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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미국 여기저기

Boston 1 박 2 일 - 조카 영진이 그리고 Union Oyster House

Boston 1 박 2 일 - 조카 영진이 그리고 Union Oyster House


토요 특전 미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면서 여독과 함께 차가운 물기를 닦아 내었다.

비는 지치지 않고 내렸고, 

바람까지 가세해 Boston의 밤은 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녁 7 시 30 분에 조카 영진이와 저녁 약속을 

오래 전에 아내가 잡아 놓았다.'

영진이는 막내 처제 둘째 딸인데

BU(Boston University)를 졸업하고

그 곳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영진이는 얼굴도 예쁘고 

어릴적부터 마음도 동글동글 그렇게 예쁠 수 없었다.

누군가 주위에 멋진 청년이 나타나면

주저없이 만나게 해주고 싶은 그런 조카이다.


게다가 한국말도 잘 해서

우리 같은 이민 1 세대와 한국어로만 몇 시간이라도 대화가 가능하니 

조카들 중에서도 더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다.


낯선 곳에서 사랑하는 조카와

따뜻한 저녁 한 끼를 하는 것은

을씨년스런 Boston의 밤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데도 

한 몫을 단단히 해 줄 것 같았다.


약속 시간 10 여 분 전에 

비와 바람이 어지러운 밤거리로 나섰다.

방향 분간이 잘 안 되는데다가

전화기의 지도도 바람처럼 흔들렸다.

지금 생각해도 전화기의 Google Map이 정신이 나갔다고 믿어지긴 하지만

비바람 때문에 내 정신이 혼미했던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리를 잘 알면 5-6 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거의 반 시간이 걸려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영진이는 벌써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주말이어서인지 비바람이 그리 난리법석인데도

식당 안은 사람들로 제법 북적이고 있었다.

아내가 미리 예약을 했음에도

우리는 잠시 기다려야 했다.


보통 미국의 인기 있는 식당에 가면

바로 테이블로 데려가지 않고 시간을 끈다.

기다리면서 바에서 한 잔 하도록 유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식당은 음료나 술을 마시는 바 뿐이 아니라 

기념품 상점도 있었다.


특별하다는 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1826 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계속 식당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기에

미국에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식당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방문했던 Union Oyster House다.


전통적인 New England 지방의 해산물 요리와 함께

Boston의 숨결이 묻은 시간을 맛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내는 이 식당을 영진이와의 접선 장소로 점을 찍은 것이다.


이 곳의 음식 값은 

내가 다녀 본 식당 중 top 수준이었고

맛도 ok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식당은 아마도 1704 년 정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식당으로 문을 열기 전에는

드레스 용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고,

'Massachussets Spy'라는 신문이 발행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재미 있는 이야기가 이 건물과 식당에 얽혀 있는데

몇 가지 소개를 하기로 한다.


☆Daniel Webster라는 정치인은

매일 이 식당에서 여섯 개의 굴과 함께 술을 마셨다.

(굴이 몸에 좋다는 걸 알았을까?)


☆1796년에 이 건물 2층(우리가 식사했던 곳)에

프랑스에서 유배되었던 Louis Phillippe가 세들어 살았는데

나중에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그는 여기서 셋방살이를 하며 생계를 위해 Boston의 여자들에게 프랑스어 교습을 했다고 한다.


☆ 미국에서 처음으로 이쑤시개가 사용된 곳이 바로 이 식당이다.

Charles Forster라는 사람이 남미에서 이쑤시개를 수입해서 팔았는데

마켓팅의 한 방법으로 하바드 학생들을 알바로 고용해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이쑤시개를 요구하게 했다고 한다.


☆John F Kennedy는 이 식당의 단골이었는데

2 층에서 사적인 파티를 자주 열었다고 한다.

이 식당에서는 

Kennedy Booth를 만들어 그를 기념하고 있다.


어디 이 식당과 건물에 연관된 이야기가 이것 뿐이었을까?


시간, 역사라는 건 참으로 묘하다.

낡고 삐걱거리는 시간의 켜에서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식당이 자랑하고 있는

메뉴 중 Clam Chowder Soup과 버터를 얹어 찐 굴과, Calamari를 주문해서 나누어 먹었다.

특별히 Clam Chowder Soupd은 clam(조개) 반, Soup 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왕건이가 듬뿍 들어 있어서 스푸를 씹어 먹느라 

어금니가 애를 써야 했다.

워낙 굴을 좋아하지 않는 식성을 가진 나였지만

버터를 얹어 찐 굴은 고소한 맛 때문인지 먹을만 했다.


메인 디쉬로 나와 아내는 해물 파스타를 주문했다.

나는 조개가 접시 주위를 빙 둘러 포위하고 있는 파스타(아마 봉골레),

아내는 토마토 소스와 여러 가지 해물이 들어간 파스타를 주문했는데

내 것은 싱겁고 맛이 밋밋해서

나중에 국수를 아내의 소스에 담가 먹었다.

영진이는 랍스터 요리를 먹었다.


아무리 맛난 파스타를 멋진 곳에서 먹어도

허름한 중국집에서 먹는 짬뽕 맛에 비할 수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짬뽕이 아니라도 얼큰한 한 그릇의 라면 맛을 떠 올리며

파스타를 먹는(었)다.


만약에 그 식당에서

라면과 파스타를 35 달러를 받고

같은 가격에 판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라면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한)국수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영진이와 작별을 할 시간이 되었다.

식당 앞에서 영진이에게 Uber택시를 불러 타고 가라고 했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호텔로 돌아가면 되니 말이다.


영진이는 그 곳보다

호텔 앞이 택시 잡기가 더 쉬우니 

호텔 앞까지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것이 영진이의 마음이다.


Boston은 자기 나와바리이니

우리를 호텔까지 밤길 안내를 하려는 영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따뜻한 마음들의 교류를 경험하는 것은

삶의 의미와 행복을 더해준다.


어느새 비는 멎고

밤하늘이 개고 있었다.

영진이는 그런 사람이다.

같이 있는 사람들의 구름 낀 마음도 맑게 해주는----


영진이가 담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참 복이 많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비는 그쳤지만

밤바람은 싸늘했다.

그래도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 그리 춥지 않았던 것은

오로지 영진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그랬을 것이다.


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춥다한들,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마음들이 이어지면

견디어 내지 못할 삶의 추위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추웠지만

따뜻한 보스톤의 밤이 깊어갔다.





흰 식탁보가 아닌 종이로 된 매트








(이 식당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 초상화가 벽을 장식하고 이ㅆ다.












Boston 시청







식당 안의 Kennedy Boo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