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블로그에 썼던 글 중
내 마음에 드는 글을 골라서 다시 올립니다.
더위를 이기는 법
맷집이라는 말이 있다.
매를 맞으면서 얼마나 잘 버티느냐에 따라
맷집이 좋거나 맷집이 별로 좋지 않다는 판단을 한다.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능력이다.
그런데 더위나 추위를 견디는 데에도 맷집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추위를 견디는 맷집 하나는 괜찮은 것 같다.
군대 시절에도 얼음이 꽁꽁 어는 방에서도 잠을 잤으니 말이다.
그 때야 피가 펄펄 끓던 시절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추위는 걱정이 되지 않는다.
더위보다는 추위가 내겐 더 정겨운 손님이다.
더위에 대한 맷집은 참 없는 편이다.
보병학교 시절, 유격 훈련을 하면서
내가 더위를 견디는 맷집이 남들보다 현저히 낮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 있다.
'침투' 훈련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땡볕 아래서 점심 식사를 하고
목이 말라 엄청나게 냇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산길을 행군해서 걸어가는데
정신이 몽롱해지는 게 아닌가.
내가 술을 잘 못하긴 하지만 술을 제법 마셨다 해도
그렇게 정신이 몽롱해진 적은 그 때 말고는 맹세컨대 지금까지도 없다.
내 앞에 가던 동료가 가시 덤불을 이리저리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 눈도 가시덤불이 내 앞 길에 늘어져 있음을 인식하고
내 뇌에 전달을 했으나 내 뇌는 가시 덤불을 헤치며 가라는 명령을 내리지는 못 할 정도였다.
나는 알면서도 가시 덤불을 '용감하게' 지나갔다.
얼마 후 정신이 제법 들었을 때 보니
얼굴에 가시 덤불이 스치고 지난 상처와 함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싫어하는 더위가 무려 2 주 째 계속되고 있는데,
머나 먼 미국까지 와서
어느 곳보다도 더 더운 세탁소에서 일하게 된 것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겐 더위를 견디는 요령이 몇 가지가 있어서
그럭저럭 지금까지 버티며 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기도를 하는 것이다.
기도라고 하니 내가 무척 신앙적이고 경건한 사람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느님과 약삭 빠르게 거래를 하는 것이다.
내가 믿는 가톨릭 교리에 '성인의 통공 (Communion of all Saints)'이 있다.
'사도 신경'에도 나와 있는 것으로서
나의 희생이나 기도를 통해 공이 쌓인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 혹은 연옥에 있는 영혼과도 나누어줄 수 있다는 것이 그 교리의 핵심이다.
내가 더위를 견딜 수 있는 한계 상황에 가까이 이르면
재빠르게 하느님을 찾는다.
지금부터 더위 때문에 힘들어지더라도
잘 참고 견디며
손님들이나 종업원들에게 짜증내지 않고 잘 대해주려고 노력할 것이니
만약 그것이 하느님 눈에 이쁘게 보이신다면
그 공이 얼마가 되었든지 우리 아이들에게 나눠주십사 하는 것이
바로 기도의 내용이다.
어린아이처럼 치졸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사랑하는 일에 영 서툰 내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몇 안 되는 방법이기에 염치를 무릅쓰고
주저리 주저리 유치찬란한 기도를 바친다.
그래도 애비라고 그런 기도를 바치고 나면
제법 더위를 참는 힘이 생기는 것 같고
짜증 내지 않고 일 하려는 마음이 솔솔 봄에 새 싻 돋듯이 솟아오르는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통공의 대상이 아내나 부모, 형제가 아니며
더더군다나 이세상을 떠난 영혼도 아닌
바로 내 자식들이다.
맞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도 잊지 않은가.
내가 이 더위를 견디며 유난히 더 극성스러운 올 여름을 무탈하게 지나가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미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께서
하느님 가까운 곳에서 '거래'를 잘 하신 공이
자식인 내게 배당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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