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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미국 여기저기

Boston 1ㅣ 박 2 일 - Freedom Trail

Boston의 Freedom Trail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찍 일어나 우리는 호텔을 나왔다.

전 날 무자비하게 내리던 비는 멎었다.

비는 그쳤지만 비가 차지했던 공간은

쌀쌀한 기운이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 날  영진이가 알려 준 Freedom Trail을 따라

가벼운 산책을 할 요량으로 길을 나선 것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우리가 묵은 호텔 길 건너에 빨간 벽돌로 된

Freedom Trail 표시가 보였다.Freedom Trail은 벽돌이나 벽돌 색 페인트로이어져서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Freedom Trail은 미국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독립 전쟁)과 관련된16 곳의 사적지를 연결한 길인데2.5 마일(약 4 킬로 미터)에 걸쳐 있다.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거리를 이어 놓았기에호텔 체크 아웃 시간에 돌아 올 요량으로 일찍 길을 나섰는데주머니에 손을 넣을 정도로 쌀쌀했다.

 

 


 

 

빨간 벽돌이 길 가운데 보이는 데

이 선을 따라가면 열 여섯 군데의 사적지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하루를 묵은 Omni Parker Hotel)

호텔 자체가 미국에서 제일 오래 되었으니

이 곳 역시 사적지라 할 수 있지만

Freedom Trail에는 제외되어 있다.

 

 

 

 

 

 

 

 

호텔 맞은 편으로 길을 건너며

보이는 건물이 있는데 예전의 보스톤 시청 건물이다.

현재는 스테이크를 파는 식당.

 

 

 

 

 

열 여섯 곳의 사적지에는

이런 동판이 있어서 사적지임을 알려 준다.

 

 

 

 

 

 

왼 쪽에 교회처럼 생긴 건물이 South Meeting House로서

일종의 공회당 같은 곳인데

여기서 'Boston tea Party' 같은 역사적 사건의 모의(?)가 이루어 졌다.

 

Boston Tea Party는 

영국 정부가 영국의 차(물론 마시는)를 비싼 값으로 강매를 하니

식민지 사람들이 열 받는 건 당연지사.

차가 실려 있던 배에서 차를 바다에 버린 사건.

네덜란드에서 온 차는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먹는 문제와 경제는

사람들의 첫 번 째 관심이다.

 

결국 차 값 때문에 영국 정부에 불만이 생겨서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

 

십 수 년 전에 Boston Tea Party가 발생한 배에 가 보았는데

실망에 또 실망.

배를 전시해 놓았는데 너무 작아서 애개개 했던 기억.

 

그 작은 배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미 독립전쟁으로 이어졌으니

참 역사라는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사진을 찍으니 차 안에 있던 경찰관이 내려

이 것 저 것 사진기와 사진에 대해 아는 체를 했다.

 

잠깐 동안 수다.

 

 

 

 

 

 

이 곳은 이일랜드 사람들을 기억하는 공간.

먹고 살기 힘 든 아일랜드를 떠나 

보스톤으로 이민와서

3 D라고 하는 바닥 일 하면서 살아 남았다.

그리하여 Boston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제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후손이

Boston에서 기침깨나 하면서 살게 되었다는 증거.

 

John F Kennedy도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

 

 

 

 

 

 

 

이 곳이 Old South Meeting House

 

17770 년대에 혁명의 온상지가 되었다.

사진 속에도 보이지만

이 벽 안에서 Boston Tea Party가 계획되었다.

 

벽에도 귀가 있다(Walls has ears.)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 건물의 벽은 그 이야기를 다 들었을 것이다.

 

 

 

 

 

1713 년에 지어진 'Old State House'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된 공공 건물 중 하나.

1798 년까지 매사추세트 주의 법원으로 사용되었다.

Boston 주민들에게 독립 선언문이

저 건물의 동 쪽 발코니에서 처음 낭독되었다고 하는데

사진 속의 발코니라고 추정됨

 

 

 

 

 

벽돌과 구리로 만들어진 조형물.

 

Boston 대학살이 이루어진 곳.

바로 Old State House 앞에 있다.

 

1770 년 3 월 5 일, 눈 내리는 밤에 영국군과

현지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다.

 

해 주는 것도 없이 세금만 뜯어가는 영국 정부가 

사람들은 미웠을 것이다.

그런 감정들이 한 순간에 쏟아져 나왔던 것이 

바로 보스톤 대학살이라는 사건이다.

 

눈과 얼음덩이를 던지며 조롱을 하던 주민들에게

영국군들은 두려움과 위기 의식을 느낀 것은 당연지사.

