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내 마음에 드는)

넥타이 맬 줄 아세요? (3)





넥타이 맬 줄 아세요? (3)



요즈음은 중 고등학교의  Prom이 한창이다.

Prom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학교가 주최하는 댄스 파티라고 할 수 있는데

남자 아이들은 정장을 차려 입어야 하는 관계로 넥타이를 매는 것이 기본이다.

 

나비 넥타이라면 몰라도 보통 넥타이를 매려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남학생 중에도 넥타이를 맬 줄 아는 사람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넥타이 매는 법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처음 교생 실습을 나가던 날의 상황이 아주 자주우리 세탁소 안에서 재현되곤 한다.

 

아직 앳티가 가시지 않은 아이들이 멋진 정장을 차려 입고 와서는,

 

동네 세탁소 아저씨가 되어 있는 나에게 쭈볏거리며 넥타이를 매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학생 뿐 아니라 새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인터뷰를 하러 가는 청년들도

 

넥타이를 매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심심치 않게 우리 세탁소에 들리곤 한다.

 

어쩌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이 그리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그 남자 아이들도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의류를 다루는 세탁소 아저씨는

 

당연히 넥타이를 맬 줄 알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세탁소로 발길을 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의 추론이 빗나갔음을 아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의 대답은 당연히 ‘NO’이다.

 

30년 전 내가 살던 동네의 세탁소 아저씨와는 달리 나는 아직도 넥타이를 맬 줄 모른다.

 

그러니 자연히 실망의 표정을 감추지 모르는 청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살던 동네 세탁소 아저씨를 닮은 미소와 함께

 

넥타이를 아주 맵씨 있게 매어줄 사람을 소개하는 일이다.

 

그는 바로 내가 장례 미사에 갈 때 넥타이를 매어 준 바로 그 사람이다.

 

같은 블락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그는 넥타이를 잘 맬 뿐 아니라

 

글씨도 아주 품위 있게 잘 쓰기에

 

내가 우리 세탁소의 싸인이 필요할 때도 자주 부탁을 하곤 한다.


탁소 아저씨가 보냈다는 말만의 추천장도 함께 선사하면

 

나의 ‘NO’라는 대답에 조금 구겨진 청년들의 표정이

 

다림질이 끝난 셔츠처럼 말끔해지면서

 

세탁소 문을 나름 활기차게 나가게 되는 것이다.

 

옷의 주름 뿐 아니라 마음의 주름까지 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도

 

바로 이런 경우이다.

 

내가 이 나이에 이르도록 넥타이를 맬 줄 모르는 것은

 

지독히도 손재주가 없는 것을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 연필을 깎을 수 있게 되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매듭을 짓고 풀고 하는 일이 머릿속에서 잘 되어지지 않는 까닭도 있다.

 

한 마디로 조금 복잡하고 어렵다 싶으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나의 정신적인 게으름도 

 

아직까지 넥타이를 맬 줄 모르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래도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얼마간 필사적인 노력 끝에

 

당당히 넥타이 매는 법을 배울 수 없을 정도로 영 쑥맥은 아니니,

 

넥타이를 아직 맬 줄 모르는 데는 나 나름대로  비장하고 숭고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나이 먹도록  넥타이를 맬 줄 모르는 까닭으로 내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여러 차례 넥타이를 매어 달라고 누군가에게 수고로움을 끼쳤다.

 

연히 아내와 내 아버지도손재주가 뛰어난 내 동생도,

 

그리고 최근 둘째 딸 결혼식 때 내 목에 걸린 넥타이를 매어준

 

우리 큰 아들을 망라한 나의 가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많은 이웃들에게 나는 넥타이 매는 빚을 지고 살아 왔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빚을 진 것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

 

가까운 예로 아내에게 받은 밥상은 또 몇 번인 지 셀 수도 없으려니와,

 

그런 헌신적인 아내를 위해 밥상을 차련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것은 아내가 몸이 아파 꼼짝할 수 없을 때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먹고 입으며 살아가는 데 내가 누군가로부터 도움과 은혜를 받는 일은 내 한 평생 거른 날이 없었고,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그 보살핌과 은혜를 되돌려 갚는 일그리고 감사하는 일에 내가 얼마나 무디고 게르른 지 모른다.

 

넥타이 매는 법을 부러라도 배우지 않는 핑계이자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을 때이건누군가가 부탁을 할 때이건,

 

넥타이를 맬 줄 모르는 나를 다시금 들여다 보며,

 

나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리도 능력도 주변머리도 없는 내가 세상과 이웃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았고,

 

또 오늘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새롭게 마음 속에 새기며,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라도 잃지 않고 간직하려는 나의 처절하고도 제법 기특한 마음이

 

아직까지 넥타이 하나 맥 줄 모르는 사람으로 남아 있게 만들었다.

 

“넥타이 맬 줄 아세요?

 

혹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죄송합니다,”라는 대답과 함께

 

내 부족함을 일깨워 준 고마움과 겸손함이 담긴 미소를 넌지시 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