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내 마음에 드는)

넥타이 맬 줄 아세요? (2)





넥타이 맬 줄 아세요? (2)

 

 교생실습 첫날내가 가장 눈여겨 본 것은 남자 선생님들의 복장이었다.

넥타이까지 단정히 맨 선생님들도 있었지만

그냥 폴로 셔츠에 자켓(내가 한국에 있을 땐 콤비라고들 했다.)을 입은 분들이 대다수 였고,

그냥 잠바떼기만 걸치신 분들도 있었다.

넥타이가 남자 선생님의 필수는 아니었음을 눈치가 그리 빠르지 않은 내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다음날부터 나의 복장은 다수의 남자 선생님들의 범주에 동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아버지 옷장 안에는 넥타이가 스무 개쯤 있었지만 다 풀어진 상태로 걸려 있었으니

그걸  일일이 매 달라고 세탁소 아저씨게 부탁을 하는 것도 보통 염치가 없는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넥타이를 하루 종일 매고 있으려니 심장의 피가 목 위로 흐르는 데 막대한 지장을 받는 것 같았다.

고혈압 환자의 증세가 나타났다얼굴이 붉어지고 머리가 띵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넥타이를 맨 선생님의 인격이나 실력이

넥타이를 매지 않은 선생님들의 그것에 비해 출중하다는 어떤 명백한 증좌도 찾을 수 없었다.

 넥타이에 꽉 조여진 셔츠의 칼라는 또 얼마나 목 둘레에 자극과 고통을 주는 지목 주위의 살이 빨갛다 못해 피가 날 지경이었다. 

더 이상 넥타이를 맬 절실한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넥타이를 매어서 아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신체적인 구속과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넥타이를 매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 나는

다음날 부터는 과감하게 내 목을 옥죄던 넥타이를 풀어 던졌다.

 그리고는 넥타이는 다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며 군대에 가야 했으니 말이다.

임관식을 할 때는 정복을 입어야 하니 넥타이를 내긴 했어도 몇 시간만 견디면 되었다.

군대를 마치고 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도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넥타이와 인격이나 실력이 일치한지 않는다는 나의 신념(?)을 내세우며

당당히 넥타이를 거부할 정도로 기개를 부렸다.

그렇다고 해서 넥타이를 매지 않은 내가 넥타이를 맨 선생님들보다 인격이나 실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었음을 겸손히 고백한다.

 결혼식 때 한 번 더 넥타이를 매어 보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야채가게와 세탁소에서 일 하면서 넥타이를 맬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는그래서 내 목이 늘 자유로운 미국생활은 진정 만세였다.

 어느날 아는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미사에 가야할 일이 생겼다.

날이 막 더워지기 시작하는 이맘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침에 해야할 일을 대충 끝내고 장례미사에 가려고

집에서 챙겨가지고 나온 검정색 양복과 셔츠로 갈아 입었는데

아뿔사 넥타이는 그냥 풀어져 있는 상태였다.

급히 가게 주변의 한국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그 사람은 두고두고 나의 넥타이를 매어주어야 하는 운명과 마주치게 되었다.)

넥타이의 앞 쪽이 다소 긴 것 같았지만 제법 맵씨가 나는 그의 넥타이 매는 솜씨에 경탄하며 급하게 출발을 했다.

더워지는 날씨 때문이어서인지 넥타이를 맨 나에게 고혈압 증세가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면서 조심해서 넥타이를 벗는다는 게 그만 실수로 넥타이의 매듭이 풀리고 말았다.

 이런 경우를 무어라고 해야 할까?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넥타이를 맬 줄 모르는 내게는 엎질러 진 물이나 풀어진 넥타이나 다 그게 그거였다.

둘 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장례미사가 있을 성당에 도착해서 넥타이를 매어줄 수 있는 아는 사람이 있나 살펴보느라 시간을 썼지만

시간만 흘러 미사 시작 시간이 되고 말았다.

미국 생활에 도움을 주신 분의 장례에 넥타이를 매지 못한 결례를 무릅써야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고 그 분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분에 대한 고마움이나 슬픔이 검은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고 해서 적어지거나 혹은 없다고는 할 수없을 것이다.

게다가 고인이 되신 그 분은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고 뭐라 하실 분은 전혀 아니었다.

 넥타이를 매지 못한 나의 결례를 보충하기 위해서도

난 그 분을 위해 더 열심히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고 마음까지 없다는 편견을 가져서는 아니될  것이라고 생각을 다졌다.

지극히 내 중심적인 논리이긴 하지만 사람을 외양으로만 판단해서는 아니됨을 깨달은 것은

내가 넥타이를 맬 줄 모르는 나의 부족함 덕분이다.

 

그런 나의 다짐이나 생각이 허세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미리 이렇게 허세를 떨어본다.

 제 장례식에 오시는 분들은 자유 복장을 하셔도 좋고더더군다나 넥타이를 매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