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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미 대륙횡단

텍사스에서 오지게 바람 맞다

 

텍사스에서 오지게 바람맞다.

 

 

 

 

 

2017 년 10 월 초순에서 중순으로 넘어가는 언저리에

아내와 나는 동서 횡단 여행 중이었다.

미국 최초의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는

66번 도로를 따라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으로의

내 환갑 맞이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66 번 도로의 시발점인 시카고를 출발해서

쎄인트 루이스를 거쳐

남 쪽으로 내려와 다시 우리의 목표인

산타 모니카가 있는 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클라호마 주를 지나는데

단조로운 풍경 때문인지 오후가 되니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아침에 쎄인트 루이스를 출발해서 도심지를 벗어난 뒤부터 

점심을 먹고 난 뒤까지도 

길 양 옆의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한가로운 구름 그림자가

계속되는 푸른 풀밭 위에 띄엄띄엄 내려앉고

그 위에 소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거나

나무 그늘에 몸을 누이고 

아무 제약도 없이 시간을 보내는 단조로운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얼마 동안 아내에게 운전을 맡기고

꼬박꼬박 졸음 속으로 빠져 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음 졸음 속에 잠겼을 때나 깨고 난 뒤나 

바깥 풍경에서 전혀 변화를 감지할 수가 없었다.

단조로움을 넘어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변화가 없는 풍경 속을 지나간다는 것은

희망이 단절된 곳에서 고문을 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의 배경이 된

오클라마호엔 더 이상 흙먼지가 불지 않았다.

오히려 푸른 풀밭 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먹고살 길이 막연했던 사람들은

66번 도로를 따라 희망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길을 떠났다.

 

만약에 지금 오클라마호 사람들이 고향을 떠난다면

그 이유는 지루한 삶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평화로운 곳이라도

지루한 삶이 이어지는 곳은 지옥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평화로운 지옥'이 내가 오클라호마를 지나며 받은 인상이었다.

 

다시 운전대를 잡고 얼마를 가다 보니

별 하나로 상징되는 텍사스 땅을 밟게 되었다.

얼마간 텍사스의 바깥 풍경은 오클라호마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텍사스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키 워드로 딸랑 석유와 카우보이를 꼽을 수 있는데

얼마나 소나 말이 많으면

'텍사스 카우보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텍사스를 지나며 아주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었다.

 

텍사스 하면

사막에 카우 보이 모자를 쓰고 가죽 장화를 신은 카우 보이가

말을 탄 장면을 쉽사리 연상할 수 있는데

운전하며 실제로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텍사스는

사시사철 덥고 건조한 사막이 전부인 곳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그런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둑어둑해지는 길을 달리는데

낯선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Wind Farm'이라는 표지가

간간히 눈에 띄었다.

야자수 높이의 풍차처럼 생긴 풍력 발전기가

숫자를 셀 수도 없이 벌판에 늘어서 있는데

그 길이가 수 십 마일은 되는 것 같았다.

 

길을 달릴 때 차가 바람에 마구 흔들렸는데

미 동부에 살면서는 자주 경험하지 못하는 두려움을 

심하게 느낄 정도였다.

차가 흔들리는 걸 막아주는 데 아무런 효력이 없음에도

운전대를 쥔 내 손에는 

손목의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의 힘이 들어갔다.

 

날은 어두워지고 운전하는 것도 기가 빠지는 일이어서

마침 눈에 띄는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언덕 위의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에서 내리는데 깜짝 놀랐다.

 

몰려오는 바람의 세기와, 추위 때문이었다.

우리가 계획했던 여행지는

가을이지만 대체로 따뜻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의 예상이 그 바람에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하루 종일 비교적 따뜻했던 초가을 날씨가

몇 시간 만에 겨울 날씨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아래위의 이가 전기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텍사스는 늘 더운 곳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과 무지가

한 순간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내가 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텍사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고

아마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무덤까지 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믿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텍사스의 바람은 내 작은 머리를 세차게 때리고 지나갔다.

그 바람은 마치도 

내 미망의 졸음을 깨우는 죽비와도 같았다.

 

어깨 위에 내려앉아 졸음을 깨우는 죽비.

 

그래서 나는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얼마나 모자라고 어리석은 지를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길은 영원한 스승이다.

 

 

 

 

오클라호마와 텍사스의 풍경,

풀밭, 소떼, 하늘과 구름

 

 

 

 

 

 

 

휴게소.

텍사스 주의 기.

 

외로운 별 하나 (Lone Star)

 

옛날 멕시코와 텍사스 주 사이에 영토 전쟁이 붙었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멕시코와의 전면전을 피하려고

연방 정부는 구원 병을 보내지 않았다.

알라모 전투에서 텍사스 민병대는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싸워 영토를 지켜 냈다고 한다.

 

달랑 별 하나의 외로운 깃발.

 

자부심이기도 하고

연방 정부에 대한 섭섭함이기도 한 외로운 별 하나

 

 

 

 

 

 

 

바람이 엄청 불었다.

 

김수영의 시 '풀'이 생각났다.

 

-풀이 눕는다.-

 

나는 바람 때문에 풀처럼 고꾸라졌다.

나의 생각 편견과 함께.

 

그리고 울었다.

 

 

 

 

 

 

 

 

 

 

 

 

 

 

이런 광경이 수십 마일 이어진다.

이름하여 'Wind Farm,

 

미국에서 풍력 발전을 제일 많이 하는 곳이

바로  텍사스 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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