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다섯 시.
일요일마다 비가 와서 두 번 축구를 걸렀다.
나는 뉴저지로 축구를 하러 집을 나섰다.
한 시간 뒤면 아내도 집을 나설 것이었다.
Arizona에 있는 장인 장모님의 집이 팔린 관게로
이삿짐 정리를 위해 가는 것이다,
공항까지 모셔다 드리는 게 최고 존엄에 대한
나의 도리이긴 하지만
나의 사생활도 중요하기에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이런 나의 마음을 헤아리고
축구하러 가라고 내 등을 떠 밀었다.
이럴 때 극렬히 저항을 하며
기쁜 마음으로 공항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하면
존엄께서도 기쁜 마음으로 나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나
이 나이에 앞으로 축구를 하면 얼마나 더 할 수 있을 까 하는 절박함이
내 입을 열지 못 하게 했다.
축구장,
아침 안개가 잔디로부터 몽글몽글 피어 올랐다.
그리 덥지도 않고
습기가 쏙 빠져 나간 공기가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두 주를 쉬었음에도
인원이 많아서인지 그리 힘이 드는 줄 몰랐다.
한 골을 넣고
도움 하나를 기록했다.
Set Piece 싱황에서
나에거 온 공을 가슴으로 받아서
떨어지는 공을 몸을 돌리며 왼 발로 찬것이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2002 월드컵, 포르투갈 전에서 박지성이 넣은 골과 비슷)
나도 설명할 수 없는 상횡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잘 해서라기 보다는
상대편 수비가 방심했던 탓이다.
내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봐 준 것인지,
아니면 단장(님)에 대한 예우 차원인지,
그것도 아니면 나를 아주 호구로보고 무시를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내 주변에 상대편 수비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때 기를 쓰고 그 까닭을 밝히려 하면 안 된다.
혹시라도 내가 알아서 불편한 진실이 밝혀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경기였다면 대 여섯 번은 족히 Replay를 해서
tv를 보는 시청자들이 머리 속으로 그 장면을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멋진 상황이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박지성이 골을 넣을 때의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은 나에게 온 공을 몰고
오른 쪽 라인을 타고 가다가
골문 앞에서 기다리던 우리 편 선수에게
크로스를 했는데
우리 편 선수인 Charlie가 머리로 받아서 아주 깔끔하게 골로 연결시켰는데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하고도 멋졌다.
아 기막힌 축구의 맛!
기가 막힌데 설명할 길이 없다.
Charlie는 미국 프로 축구 혐회라고 할 수 있는
MLS의 마케팅 팀장을 맞고 있는데
아침 축구가 끝나면 떠 어디론가 출장을 간다고 들었다.
출장 가서도 어제 했던 헤더 골처럼
멋지게 임무를 달성하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참고로 그는 우리 팀에서 Google로 이름을 검색해서 결과가 뜨는 유일한 사람이다.)
오른 쪽 윙어로 플레이를 하다 보면
크로스를 하면서도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 믿음이 가는 선수가 있으면 정확하게
내가 보내고 싶은 곳에 공을 차서 보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공을 차는 순간,
마음에 의심, 불신, 같은 불순물이 들어와
흔들리게 되고 공도 정확한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게 된다.
어디 축구 뿐이랴.
믿음,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공 뿐 아니라 내 마음도 정활하게 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된다.
내게 그런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 누군가에게 몸과 마음을 투신하게 할 수 있는 존재일까?
집에돌아 와 샤워를 하고
동네 성당에 가서 미사를 했다.
미사 중간에 유아 몇의 세례식이 거행되었다.
분별심이 일기 시작했다.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해도 될 것을
하필이면 미사 중에 하는지----
몇 번 그 성당의 미사에 간 적이 있는데
공연히 시간을 질질 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성인 호칭기도까지 노래로 하는 세례식이 끝날 때 쯤,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분별심이 내게 짜증을 나게 한 것이다.
분별심 때문에 모든 번뇌가 시작되는 것을----
참회했다.
그리고 교회의 일원이 된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축복을 보냈다.
