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내 마음에 드는)

나의 음악 이야기 - Bach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나의 음악 이야기 - Bach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요즈음 내가 자주 듣는 음악을 고르라면

아마도 J.S Bach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젊은 날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좋아했던 음악 양식은

바이올린 콘첼토였다.

독주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와

오케스트라의 어울림은 늘 나를 사로잡곤 했다.

멘델스존과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내 젊은 날들의 정신적인 갈증을 채워주던 음료수라고 해도 좋을 것이었다.

 

그런데 첼로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한 사건이 생겼다.

벌써 15년 시간이 흘렀다.

Bach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처음으로 만난 것이.

 

어떻게 보면 단조롭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무반주 첼로곡은

바이올린 콘체르토의 화려함에 푹 빠져 있던 나에게는

전혀 매력이 없어서

전혀 손이 가질 않는 곡이었다.

그런데 마지못해 그 곡과 맞닥뜨릴 기회가 온 것이다.

 

장인 장모께서 프란치스코 3회(재속 형제회) 활동을 하셨는데

 그분들이 소속되어 있는 형제회에서는

 그 당시 위싱턴에 유학 중이던

한국의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의 김찬선(레오나르도) 신부님을 모셔서

영적 지도를 받곤 하였다.

뉴욕과 뉴저지에 오실 때면

방이 여유가 있는 우리 집에 머물곤 하셨다. 

 

수도회 소속인 김신부님은 아침마다 조깅을 하셨다.

그 일요일 아침에 나도 함께 조깅을 하러 나가며

신부님의 신을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6개월 전에 신으셨던 신과 같은 것이었다.

브라운 색의 캐주얼 화였는데

전보다 색이 더 바래서 후줄근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 신 하나로 강의실을 다니고,

영적 훈화를 하고 미사를 드리셨을 것이었다.

그 신은 조깅할 때도 신부님과 함께 했다.

 

세속인인 내 눈에는 너무 낡아서

새것으로 바꾸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참았다.

 

조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신부님은 내게 혹시 Bach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을 수 있겠냐고 청을 하셨다.

LP 판으로 한 장 있는 기억이 나서

틀어 드렸다.

신부님은 첼로 선율 저 깊은 곳까지 

푹 가라앉으신 것 같았다.

 

전혀 화려하지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은

단조롭고 재미도 없는 바흐의 첼로 선율은

빛바래고 낡은 신부님의 신 같았다.

 

그런데 재미없고 단조로운 첼로 선율에서

깊고 진한 고독과 우수가 묻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고독한 수도자의 삶이 담긴 물감이

물에 풀린 듯 그렇게 내 가슴에 번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유채화의 화려함이 아니라

수묵화, 혹은 목탄화의 단순함이었고

굵고 짙었다.

그리고 깊었다.

그리고 여백이 있었다.

 

얼마 후 신부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프란치스코 수도회 한국 관구장을 지내셨다.

그러나 그런 직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신부님은 거창한 직함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낡은 신을 신고 계실 것이고

더 고독해지셨을 것이다.

마치 한 켤레뿐인 신이 점점 더 날고 색이 바래듯이.

 

나는 알고 있다.

 

가끔씩 접하는 신부님의 묵상글을 대하면서

신부님이 더 많이 고독해지고

그 고독이 수묵화의 물빛처럼

더 깊고 짙어졌다는 걸.

 

나는 오늘 Bach의 첼로 곡을 들으며

 15년 전 신부님의 빛바랜 신발을 만나고 있다.

그러면서 내 신은 얼마나 낡은 빛을 내고 있는지

자꾸만 내 발밑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나의 글(내 마음에 드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치지 못 한 편지  (0) 2018.07.14
나의 음악 이야기 - 행진  (0) 2018.07.14
눈을 치우며  (0) 2018.07.14
넥타이 맬 줄 아세요? (3)  (0) 2018.07.13
넥타이 맬 줄 아세요? (2)  (0) 2018.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