더군다나 멀지 않의 곳에 있는 세관에는 

영국 왕(정부)의 돈도 보관되어 있었으니

영국군들의 심리 상태는 최고의 긴장 상태였을 것이다.

결국은 총을 쏘게 되었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곧 독립전쟁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저 기념물은 그 때 희생된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그들의 생명이 끊어진 그 자리에 말이다.

 

 

 

 

 

 

 

 

 

 

 

 

 

 

전 날 밤에 조카와 식사했던 바로 그 식당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식당.

 

 

 

 

 

건널목.

 

 

 

 

 

 

 

 

 

 

 

현대식 건물 사이에

오래 된 건물이 사이 좋게 공생을 하고 있다.

오래 된 것을 마구 허물어 버리지 않고

보존하고 지키려는 마음.

 

 

 

 

 

Faneuil Hall 과 Chelsea Market 주변공예품과 기념품을 파는 상점과 거리의 공연이 펼쳐지는 곳.



 

 

 

 

 

 

 

 

 

 

 

 

 

Chelsea Market 주변

거리에 장이 선다.

어제 미처 치우지 못 한 청과물 쓰레기가 눈에 띈다.바닥엔 구리로 과일과 야채 모양을 만들어 박아 놓았다.

 

 

 

 

여기에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리틀 이탈리가---

 

청년 하나가 노인을 만나 이탈리아 어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는 가게의 진열장 안의 사진

소피아 로렌이 있다.

이탈리아와 관계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네 소방서 

소방관 부츠 모양의 모금함.

 

 

 

 

 

 

 

 

 

 

 

 

Old North Church로 가는 길에

말을 타고 질주하는 동상을 보았는데

Paul Revere 동상이고 그 주변에 그의 집이 남아 있다.

 

Paul Revere는 이름이 말해 주듯 프랑스 사람이었는데

영국군이 상륙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자정에 말을 타고 달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름하여 ''Midnight Run'

 

 

 

 

 

 

 

 

 

 

Old North Church 뒷 뜰의 풍경.

군번 없는 인식표들을 걸어 놓았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일 것이다.

 

 

 

 

 

 

이 교회가 Old North Church

건너 편 커피 숍에서 커피와 콘 머핀을 먹었다.

 

마침 예배 중이어서 겉에서 눈팅.

 

이 교회에 등을 하나 달면 

영국군이 육지를 통해서 온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고

등을 두 개 달면 바다로 올 것이라는 걸 의미했다.

 

물론 Paul은 이 교회에 등 불이 두개 달렸다.

 

 

 

 

 

 

이 곳이 Copp's Hill Burying Ground

1659년에 생긴 보스톤에서 두 번째로 오래 된 묘지.

초기 보스톤 정착자들이 묻혀 있고

Boston Tea Party와 관련된 사람들의 묘지도 여기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열 여섯 군데 사적지 중 두 곳이 있다.

우리는 다리만 건넜다 돌아 왔다.

호텔의 체크 아웃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허름한 호텔은 인정과 사정이 통하는데

고급 호텔에서는 그런 유들이가 잘 안먹힐 때가 있다.

몇 분 상관으로 벌칙금을 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멀리 오벨리스크처럼 보이는 탑이

'Bunker Hill Monument'

 

Bunker Hill 전투는 1775 년 6 월 17 일에 일어났다.

미 혁명 전쟁 중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는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탑.

 

이 밖에도 USS Constitution이라는 닉 네임이 붙은

배가 있는데1797 년에 진수되어 

영국 해군과 해전을 치뤘던 적이 있다.

승선해서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돌아 오는 길,

다리를 건너며 보이는 이 식당 광고.

아무리 그래 봐야 나는 안 간다.

 

 

 

 

우리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

시청 근처의 별다방.

주전자에서 김이 팍팍 나온다.

 

김이 나오는 건가,

김이 새는 건가.

 

신기해라.

 

 

 

우리 호텔에 거의 다 왔다.

또 한 군데의 사적지.

'King's Chapel and Burying Ground'

 

Freedom Trail에 있는 열 여섯 군데의 사적지 중 

여섯 곳은 가지 못 했다.

모두 우리가 묵은 호텔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포기했다.

 

체크 아웃 시간에 대기 위해 서둘러야만 했다.

모두 지난 밤에 먼 발치에서 보고 지난 곳이다.

 

뭐 딱히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 날 아침 일정은 산책에 무게를 두었기에 아쉬운 것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누군가가 살다가 스러져 간 곳이다.

살다가 죽어간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역사의 한 부분인 것이다.

 

자신의 삶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살면서 투쟁을 한 발자취가 남아 있는 것이 사적이다.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합쳐져

역사라는 이름으로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는 시간.

 

쌀쌀했지만

시간 속에서 많은 이들을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그 날의 기억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