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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뉴욕 시내 기웃거리기

Central Park-호색한을 벗어나기 위하여

Central park는 뉴욕의 맨해튼에 있는 공원이다.

라고 적고 나니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내 상식과 지식 창고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텅 빈 가벼움.

 

영화 'Love Story'  중 스케이트 타는 장면이 여기서 촬영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2005 년에 어느 부부가 The Gates'라는 제목으로

오렌지 색의 천으로 7천 오백 여개의 문을 만들어 

설치 예술 공연을 했다는 사실,

(나도 그 문 사이를 걸어 다녔다.)

그리고 뉴욕 마라톤 대회의 결승 라인이 이곳에 설치된다는 점 등이

내가 Central Park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뉴욕에 둥지를 틀고 사는 한국인들 중

제대로 Central Park를 걸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서울 주민에게 남산 타워에 오른 사람이 

몇이나 되냐는 질문과 결을 같이할 것이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래서 어제는 머리를 텅 비우고

그냥 한 번 Central Park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기로 했다.

 

먼저 Fuji Film 카메라를 챙겼다.

작고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가 좋다.

그러나 단초점 렌즈여서 발품을 팔아야 하는 등

제약이 많긴 하지만

어쩌랴, 이미 사귀기로 서로 약속한 사이인 것을.

 

이 카메라와 내가 아직 별로 친숙하지 않은데

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 흑백으로 사진을 찍도록 설정을 했다.

괜히 색에 홀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동안 찍은 내 사진을 보면 

색조가 예쁘거나 강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사진을 찍을 때

나도 모르게 색에 이끌리는

호색한적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상'에 집착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 사진에서 색을 빼고 난 뒤 

무엇이 남을까?라는 

화두를 틀고 길을 나선 것이다.

 

결국 사진을 찍는 일이 상의 포로가 되는 것임에도

이런 발버둥을 치는 내 자체가 모순 덩어리다.

 

 

 

 

 

 

 

 

새벽엔 이슬비가 내렸다.

그리고 오전 내내 흐렸다.

 

축구를 다녀와서 집에서 미적거리다가

빛이 나는 기색이 보이지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후 한 시가 좀 넘은 것 같다.

 

 

 

 

 

 

J 트레인을 타고 Canal 역에서 내렸다.

N, R 라인으로 갈아타기 위해서였다.

비좁고 습기 많은 역에서 30 여 분 기다렸다.

지루해서 맞은편을 향해

카메라를 조준했다.

이런 사진을 왜 찍었냐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5 Ave. 역.

 

 

 

 

모든 인력거들이 참 바쁜 날인데

놀고 있는 인력거 꾼도 있다.

가격표를 보니 10 분 당 4 달러 정도.(자신이 없다.)

 

 

 

 

 

 

 

 

 

 

 

 

 

콜럼버스

아이들이 먹을 것을 던져주며 즐거워한다.

오리들이 당뇨병 걸리지 않을까?

(걱정도 팔자다.)

 

 

 

 

 

연못 옆의 나무뿌리.

 

 

 

 

다리 난간에 앉아 셀카를 찍는 여인.

별별 포즈를 다 취하는데

이 카메라로 디테일한 부분을 잡을 수 없었다.

 

이 사진을 보며 웃는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을 것 같다.

 

 

 

 

 

 

 

 

 

 

 

 

 

 

 

 

 

 

 

소프트 볼 경기.

관중은 거의 없는데

남녀 한 쌍이 경기를 보고 있다.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Strawberry Field 였던가?

 

 

 

 

포장된 길 위엔 자전거

인력거

마차,

그리고 뛰거나 걷는 사람들.

 

같은 길 위에 서 있어도

사람들 모두 다 다르다.

생김새도 생각도.

 

그래도 길은 하나라는 사실이 신기하다.

 

 

 

 

노인들이 무슨 놀이인지

운동인지를 하고 있다.

 

정말 처음 보는 광경이다.

 

 

 

 

 

 

앉아 있는 모습도 

시선도 다 다르다.

 

 

 

 

 

 

 

A star is born!

 

 

 

 

 

 

 

 

 

 

 

 

사람도 제일 많고

관중 호응도 높은 흑인 청년 셋이 하는 공연.

 

입담도 좋아서 시종 사람들을 웃긴다.

 

우리나라 약장수처럼

시간만 질질 끌고

정작 보여줄 건 찔끔찔끔.

 

 

 

 

 

 

 

 

점보 비눗방울.

한 아이가 비눗방울 터트리는 일에 재미 들렸다.

 

우리 손주들도 좋아하는 비눗방울 놀이.

 

 

 

 

 

 

 

 

이곳이 아마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인 것 같다.

마침 인도 춤 공연이 있었다.

 

화려한 색의 사리,

그리고 옷에 달린 반짝이는 구슬.

 

자연스레 마음이 색에 끌렸다.

