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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 이야기

Hilton Head Island에서의 하루


아내와 나는

DI로서의 마지막 날을 보낸 막내 아들과 함께 

SC의 Hilton Head Island라는 곳에 있는 휴양지에서

이틀을 지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바로 옆에 있는 

바닷가에 나가서 모래 바람을 맞았고

멀리 수평선 위로

막 낯을 씻고 나온 해를 맞았다.


3 년 동안 묻어 있는 피로를 털어내기 위해

아들은 늦도록 잠만 잤다.


토요일에는 아들과 함께 테니스를 쳤다. 

'Tennis Resort'라는 명칭이 들어 있기는 했으나

10 개 쯤 되는 코트에

정작 테니스를 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갔는데

사무실에는 'CLOSED'라는 사인이 붙어 있었다.

자세히 안을 들여다 보니 누군가가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사무실을 비워 두었다가 예약이 있어서

부랴부랴 사람을 보낸 것으로 판단되었다.


몇 되지 않는 테니스 라켓 둘과

경기용이 아닌 연습용 공을 빌려

아들과 테니스를 쳤다.

워낙 체력과 실력 차이가 나지만

아들이 한 수 접어준 덕에 한 시간 가량 시간을 함께 했다.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서

공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펜스 밖 풀밭에는 연보라 빛의 망초꽃들이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우리를 응원했다.


https://youtu.be/WbAk4qu5V0o (테니스 동영상)


오후에는 Sea Pine 이라는 곳을 한 바퀴 돌았다.


거주지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곳으로

숲 사이에 집들이 있고

이런 풍경은 바다로 이어졌다.

숲 사이로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어서 

아주 시원하고 상쾌하게 자전거를 타고 바다까지 갈 수가 있다.


조용한 자연 속을 걸으며

시간을 잊었던 오후.


시간을 잊고 산다는 것.


적어도 시간이 멈춰 서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내가 시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긴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시간의 운동을 잊고

시간과 함께 흘러다닌 그 시간들.




숲은 오솔길로 연결되어 있다.

봄에서 막 여름으로 접어드는 숲은

온통 초록 세상이었다.


숨을 쉬면 초록 색 공기가 허파 속으로 들어 와

푸른 피가 되어 흐르는 곳




Spanish Moss가 쇼울처럼'

나무의 어깨에 걸쳐져 있다.

South Carolina와 Georgia의 특징 줄 하나다.







작은 늪에서 흰 Crane(한국 이름을 모르겠다.) 한 마리가

갑자기 물 속으로 부리를 들이 밀었다.

한 참을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가

한 순간 정적을 무너뜨렸다.


누군가에게는 행운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행.


그런 불행과 행운이 이어지며

이 숲 속의 질서가 유지된다.



숲 속 오솔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다 친구.


한 노인은 조금 가다 보면 악어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갈 때까지 거기서 움직이지 말라고 말하는 것 잊지 않으셨죠?"

내 농담에 숲 속에는 초록색 웃음 소리가 조용히 번졌다.






Spanish Moss를 어깨에 두르고

한껏 멋을 낸 나무들.




물과 맞 닿은 어느집 뒷 뜰에는 악어가

조용히 엎드려 있다.




숲이 끝나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말을 타기도 하고---





말 목장 안에서는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Heritage Farm.


울타리를 치고

땅을 여럿으로 갈라서

노인들이 채소와 꽃을 기른다.


온갖 채소와 양파, 감자,

그리고 꽃들.





















농장 안을 한참 거닐었다.


시간을 잊은 채.


다음 행선지는 바닷가.

그리고 등대.




이 곳의 등대는 외로움 같은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포장지로 잘 싼 물건 같은 느낌.

등대 아래에는 식당이 있고

누군가가 라이브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등대는 등대 본연의 임무보다는

사람을 꾀는

앵벌이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유람선에 승선한 한 쌍.

사진을 찍고 있다.




물 건너에 한 신혼 부부도 사진 촬영 중.



마침 바닷가에는

프롬 사진을 찍는 학생들로 붐볐다.

흔히 말하는 이팔 청춘.


제일 예쁠 때다.


어느 여자 아이에게

"정말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고맙다는 대답을 하는 여자 아이의 입이

복사꽃잎처럼 예뻤다.









조각 작품.


'Lunch와 Boy라는 단어가 들어간 작품인데

샌드위치를 먹으며 점심 시간에 책을 읽는 소년의 형상이다.

요즘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face book)

전화기를 통해 'facebook'하느라 바쁘다.


이 작가는 이런 세상이 올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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