에 봄나물을 가득 캔 봄처녀처럼'

내 가슴 속에도 크로커스의 연보라 빛으로 가득해진

오.늘.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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