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가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내가 좋아하는 대중가요 중 하나가
이문세가 부른 '광화문 연가'이다.
가사를 보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젊은 시절 연인과 함께 정동의 교회당 앞길을 다정히 걸었다.
아카시아 향기 날리는 오월이었다.
그러나 5월의 아카시아는 영원하지 않다.
세월이 흐른다.
그 연인과는 언제인지 헤어졌다.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머리에 서리 내리는 계절이 찾아왔다.
불현듯 꽃향기 날리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가슴 따뜻하던 시절,
떠난 여인과의 기억이 돋아 났다.
그 기억과 만나기 위해
광화문 부근 정동의 교회당이 멀찌감치 보이는 곳에 섰다.
그리워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기에---
여전히 젊은 연인들은 교회 앞 정동길을 아무런 회한도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걸어간다.
정동 교회, 그리고 언덕 밑 정동길은 여전한데
그 앞을 걸어 다니는 주인공들이 바뀌었다.
나는 그 풍경 밖으로 어느새 밀려났다.
아프다,
나를 거기서 밀어낸 그 시간이,
그 기억들이.
다시 돌아가 그 길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없게 만든 세월이라는 존재.
5월의 꽃향기는 사라지고
나는 눈을 맞으며
눈 내린 교회당 앞 길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요즘 나는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다섯 아이들도 다 집을 떠나고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그리 신통치 못 하니
시간이 많이 남는다.
분주했던 시간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헐렁한 시간이 주어졌다.
내 삶에 눈 내리는 계절이 찾아왔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자
살짝 우울증이 그 헐렁한 시간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삶의 의욕이 사라졌다.
그럴 때 마침 한국을 다녀왔다.
어머니의 병환과 함께 내 삶도 '밤으로의 긴 여로'에 막 접어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친구 하나가(종익) 나를 기동대에 초대했다.
기동대는 우리 동기들 중 기타를 좀 치거나 흥미를 가진 친구들이 모여 만든
기타 동우(호)회의 명칭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상도동에 있는 기동대 대장 친구 소유의 건물 지하에 기타 연습실이 있었는데
노래방 같은 업소에 세를 주면 달에 얼마씩 수입을 더 올릴 수 있음에도
기동대 대장은 친구들을 위해 문을 열어 놓았다.
방음장치며 기타를 보관할 수 있는 락커는 물론,
앰프와 스피커, 키 보드 같은 악기까지 장만해서
작은 콘서트도 가능할 정도의 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내가 기동대 아지트에 들어가니
기타 연습에 열중하던 친구들은 나를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그리고 내게 '웨딩 케이크'를 비롯한 세 곡인가를 환영인사로 연주해 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한국 방문하면서 한 번 찍은 얼굴을 보았지만
한 친구는 졸업한 후 처음으로 만났다
.변재섭이라는 친구다.
아마 고등학교 1 학년 때 같은 반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재섭이는 작년 4 월 기동대가 창립할 때
처음으로 기타를 잡고 열심히 정진한 결과
(그의 말에 의하면) 기동대 내의 실력이 4-5 등쯤 된다고 하며
왼쪽 손을 보여주며 손가락을 만져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의 손가락 끝의 굳은살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마치 본래의 살에 인공으로 살을 이식한 것처럼
탄력성이며 색깔이 완연하게
다른 2-3 밀리미터의 굳은살 층이
아주 생뚱맞게 형성되어 있었다.
너무 열심히 코드를 잡는 바람에 살이 문드러지고
속살에 다시 새 살이 돋는 과정을 4 변 정도 반복했다고 한다.
그의 굳은 살은 그의 자존심이었고, 자랑이었다.
재섭이는 야구 모자를 거꾸로 쓰고 있었는데
흰머리가 삐죽삐죽 나와 있어서 머리 모습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모자에 가려진 재섭이의 머리 모습이 궁금했지만
모자를 벗고 머리 모습까지 보여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았다.
손가락에 생긴 굳은살, 모자 속의 머리.
한쪽은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었고, 다른 하나는 감추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넘겨짚었을지도 모르겠다.)
근처의 단골집에서 간단히 술과 부대찌개로 힘을 보충하고
기동대의 2 차가 시작되었다.
2 차는 노래방 기기와 기타의 반주로 즐거운 노래방 시간이 진행되었다.
우리의 걸출한 카수 광호를 위시해서
참가자 골고루 노래를 부르며 흥이 도도해질 무렵
누가 나에게도 노래 한 곡 부르라고 청을 했다.
내가 가장 당혹스러울 때가 이런 경우이다.
나보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라고 할 때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하는 자괴감이 들곤 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음치, 몸치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중에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낭송하는 것으로 노래를 대신했다.
나는 부드럽게 거절하며 대신 신청곡으로 '광화문 연가'를 불러 달라고 청했다.
친구들이 불러주는 '광화문 연가'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정동의 교회당 풍경 밖으로 밀려나 있는데
이 친구들은 아직도 교회당이 있는 정동길을 눈이 내려도 여전히 씩씩하게 걷고 있다고.
그래서 서로 모여 어깨를 맞대고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들이
정말 많이 부러웠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의길이의 키 보드 연주는 샘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1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산울림의 김창익이 그리웠다.
이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드럼을 치며 연주를 할 수 있다면-----
나도 이젠 누가 시키면 한 곡조 뽑을 수 있도록
광화문 연 가을 잘 연습해 볼 생각이다.
그 날 친구들의 기타 소리에서
5 월의 아카시아 향기가 흘러나와
연습실을 가득 채운 것 같았다는 느낌은 나만의 것이었을까?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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