이럴 줄 알고

집에서부터 카메라를 흑백에 고정시켜 두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칼라로 전환할 수 있어도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눈도 침침하고---

 

그런데 그 화려함을 탈색하고 난 뒤 무엇이 남았을까?

 

금광석을 제련해 금을 얻듯이

그렇게 작은 양이라도 남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까지 허상을 쫓아다니며 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분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어디선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소리의 발원지는 계단으로 오르는 동굴 안이었다.

 

여태껏 거리에서 들어 본 노래 중 

그 어느 누구의 그것보다

아름다운 소리였다.

키가 작고 몸 어디나 궁끼가 몸에 묻어 있는----

그녀의 눈이 먼 것 같았다.

 

그녀의 삶의 역정이 눈앞에 그려졌다.

 

아닐 수도 있는데

그녀의 삶이 비극이라고

나는 단정 지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야 노랫소리가 더 극적으로 들린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녀의 노래가 신비롭게 들렸던 것은

많은 부분 동굴의 반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은 아름다운 기억에 초를 친다.

 

 

 

 

 

 

 

 

동굴 안에는 소리의 울림을 이용해

노래를 부른 사람이 있고

빛의 명암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다.

 

 

 

 

 

 

 

 

 

 

 

 

분수대 안에는

연꽃이 색색으로 피어 있었다.

다른 때면 줌렌즈로 연꽃의 예쁜 색을 담았을 것이다.

 

카메라와 렌즈가 없으니 포기했다.

 

무언가 부족하거나 없어서 갖는 아쉬움, 

혹은 회한이 있다면

없어서 포기해 버리는 자유를 누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어떤 쪽일까?

 

분수대 안에는 

누가 주워가지도 않는 값싼 동전들이 무수히 많았다.

 

 

 

 

초상화 그려주는 데 5 달러.

 

-한 번 그려 달래 봐?-

 

삶의 어느 순간부터

내가 찍힌 사진을 보면 언제나 실망스럽다.

사실대로 찍힌 나보다

나는 나를 너무 높이 평가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나의 내면을 찍었다면

또 실망할 것이다.

나의 내면에 대한 과대평가는

내 기억이 닿는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분수대를 지나면 호수가 있다.

보트를 타는 사람들.

 

 

 

 

 

 

 

 

 

벤치 아래에서

사람들이 흘리고 간 음식물을 참새 몇 마리가 먹고 있다.

누군가가 바닥에 흘린 물이 나무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그 나무 영역 안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

 

 

 

 

호수 옆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인력거 창으로 보이는 사람,

사람들.

 

 

 

 

어두운 바위와 숲이 이어진다.

 

바위 위에서 두 여인이 요가를 하고 있다.

 

 

 

 

누군가 부케를 놓고 갔다.

그 뒤로 연보라 개망초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만들어진 꽃

그냥 피어난 꽃.

 

조리개를 너무 열어서

개망초가 다 날아갔다.

 

 

 

 

 

 

어느 곳에선가

노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아마 폴란드 사람들의 폴로네즈인 것 같은데

음악 따로 몸 따로 놀고 있다.

 

몸이 음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그때가 올 것이다.

벌써 왔는지도 모르겠다.

 

 

 

 

 

 

 

 

동굴 속에서

한 동양 여인이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Gabriel's Oboe'

 

동굴 속 반향 때문인지 소리가 그윽하다.

 

그런데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첼리스트는 이윽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첼로를 연주하는 것일까?

 

자신을 위해서---

라는 것이 유일한 대답일 것 같다.

 

 

 

 

아니, 오벨리스크가 있다?

 

파리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뉴욕에도?

 

 

 

 

 

 

나는 꼭 들여다보고 지나간다.

별 것 없어도.

호기심.

 

더 걷다 보니

저수지가 나타난다.

 

몰랐다. 

이렇게 큰 저수지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저수지 둘레를 걷고

뛰기도 한다.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온다.

 

날이 어두워졌다.

직선이든, 곡선이든

결국 삶은 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벽돌로 된 담장엔 이끼가 한가득.

틈 사이로 저런 식물들이 자라기도 한다.

 

 

 

 

웅덩이 속에

구름이 내려와 흘러간다.

담배꽁초도 보인다.

 

저 담배꽁초에서 나온 연기가

구름이 된 걸까?

 

어릴 때

담배를 구름과자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보니 반갑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축구를 하러 뉴저지까지 갔다가

브루클린으로 돌아와

아들과 함께 브런치를 하고

좀 있다가 점심을 먹고 떠난 길.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몸엔 피곤이 덕지덕지 묻었다.

 

쉴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적잖게 위로가 되었다.

 

지상에서의 여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도 이런 마음이면 좋겠다.

 

Central Park를 걸으며 

나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들,

그리고 여러 이미지들----

 

결국 다 내 손에서 놓아야 할 것들이다.

 

방하착.

 

비어서야 편히 쉴 수가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