집에 들어와 두어 달 만에 처음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낮잠.
자다 보니 땀이 나고 더웠다.
눈을 뜨니 머리가 띵하게 아팠다.
카메라를 챙겨 East Williamsburg로 행했다.
집에서 10 여 분.
공장과 풀이 무성한 공터 였던 곳이
이젠 제법 북적대는 곳으로 변했다.
곤광객들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삭막하고 황량한 이 곳에
누군가가 건과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몰려 들고---
나도 그림에 빠져 들었다.
나와 카메라, 그리고 그림
이 셋이 하나가 되는 경지.
몰아일체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지.
어느새 머리가 아프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그렇게 두어 시간 어슬렁 거렸다.
살아가는 일이 바로 길(도)인 것을.("平常心是道")
이 곳에는 트럭에도 기본적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소년의 엿보기
아이 뒤에 가려진 글자가 엿보고 싶어진다.
무엇을 쓰고 그리려 했는지 엿보고 싶은데 살짝 가렸다.
호기심 유발.
작가가 던진 미끼를 덜컥 물었다면
작품은 성공한 것이다.
나도 바닥에
내 그림자 하나 그려 넣었다.
이렇게 작업 중인 작가도 몇 만났다.
그림 속의 물감이
그림 밖으로 흘러 나왔다.
경계가 모호해졌다.
참 아픈 그림이다.
열정과 한계
그 사이.
이집트의 셀라시에 황제.
어릴 적 한국에도 다녀갔다.
이민 온 흑인 중 많은 사람이 이 사람의 뱃지를 달고 다닌다.
신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던 것 같다.
무용하는 소녀는
왜 권투 글로브를 끼고 있을까?
미 원주민의 그림.
그림 아래 벽돌의 질감이 느껴진다.
갑자기 퍼즐 맞추는 게림 생각이 났다.
수천 개의 벽돌을 맞추어 이 그림이 탄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간 플라스틱 컵 하나
버려지다.
누굴까?
이 그,림을 그린이는.
그림 밖 풀더미가
마치 두 사람이 비무장 지대에 서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그림을 보게 했다.
전기줄 위의 운동화 두 켤레.
하나는 실제 운동화.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만들어 걸어 놓았다.
그림과 실제의 경계
어는 식당 앞에 주차된 빨간 차.
'Datsun'
지금은 Nissan으로 바뀌었으니 꽤 오래되었음에도
깜찍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식당은 작년에 왔을 때
한창 공사 중이었는데
어제 보니 식당 안 팍으로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10 년이면 상전이 벽해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1 년 만에 이렇게 변했다.
이 사람들 마치 전세라도 낸 것처럼
이 곳을 떠나지 않고 별별 포즈를 취해 가며 사진을 찍는데
쉽게 자리를 비켜 줄 것 같지 않아서
앞에 주차된 차의 유리창을 이용해
몰카를 찍었다.
사진 속의 사람은
복장이며 가바까지도
이 동네 분위기와 깔맞춤을 한 둣.
이 벽화가 있는 곳 주변으로 빙 둘러
공터에 담을 치고 맥주 시음장을 연 것 같다.
들어가는 입구에
신체 건장한 남자가 기도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의 지하철 역 풍경에 익숙한 사람은
상당히 낯설고 어색한
이 곳 지하철 역 입구.
맥주 시음장 엿보기
젊은이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채웟다.
건물 유리창 속에 빛나는 전등불.
유리창 두 쪽을
썬 글라스 렌즈로 생각하고
이런 그림을 그렸다.
유리창 두 개를 모티브로 썬글라스를 쓴 불독을 창조해 낸 이의 머리.
흔헤 예술가의 영감이라고 한다.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히피 청년.
푸치아니 파바로티가 노래하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여기서 샀다.
어제 보니 완전 찌끄러기만 남았다.
낙하산 타고 내려 오다
전기줄에 걸렸다.
한 손엔 붓,
또 한 손에 페인트 깡통.
두 손에 들린 저 둘로
천지창조를 한다, 예술가들은.
하늘의 구름도 심심한지
지상으로 마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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